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의 요정이 떠났다.
매 년 12월이 되면 마음이 설렌다. 크리스마스의 요정이 나에게 찾아오기 때문이다. 모든 이의 마음속에 찾아오는 요정이지만 나는 그 요정을 믿는다. 언제 오는가 했더니 어느새 저만치 멀리 가고 있다.
붙잡으려 해도 그 다정한 미소만 남기고 '다시 오마' 하는 말 한마디 툭 내뱉고 떠나고 있다.
황량한 대지의 불어오는 찬 겨울바람이 마음을 시리게 하듯 내 마음도 요정의 뒷모습을 슬프게 쳐다본다.
나이를 먹어도 나는 산타할아버지와 크리스마스를 좋아한다.
캐럴송은 아무리 들어도 지겹지도 않고 초록가지에 장식된 크리스마스트리만 봐도 기분이 절로 좋아진다.
메마른 세상에 감주 같은 날이다.
그날이 이제 365일 뒤에나 다시 맞이할 수 있다.
요즘 아이들은 8살이 되기 전에 산타할아버지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는다는 기사를 보고 너무 슬펐다.
어른들이 크리스마스 선물을 주면서 산타는 없다고 말을 한다는 것이다.
동화가 사라지고 있다. 왜 굳이 현실을 이야기할까?
산타가 없으면 어때!
그 꿈같은 이야기 속에서 잠시 순수한 마음 아름다운 마음의 숲 속을 거닐면 어때서.......
어린 시절 아니 초등학교 4학년 때까지도 나는 산타 할아버지가 선물을 주신다고 생각했다.
성탄절이 가까워지만 나의 생활태도는 여느 때보다 더 달라졌다.
착한 아이에게 선물을 준다는 말을 듣고 산타에게 선물을 받기를 원했기 때문이다.
동생들도 더 잘 돌보고 어머니 아버지의 말씀도 더 잘 들었다. 그리고 당시에 10원은 꽤 큰돈이었다. 사탕하나 사 먹을 수 있는 가치가 있었다.
10원을 들고 주일 미사도 열심히 다녔다.(지금은 가물에 콩 나듯 다니는 나이론 신자이지만)
하느님과 산타를 같은 대상으로 생각하고 열심히 기도 했다.
그리고 나의 아버지! 어머니!
두 분도 산타할아버지 이야기를 해 주신다. 그 말에 우리 셋은 눈을 빤짝이며 듣고 있었고, 정말 북쪽 눈의 나라에는 장난감을 만드는 공장이 있고 장난감을 만드는 요정들이 있다고 믿었다.
나의 어린 시절의 크리스마스는 그렇게 다가왔다.
케이크이나 근사한 외식은 아니어도 집에서 어머니가 정성껏 만드신 불고기를 가족과 함께 먹으며 크리스마스 캐럴이 흘러나오는 라디오 방송 소리에 산타 할아버지 이야기 크리스마스의 뜻을 이야기하며 밤을 보내는 시간들이 나에게 좋은 기억으로 남게 해 주었다.
나이 육십이 내일이지만 나는 아직도 산타할아버지가 꿈에서라도 나타나길 기도하는 사람이다.
따스한 마음이 사라지고 있다. 적어도 어린 동심들은 동화 같은 산타와 크리스마스의 요정을 사실이라고 생각하기를 바라란다.
어른들이 너무 현실적인 말을 해 주지 말았으면 한다. 때론 동화 같은 꿈 속이 마음을 살찌우게 하기도 하니깐
때로는 피터팬이 우리 곁에 있다고 생각하자! 아주 잠깐이라도.
너무 빨리 어른이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크리스마스 요정이 아이들 마음속에 오래오래 살아 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