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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IM Dec 28. 2023

아줌마 아주머니 여사님 사모님

 “저기요, 아줌마!” 

 ‘나 아닐 거야.’

“ (더 크게) 아줌마! 아줌마! 이거 떨어뜨렸어요.” 

 ‘아, 나인가 봐.’ 

 “몇 번 불렀는데 안 들렸나 봐요.”

 ‘몇 번 들었는데 안 들린척한 거예요.’


 내가 아줌마가 아니던 시절, ‘아줌마’라는 호칭에 민감해하는 아줌마를 이해하지 못했다. 길에서나 식당에서 무수히 많은 아줌마를 ‘아줌마~아, 아줌마~아!’ 불러댔고, 친구들과 나누는 농담 속에 ‘너 완전 아줌마 같아!’하며 낄낄거리기도 했다. 그런데 그랬던 내가(나도) 아줌마가 되고 보니, ‘아줌마’ 소리 듣는 게 별로 달갑지 않다. ‘아줌마’라는 호칭에 대해 나도 모르게 내 안에 동기화된 이미지들이 폴폴 올라와서 내가 나이들어 보이나? 촌스럽나? 전문적이지 않게 느껴지나? 같은 검열을 하게 된다. 반대로, ‘아줌마 같지 않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이유 없이 기분이 좋아진다. 그게 뭐라고, 자랑삼는다. “들었지? 나 아줌마인 줄 몰랐대!”  


 ‘아줌마!’ 누군가 뒤에서 부르는 소리. 들었으나 굳이 돌아보지 않는다. 나 아닐 거야, 오늘은 딸 옷을 빌려 입고 나왔잖아? 요즘 유행하는 스타일이라던데, 설마, 나 아닐 거야. 뒤이어 더 크게 부르는 ‘아줌마! 아줌마!’, 심지어 뭔가 떨어뜨렸단다. 아! 가방끈에 걸어 놓은 남방, 그게 안 보인다. 그 아줌마, 나인가 봐. 뒤로 총총총 걸어가 남방을 주워 든다. 목청이 (굳이) 좋은 청년 덕에 지나가던 사람들이 그 아줌마가 도대체 누군가... 뭔 물건을 흘리고가나... 힐끗거리는 게 느껴진다. 감사하다고 인사하는 나를 빤히 살피며 몇 번이나 불렀다고 어필하는 청년. ‘네, 그러셨죠. 처음 불렀을 때부터 다 들었지만, 특별히 옷까지 빌려 입고 나온 마당에 청년이 아줌마~ 하고 너무 크게 불러싸서 일부러 안 돌아본 거예요. 그런데 이렇게 되돌아오고 보니 지금 상당히 쪽팔리네요. 덕분이에요.’라는 말을 듣고 싶은 건가? 아니면 ’아이고, 몇 번이나 불러주시다니, 몇 번이나 친절하신, 몇 번이나 고마운 분이네요!’라는 매우 상세하고 구체적인 감사의 인사라도? 에이, 뭐 그렇게까지. 차라리 오늘 애타게 불러 세운 그 사람은 보기보다 몸이 노쇠하여 (사실 잠귀조차 밝은 편이지만) 귀가 어두워진 아줌마인 거로 마무리.       


  본래 친족 어른 여성을 이르는 ‘아주머니’ ‘아줌마’가, 나이 든 중년 여성을 부르는 대표적인 호칭으로 변화한 것임을 감안하면, 친족의 범위 밖으로 나온 ‘일반’ 중년 여성을 바라보는 사회의 시선이 ‘아줌마’라는 단어에 고스란히 담겨 있는 것 같다. 

