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한물 Sep 13. 2021

「울지마」(브로콜리 너마저)

주절주절 음악 12, 21.07.18.

「울지마」(브로콜리 너마저) : https://youtu.be/pUKfC9AkQ3Y

약한 사람은 왜, 더


깨어 있는 시간의 절반 남짓한 시간을 분노하는 데에 쓰던 시기가 있었다. 낮에는 온갖 것들이 신경을 닳게 함을 느끼며 스스로의 예민함을 자조했고, 밤에는 친구들과 술을 먹으며 나를 분노하게 하는 온갖 것들을 저주했다. 누군가의 죽음을 온 맘 다해 바라기도 했고, 언젠가 들었던 생각이 담기지 않은 말을 되씹으며 술잔을 연거푸 비워대기도 했다. 분노가 가시면 뒤따라 오는 것은 우울이었다. 우리는 울었다. 울다가 막차 시간을 놓쳐서 늘 대중 교통이 다니지 않는 애매한 시간에 헤어졌다.


누군가에게 상처를 입히지도, 상처를 입지도 않으려는 게 사실은 큰 욕심이었구나. 굳이 바라지 않아도 되던, 지극히도 당연하다 생각하던 것들을 간절히 바라 마지않게 되었다. 이따금 나는 나의 상식을 의심했고, 아니, 그래도 그건 상식이지 않나. 하면 또 화가 나서. 발작적인 분노를 식힐 시간도 없이 내가 사는 이 세상에서, 내가 속한 이 공동체 안에서, 내 코 앞에서 분노할 일들은 계속 생겨났다. 


이런 나의 감정 상태와 달리 세상은 평화롭기만 해서, 한바탕 술에 취해 잠들었다가 깬 다음 날이라고 바뀌는 것은 딱히 없었다. 왜 세계는 멸망하지 않는가. 한 친구가 운을 띄우면 '그러게.'라고 공감하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 그러게. 언제 망하냐.


「울지마」를 이 즈음에 처음 접했다. 가까스레 눈물을 참고 있을 때 울어? 왜 울어, 울지마. 라는 말을 들으면 도리어 대성통곡을 하게 되는 것이 인지상정인데, 왜인지 「울지마」를 들으면 정말 울고 싶은 마음이 싹 사라졌다. 되레 전투력(?) 같은 것이 솟았다. 그래, 내가 뭘 잘못 했다고 울어야 해. 하고 마음을 다잡게 되었다. 사실 세계가 아주 멸망할 필요까진 없지. 그러면 그러게. 라고 말할 수밖에 없도록 만드는 게 「울지마」였다.


날이 무덥다. 공교롭게도 한창 술을 퍼마시며 분노하던 그때와 같은 방식으로 더울 것이라 한다. 우습게도 세상은 아직 멸망하지 않았다. 멸망은 커녕 꿈쩍도 하지 않을 건가 보다. 그래서인가 요 사이도 부쩍 주체를 못 할 만큼 화가 치미는 일이 잦아졌다. 이쯤 되면 날씨가 더워지는 게 아니라, 내가 열을 내는 게 아닐까. 그런 생각에 가닿을 때면 또 어김 없이 분노할 일이 생기곤 한다. 


한 사람의 죽음을 전해들었다. 처음에는 비통했고, 이내 그것이 죽임이라는 것을 알고는 견디기 버거울 정도로 화가 치밀었다. 그런데 다른 사람들은 그렇지 않았던 것 같다. 마치 그에 대해 쏟아지는 주목이 가당치도 않은 것이라는 듯, '호들갑 떨지들 말라'는 식이었다. 유행이 지나 잠잠하던 커뮤니티에는 이성과 합리를 가장하여 죽음을 모독하는 글이 여럿 올라왔다. 차마 끝까지 읽지 못했다. 


'일병의 패기'라는 제목으로 돌아다니는 유명한 짤방이 있다. 한 일병이 앞에 앉은 장성들에게 '당신들이나 나나 다르지 않은 그저 한 사람의 군인이다'고 말하는 것을 캡쳐해둔 사진이다. 사람들은 그를 보고 웃는다. 암만 같은 인간, 같은 인격체라고 한들 적어도 군대라는 집단 안에서는 계급이 그본질에 앞선다는 것을 아니까. 그 집단에서는, 가슴팍에 달고 있는 계급에 따라 사람의 무게도 달라진다는 것을 아니까. 


한 사람의 무게에 대해 생각해본다. 계급장도 없지만 사람들은 저마다의 무게를 짐짓 다르게 느끼고 다르게 받아들이는 듯하다. 어떤 이는 죽고 나서도 육중한 무게로 그 자리에 계속 남아 있지만, 어떤 이는 살아 있음에도 실오라기 같은 바람 한 톨에도 저만치 쓸려가 버린다. 종종 어떤 죽음은 너무 가벼워서 돈 몇 푼과 저울질 당하기도 한다. 살아 내는 사람들. 나는 마냥 울고 싶어졌다.


처음 「울지마」를 접하고 곧장 친구들과 이 노래를 공유했다. 학창시절부터 익히 노래의 효능을 체험한 친구도 있었다. 언제쯤 이 노래가 필요하지 않을 때가 올까. 그러게. 


… 답이 있었던 적이 있기나 했냐고 되물었다. 그래, 다 아는 얘기 계속하는 거야. 계속 답이 없으니까. … 그런데 어떻게 이렇게까지 노답일 수 가 있지. 아, 열받네 진짜. 말을 하다보니까 갑자기 열이 받았다. 말을 하다보면 열이 났고, 열이 나니까 말을 하지 말아야 했지만. 아우씨, 열이 났다. 
- 서이제, 「0%를 향하여」, 『2021 제21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 문학동네, 2021, 249쪽.










작가의 이전글 「철의 삶」(정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