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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리아 Aug 16. 2024

당뇨는 이길 수 있다

당뇨를 진단받다.

나이 탓이려니 했다. 몸도 무겁고 물도 자주 마시고 소변도 자주 보는 증상이 계속되었다. 

그래도 나이 탓이라 생각했다. 뭐 아직 젊다면 젊은 나이지만 육십에 턱걸이를 하고 있으니 일자리 구하기도 쉽지 않은 나이였다. 혹시라도 단기 알바 혹은 일용직이라도 해 보려고 전화를 하면 나이를 물어보고는 전화를 끊는다. 

그래서 더욱 나이 탓이려니 했다. 

병원은 왜 그리 가기 싫은지 이유를 모르겠다. 어릴 때는 병원을 내 집 드나들 듯했다. 

툭하면 가느다란 팔뚝에 커다란 주사 바늘을 꽂고 차갑고 투명한 링거병에서 한 방울씩 떨어지는 물방울을 바라보며 누워 있는 내가 그렇게 나약하게 느껴졌다. 

성인이 되고도 계절이 바뀔 때마다 감기가 찾아왔지만 그냥저냥 약으로 버티고 살았다. 감기가 찾아와서 몸을 괴롭게 하는 일 빼고는 대체로 건강하다고 생각하며 살았다. 

다만 한 가지 걱정이 있었다. 집 안에 당뇨병을 가진 사람이 많았다. 외가도 그렇고 친가도 당뇨병을 가지고 있는 당숙들 외사촌형들 있었고 어머니와 동생도 당뇨병을 가지고 있었지만 나만은 괜찮을 것이라 생각을 하고 살았다. 그리고 팬데믹이 오기 직전에 무릎관절이 좋지 않아 병원에서 몇 가지 검사를 했지만 당뇨 소견은 발견되지 않아 안심을 했다. 그도 그럴 것이 당뇨는 맵고 짜게 먹고 기름진 음식을 많이 먹으면 생긴다는 말을 어렴풋이 듣고 있었던 터라 시골에 내려와서는 음식 습관도 변했고 해서 설마 설마 했다. 

병원을 가려고 했던 가장 큰 이유는 소변이었다. 평소 차 마시기를 좋아해서 늘 옆에 끼고 살았다. 

그 때문에 그런가 했는데  문제는 소변이었다. 마시고 나면 바로 소변을 참을 수 없었다. 삼십 분을 못 참으니 어디가 탈이 나도 탈이 났다 싶었다.

한 시간이 멀다 하고 화장실을 가야 하니 어디 생활하기가 여간 힘든 게 아니었다. 

어쩌다 큰 도시인 대구나 부산을 가는 날에는 운전하기 전에 거의 음식도 물도 마시지 않아야 했다. 

생활이 불편해지니 병원을 가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마음먹고 학교 친구가 원장으로 있는 병원으로 향했다. 친구 전공이 순환기 내과라는 점도 있었고 막역하게 지내는 사이라 병원 가는 데 부담도 없었다. 오랜만에 보았다. 거의 10년이 다 되어 보는 친구는 나이가 들어 보였다. 

친구도

"나이가 이제는 꽤 들어 보이네. 네가 나이가 들어 보이니 나도 나이가 들어 보인다는 게 이상하지 않네" 

둘이 마주 보고 씁쓸한 웃음을 지었다. 

어린 시절 까까머리에 검은 교복을 입고 다니던 앳된 모습은 소년들은 어디로 갔을까!

오랜만에 친구와 짧은 이야기를 나누고 검사를 마쳤다.

결과는 전화로 알려 주겠다고 하고 병원을 나셨다. 같이 식사라도 하자고 했지만 모처럼 도시의 공기를 마시고 싶기도 하고 아내와 가벼운 데이트도 하고 싶은 마음에 다음으로 미루었다.

다시 조용한 전원에서 땅과 흙을 벗 삼고 지내고 있던 며칠이 지난 아침에 걸려온 친구의 전화는 나와 아내를 무척 당황스럽게 했다. 

당뇨 수치가 장난이 아니었다. (거의 삼백 대 후반이었던 것 같다)

친구가 던진 첫마디는

"니 골로 간다. 골로 가!"(경상도 사투리로 죽는다는 뜻) 

이렇게 수치가 높은데 어떻게 견디고 지냈냐는 것이었다. 

