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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물 Dec 28. 2021

「이 빗속에」- 블루파프리카(Bluepaprika)

주절주절 음악 16, 21.12.28

「이 빗속에」- 블루파프리카(Bluepaprika): https://youtu.be/5X6aJFivHjM


지나간 것은 지나간 대로?


「긴긴밤」. 그 한 곡으로 이들을 알았다. 솔직히 말할까. 특색이 있다거나 신선한 충격을 전해주는 노래는 전혀 아니었다. 수도 없이 접해본 악기 구성과, 한 번쯤은 들어본 듯한 곡 구성. 그럼에도 충분한 노래도 있는 법이었고, 이 노래가 그러했다. 힘껏 어필하지 않기에 더 끌리고, 낮고 담담해서 더욱 울리는. 그들이 전하는 노래는 늘 그런 방식이었고 그래서인가 시쳇말로 스며들다시피 이들에게 빠져들었다. 시작을 「긴긴밤」으로 했다면, 아직까지도 붙잡고 있는 노래가 「이 빗속에」이다. 대부분의 애정이 그러한 방식 아니겠는가. 


그러고 보면 난생처음 간 콘서트가 블루파프리카의 콘서트였다. 라이브는 다르다, 다르다, 하던데 아, 진짜 다르네. 늘상 듣던 노래들이 생음악이 되어 공연장의 스피커로 흘러나올 땐 전율 비슷한 것이 흘렀다. 포스터에 싸인을 받아 귀중하게 말아 왔다. 내 뒤에 섰던 어떤 분은 기타를 들고 와 싸인을 받았다. 나도 가져올걸, 나의 빈약한 창의력에 통탄할 수밖에 없었다.


모두가 기억 한켠에 소중히 간직하고 있는 과거가 있는가 하면, 그저 '지나간' 과거도, 또 억지로라도 '지나 보낸' 과거도 있다. 수식어의 의미 그대로, 지나간 일은 나를 지나쳐 어딘가로 가버린 일이다. 그래서 지나간 일은 잊어버리든, 털어 버리든 해서 척결하고 제거해야 할 대상으로 여겨진다. 이에 대해서 만큼은 평소 숨겨두었던 오지랖을 발휘하는 것도 서슴지 않는다. 아무런 득이 될 게 없다, 너만 손해 보는 일이다, 바보 같은 일이다. 조언과 충고를 아끼지 않는다.


지나온 시간, 지나간 인연, 지나간 추억, 그들은 이런 '지나간' 과거를 포착하고자 과거로 시선을 보낸다. 한 물 '지나간' 장르인 블루스풍의 노래로 그 과거를 되살려오거나, 떠나보낸다. 섬세하고, 잔잔하고, 서정적이고, 이런 수식어들을 다 제치고 그들의 노래는 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그 자신의 과거를 불러오게 하는 훌륭한 매개가 되었다. 그들의 노래를 들으면서 무언가에 흠뻑 젖어드는 기분이었다면 그 정체는 노래보다도, 각자가 떠올린 '지나간' 과거일 것이다. 


여전히 그것은 내게 득이 되지 않는 일이고, 바보 같은 일일까? 그렇다고 한들 나는 '지나간 것은 지나간 대로'라며 과거를 담은 보따리를 풀어 보지도 않고 창고에 박아두기보다는, 먼지를 잔뜩 먹으면서도 섬세한 손으로 그를 꺼내어보기를 택하고 싶다. 


비 맞을 계절은 지났지만


'끝났다.'라는 말을 자신 있게 내뱉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빼곡히 채워둔 핸드폰의 미리 알림을 하나씩 내 손으로 죽여가며, 급한 일은 다 마친 것 같다 싶을 때 할 일은 생겨난다. 그래서 '끝났다.'라는 말을 소리 내어 하다 보면 항상 어말을 한 음 올려 발음하게 된다. '끝났나?' 예, 안 끝났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일에 끝은 온다. 그러니까, 종강했다는 말이다. 2학기의 종강은 늘 시원 섭섭 중 섭섭이 크게 다가오는데, 아마도 1년의 끝과 맞닿아 있기 때문일 것이다. 한 해의 마지막에 드는 섭섭하다, 는 마음은 지난 364일간의 나를 탓하는 마음과는 다르다. 한 해를 열심히 보냈건, 대강 보냈건 어쨌거나 한 해가 지났다는 그 사실에 대한 서운함에 가깝다. 아, 덧없는 인생.


한 해가 지났다. 내 인생에서 스물다섯 번째의 한 해가 '지나가'고 있다. 덧없이 지나 보낸 나의 '한 해'들은 과거에 쌓일까, 아니면 나를 거쳐서 그저 흘러 지나갈까. 나는 그것들이 어딘가에 쌓이고 있다고 생각한다.  쌓이고 쌓이다가 말년에는 삶의 궤도에서 나를 아주 밀어낼 만큼 쌓이는 것이겠지. 조금씩 물이 차오르는 우물 위에 떠 있는 나뭇잎의 모양과 같다. 수위가 올라감에 따라 나는 조금씩 떠올라 언젠간 우물 밖으로 뱉어내질 것이다.


물 아래 있는 것들은 실제 거리보다 가까워 보인다고 하던가, 그래서인지 '그때는 그랬지.' 하며 박제해둔 순간들보다도 원근감을 잃어버린 지나간 일들은 훨씬 가깝게 느껴진다. 손만 뻗으면 잡아채 와서 내키는 대로 도로 매만져서 돌려놓을 수 있을 것만 같은 생각이 든다. 아시다시피 그것은 허깨비에 불과하다. 만져질 것 같은 그것들은 실은 저 깊은 바닥에 가라앉아 있다. 그래서 지나간 시간은 덧없다. 덧칠하고, 덧바르고, '덧'할 수 없는 것이다. 


「이 빗속에」의 화자는 비가 가지고 오는 지나간 일을 손에 쥐려 하지 않는다. 내리는 비를 보며 떠올렸다고 또 내리는 비에 그를 실어 보낸다. 덧없어서, 덧없기 때문에 아름다워도 보이는 것일까. 아직은 모르겠다. 그저 이따금 젖어있을 수밖에. 


여담


※'덧없다'와 관련된 내용은 실제 어원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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