 “어머머, 아줌마라니, 내가 어딜 봐서! 나 아줌마 아니에욧!” ‘아줌마’라는 호칭에 분노하며 당황스러워하는 장면이 티브이에 종종 등장한다. 주로 갈등의 상황에서 ‘아줌마’라고 불린 사람이 말문이 막혀 하며 돌아서는 장면. 사람들은 공격력을 급 상실하는 화면 속 아줌마는 아니라는 아줌마를 보며 웃는다. <아가씨와 아줌마의 차이점>이나 <아줌마와 조폭의 공통점> 같은 유머는 꽤 오래되었지만, 여전히 온라인 게시판에 올라온다. 기억나는 아가씨와 아줌마의 차이점은, 아가씨는 힘들수록 소심해지지만, 아줌마는 힘들수록 강해진다, 아가씨는 옷을 입을 때 어떻게 하면 살이 더 많이 보일까 고민하고, 아줌마는 어떻게 하면 살을 더 가릴까 고민한단다. 그럼, 조폭과의 공통점은? 몰려다닌다, 가끔씩 애들을 손본다? 참나, 잘도 가져다 붙이는군. 게시글 밑에는 어김없이 공감과 ㅇㅈ(인정)이 넘치는 댓글들. ‘아줌마 운전’, ‘아줌마 몸매’, ‘아줌마 파마’, ‘아줌마 말투’... ‘아줌마’가 붙으면 멀쩡하던 단어의 가치가 폭탄세일을 한다. 갑자기 어설퍼지고, 우스워지고, 저렴해지는, 피하고 싶은 마법. 때문에 아줌마조차 ‘아줌마’를 반기지 않는다. ‘아줌마’라는 이름표를 달고 천덕꾸러기가 되고 싶지는 않으니까.     


 남편 직장에서는 청소하시는 나이가 많은 여성 노동자를 ‘여사님’이라고 부른다고 한다. 남성의 경우 ‘선생님’이라 부른다고. 존중의 의미로 부르는 호칭이라지만 나는 ‘아줌마’만큼이나 ‘여사님’이라는 호칭도 그다지 괜찮지 않다. ‘여학생’ ‘여직원’처럼 여성 성별을 굳이 지정한 호칭인 것도, ‘사모님’처럼 높여 부를 만한 남성이 옆에 있을때 함께 높이는 의미로 사용된다는 점도 별로다. 게다가 최근에는 ‘여사님’도 ‘사모님’도 존칭의 범주이기는 한 것인지 그것도 잘 모르겠다. 한동안 유행했던 <김여사 시리즈>에서 볼 수 있듯 ‘아줌마’의 살짝 위 버전 천덕꾸러기 느낌이랄까. 중년 여성인 영양사님이나 조리사님은 당연하게 직업명으로 부르면서 왜 굳이 노령 청소노동자만 ‘미화사’라는 직업명대신, ‘여사님’이라고 부르며 다름을 두는지, 같은 일을 하는 남성과 굳이 다른 호칭으로 부르는지 잘 모르겠다. 존칭이라는 명분 뒤에 나이 든 여성을, 그녀의 노동력을 온전히 인정하지 않는 시선이 느껴진다면... 그건, 여사님이 되어가는 아줌마의 괜한 억지인 걸까?     


 물건을 흘리고 걸어가는 나를 부른 청년의 목소리에 바로 반응하지 않았던 건, ‘아줌마’라는 호칭 속에 담겨 있는 중년, 노년 여성을 바라보는 시선 (그 청년이 그렇다는 건 아니고, 안 그렇다는 것도 아니고, 그건 나도 모르겠고) 때문일 것이다. 아줌마가 되고 보니 도대체가 공감도 ㅇㅈ도 할 수가 없는 그런 시선들. 그 때문에 집 밖으로 나온 나라는 아줌마는 (집 안에서 나는 작은 소리도 민감하게 알아채는 엄마지만) 내일도 여전히 귀가 어두울 예정이다. 그러니 **들이여, 굳이 소리 높여 납작한 호칭으로 나를 부르지는 말아달라. 여러 번 불렀다 생색도 말아달라. 몇 번 부를 시간에 부디 이 가련한 아줌마를 위해 조용히 남방을 주워다 준다면 몇 번이고, 기꺼이, 땡큐 땡큐 땡큐 쏘마치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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