"야 너 그동안 시골에서 산다고, 공기 좋은데 산다고 자랑하더니 당뇨수치가 이게 뭐냐! 몸이 굉장히 무겁고 힘들었을 텐데 어떻게 견디었냐?"

".................."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야 다 필요 없고 당장 병원에 와!"

친구의 목소리는 단호했다. 

나의 목소리는 떨렸다. 

당뇨가 무서운 병이라기보다는 내 삶의 자유가 사라진다는 의미였다.

"응 일하던 게 있어서 한 일주일 뒤에 갈게"

친구의 버럭 화를 내는 목소리가 귓속을 찔렀다. 

"무슨 소리야 당장 오늘 와!"

떨렸다. 친구가 이렇게 버럭 화를 내다니....

옆에서 스피커 폰으로 듣고 있던 아내가 팔을 쥐었다. 

그래도 당장 갈 수는 없었다. 두렵기도 하고 반드시 이 번 주에 끝내어야 하는 일을 하고 싶었다. 

해야 하는 일도 일도 일이지만 갑자기 남은 인생을 약으로 버텨야 한다는 사실이 약간은 받아들이기 힘든 부분이었다.

친구에게 일주일 뒤에 꼭 가겠다고 했다. 

그렇게 약속을 하고 전화를 끊고 나도 아내도 한 동안 말을 잃고 멍하니 창 밖에 보이는 천왕봉을 바라보며 넋을 잃고 있었다. 

말이 좋아 당뇨약을 먹고 식단 조절을 하면 된다고 하지만 사실 주변에 당뇨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과 그리고 그들이 어떻게 병이 찾아와 죽음과 조우하는지를 보는 일은 어렵지 않았기 때문이다. 

정신을 차리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것은 아내였다. 

아무리 아침이지만 8월의 태양은 일찍부터 대지를 녹이고 있었다. 모자와 장갑을 끼고 텃밭으로 나간 아내는 이내 광주리에 토마토 파프리카 상추 가지 오이를 들고 들어 왔다. 

그리고 싱크대 선반 안에 있던 라면 봉지를 꺼내고 얼마 남지 않은 국수와 식빵을 버렸다. 

먹는 음식을 버린다는 것이 죄를 받을 일이라고 어른들께 귀에 못이 박히게 들어왔던 나는 아내에게 뭐 하는 짓이냐고 고함을 질렀다. 

신경이 극도로 날카로워졌으니 화가 폭발했다. 그 불똥은 아내에게 튀었지만 아내는 

"당신도 알겠지만 당뇨는 어떻게 먹느냐에 따라 좋아질 수도 나빠질 수도 있어요. 이제 당신도 먹는 식습관을 과감하게 바꾸어요."

아내의 눈빛은 마치 전쟁터에 나가는 병사의 결연한 모습처럼 보였다. 그 모습에 나는 어떤 대꾸도 할 수 없었다. 그녀의 말투와 눈빛에 감히 범접할 수 없는 힘을 느꼈다. 

"탄수화물을 줄이고 인스턴트 음식부터 먹지 않도록 해야겠어요!"

그리고는 라면과 국수 남은 것과 식빵이 버려졌다. 아깝다고 생각하지 말라는 아내의 말이 나를 거부할 수 없게 만들었다. 

조리대에서 야채샐러드를 만들기 시작했다. 

오전 시간이 전화 통화와 멍한 시간 속에 흘러갔다. 어느덧 점심시간이 다가오고 식탁에는 상추와 여러 채소를 레몬즙과 조선간장을 조금 넣고 들기름을 넣은 샐러드와 두부 대친 것만이 올라왔다. 

친구와 전화 대화를 스피커폰으로 듣고 있던 아내가 당뇨를 새 친구로 삼은 나에게 최초로 안겨준 식단이었다.

"반만 먹어라! 무조건 반만 먹어라. 배가 고파도 참고 반만 먹어라. 그리고 채소와 과일을 중심으로, 그리고 단백질 중심의 식사를 해라. 꼭 지켜라!"

이렇게 아내와 함께 당뇨와 나의 한 판 싸움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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