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절주절 음악 17, 23.04.23.
제주도를 다녀왔다. (2월에) 아부오름의 벤치에 앉아, 움푹 꺼진 오름을 내려다보면서 이 노래를 들었더랬다. 내 입으로 말하기 부끄럽기야 하다만은 완벽한 선곡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런 날씨에서, 그런 풍경과 내음을 만끽하면서는, 이 노래를 들어야만 했다. 세금을 물어야 할 것 같은 햇살을 맞으며 우주의 끝을 공상하는 이 노래를.
그나저나 아직 이 노래에 대한 이야기를 한 적이 없다니, 놀라울 따름이다. 나는 두 아저씨들의 노래를 대강 전부 좋아하기는 하지만 이 노래는 유난한 것이 있다. 듣기만 해도 콧구멍에 바람을 잔뜩 불어 넣어주는 전주도 좋고, 아저씨들에게는 약간 높아 라이브에서 주사위를 굴리게 하는 음역대의 멜로디도 좋지만, 이 노래의 백미는 가사라고 생각한다.
세상은 넓고 노래는 정말 아름다운 것 같아
인생은 길고 날씨 참 좋구나
같은 가사. 세계의 거스러미까지도 쉽사리 긍정해 버리는 가사가. 이 두 줄의 가사를 보아도 그렇다. 세상은 넓고 인생은 길다. 여기까지는 단순한 '진술'에 지나지 않는다. 이들이 긍정의 가치를 부여하고 있는 것은 '노래'와 '날씨'이다. '세상'이나 '인생'에 비하면 보잘것없다고 해도 무방한 작은 것들. 그 작은 것들을 있는 힘껏 끌어안는다. 그 포옹으로 말미암아 넓은 세상과 긴 인생은, 거대하고 압도적인 그것들은 나를 깔아 뭉개는 무게감을 잃고 배경으로 물러난다. 실체에서 배경으로 변한 그것들은 비로소 긍정이라는 인식의 범위로 들어올 수 있게 된다.
최근에는 열심히 자전거를 타고 있다. 주말마다 없던 일도 만들어서 자전거를 타고 어딘가를 향하곤 한다. 덜걱거리는 자전거에 앉아서 빌딩 사이로 보이는 초록빛 등성이를 흘길 때면 세상이 퍽 아름답게 느껴진다. '행복이 뭐 별거냐.' 같은 생각은 이처럼 작은 것을 오롯이 끌어안을 때에 시작되는 것 같다. 세상이나 인생이 아닌, 노래나 날씨 같은 것들을.
게으름에 치이고 현생에 밀려 2월에 다녀온 여행 이야기를 이제야 끌러내려고 자리에 앉았다. 3일 같은 4일의 여행, 낮에는 걷고 밤에는 시키지도 않은 컨텐츠에 열을 올리며 웃던. 이젠 생생한 기억은 휘발되고 감각과 장면으로 남아 있지만, 슬쩍 떠올리기만 해도 아씨, 그래, 한 번 해보지 뭐, 라고 마음을 다잡게 만들어주는 흐벅진 추억이 되었다.
이제와서 하는 말이지만 후회스러운 점이 있다. 여행을 다니는 4일 내내 나는 계획에 잡아먹힐까 두려워하며 혼자 잰걸음으로 다녔다는 점이다. 남들은 겨우겨우 여행을 가기로 했었다는 걸 상기할 즈음에 누가 시키지도 않은 시간 단위의 계획을 짜서 들이밀고, 버스 한 대를 놓쳐 그 계획이 틀어졌다는 것에 눈에 띄게 좌절하며 4일을 다녔다. 그 덕에 함께 여행을 간 사람들이 나의 좌절과 의기소침을 감당해야 했다는 것이 부끄러울 따름이다.
커서를 올리면 재생되는 영상 썸네일처럼 남은 기억 중에서, 가장 조회수가 높은 기억이 바로 아부오름에서의 기억이다. 30분 간격의 버스를 과감히 떠나보내고 볕이 드는 벤치에 옹기종기 앉아서 입 안쪽의 살로 오름의 공기를 만지작대던. 무진행 버스에 앉은 주인공이 즉석으로 개발한 수면제처럼, 그곳에서 느낄 수 있는 모든 것, 바람과 햇볕과 소리와, 여타 그런 것들을 모아 향수로 만들고 싶다는 망상을 하던. 제주도에 있는 내내 계획에 쫓겨 다니던 내게 가장 인상적인 기억으로 남은 순간은 계획에는 존재하지도 않던 20분의 시간이었던 것이다.
앞으로 언제 어디로 누구와 여행을 가더라도 아마 나는 똑같이 후회할지도 모른다. 완벽한, 그래서 비현실적이기까지 한 계획을 보며 편안함을 느끼고 계획이 흐트러짐에 불안해하는 이 강박은 기질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앞으로는 남들의 즉흥을 나의 계획이 침해하지 않도록 해야겠다고 다짐하게 된다. 상정해두지 않은 감동을 침해하지 않기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