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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uteurist Jan 03. 2024

브랜드는 어떻게 의미가 되는가

스투시 그리고 롤랑 바르트 



얼마 전 이미지 형태의 브랜디드 콘텐츠를 수집하던 중 스트릿 브랜드 스투시의 2017 F/W 컬렉션 브랜드 포스터를 접하게 됐다. 강렬한 인상의 포스터는 수많은 이미지 중에서도 단연 눈에 띄었다. 장황한 설명 없이, 단 한 장의 사진만으로 브랜드가 추구하는 방향성을 읽어낼 수 있었다.

 

경례를 거부하는 손, 교복 대신 대충 걸쳐 입은 티셔츠, 회피하지 않고 카메라를 응시하는 태도.

스투시는 단 몇 개의 연출만으로 주류에 편승해 흘러가지 않겠다는 브랜드의 다짐을 드러낸다. 직관적이지만 깊이 있는 텍스트로 새로운 영감을 선사한다.


사진에서 스투시의 로고가 빠져도 크게 달라질 건 없다. 아이가 입고 있는 옷이 스투시 티셔츠가 아닌 평범한 무지 티셔츠였어도 안에 담긴 텍스트의 의미는 변하지 않는다. 하지만 브랜드의 상징인 사인 로고가 더해지면서 2차적인 의미가 발생한다. 주체성과 독립성, 자유를 은유하는 한 장의 사진은 브랜드 로고와 함께 스투시의 정체성을 대변하는 콘텐츠가 되고, 이 지점에서 스투시는 의미를 지닌 기호이자 예술로 변모한다.


해당 포스터는 철학을 브랜드의 틀에 맞게 가공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더 정확히 말하면 그렇게 인식된다는 점에서 특별하다. 정체성 전달이 브랜드에 있어 어느 때보다 중요해진 요즘, 모든 브랜드는 각자의 인격을 구성하기 위해 철학을 활용한다. 그러나 모든 브랜드 철학에서 100 퍼센트 진심을 느끼기는 어렵다. 브랜드에 부여된 철학은 상업적 목적을 가진다는 점에서, 철학이 목적이 아닌 도구가 된다는 점에서, 관념 자체에 목적을 두는 철학보다 설득력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이 지점에서 스투시 포스터는 여타의 브랜디드 콘텐츠와 차별성을 가진다. 해당 포스터는 브랜드를 목적으로 철학을 끌어오는 대신 이미 존재하는 철학과 메시지의 본질 위에 브랜드를 입힌다는 느낌을 준다. 보도 사진 같은 사실적 톤에 인공적인 화보와는 다른 자연스러움이 묻어나는데, 철학에 스며들고자 하는 브랜드의 태도가 드러나는 대목이다 (브랜드가 상업성을 완전히 포기하는 것은 불가능하겠지만 보다 중요한 건 태도다). 더 나은 벌이를 위해 흩뿌려진 철학의 문장들을 도구로서 떼어 붙이는 시대에 보기 드문 선택이다. 이러한 진실성과 사실성은 브랜드가 철학을 목적으로 대할 때 비로소 브랜드의 진심을 온전히 전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유독 이번 포스터가 좋게 다가온 것은 이야기 기반의 콘텐츠가 아닌 시장의 최전선에 있는 브랜드가 자유에 대한 철학적 담론을 설득력 있게 제시했다는 사실 때문이다. 브랜드가 이와 같은 방식으로 본인의 정체성을 전달하고 대중에 비칠 수 있다는 점에 왠지 모를 희열을 느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철학과 메시지를 가장 멀리, 가장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는 매체는 '브랜드'라는 의견에 공감하는 이유다.

사회학적 향취와 피사체가 취하는 동작 간의 유사성, 의미의 발견이라는 공통점으로 인해 프랑스의 기호학자 롤랑 바르트가 저작 <현대의 신화>에서 예시로 제시했던 사진이 떠올랐다. 그는 텍스트를 함유한 모든 것을 하나의 기호로 바라보면서 안에 담긴 의미를 발견하고 해석한다.


기호가 의미를 가지는 과정에는 다양한 이데올로기가 개입하는데, 이데올로기는 기호를 특정 의미로 해석하도록 유도한다. 예를 들어 '프랑스 군복을 입고 경례하는 흑인 소년'이라는 기호에서 '모든 프랑스 국민은 인종에 관계없이 프랑스에 충성한다'는 의미를 발견할 수 있다. 표면적으로는 단순한 해석이 가능하지만 프랑스 군복과 흑인 아이라는 상징, 그로부터 연상되는 제국주의적 이데올로기가 개입함으로써 사진은 '프랑스 제국주의의 정당화'라는 의미를 함유한 기호로 확장된다. 


스투시 포스터에서 발견한 모든 의미와 가능성 또한 기호학적 관점의 결과다. 아이들의 경례에서 억압을, 통일된 동작과 의상에서 획일성을, 카메라를 응시하는 시선에서 자유를, 규칙과 거리를 둔 의상에서 주체성을 읽어낸 것은 눈에 보이는 것 이상을 발견하려는 기호학의 사명을 따랐기에 가능했다. 기호를 바라보는 시선이 섬세할수록 의미는 더욱 깊어진다. 사실 카메라를 응시하는 아이는 한 명 더 있다. 한 아이는 먼 곳에서 홀로 좌수 경례를 하고 있다. 두 아이는 폭압에 순응하면서도 남몰래 자유를 갈망하는 존재들의 초상과 같다. 물론 외부에서 어떤 이데올로기가 개입되는가에 따라 기호는 더 큰 의미로 확장될 수도, 혹은 다른 의미로 변모할 수도 있다.


브랜드가 의미를 담은 기호 혹은 예술의 형태로 전달될 때 소비자는 브랜드를 제품 이상으로 바라보기 시작한다. 브랜드를 구성하는 의미는 곧 자기표현의 재료가 되기 때문이다. 브랜드는 타게팅된 영역에서조차 다양하게 존재하는 소비자들의 자기표현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끊임없이 자기 안의 의미를 새롭게 발견하고 담아내야 한다. 더 이상 제품이 아닌 의미를 사는 시대, 의미와 조응하는 기호학이 브랜드 전달의 유용한 도구로써 기능할 수 있는 이유다. 기호학의 사명은 의미의 다양성에 있다는 사실 또한 기호학이 브랜드의 훌륭한 전략적 파트너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결국 브랜드의 생명은 자기 정체성 안에서 다양한 의미를 지속적으로 발견하는 능력에 달려있다. 스투시 포스터에 담긴 주체성과 독립성, 자유라는 의미에 공감한 소비자가 고객이 되고 고객은 팬이 되는 것처럼 브랜드는 본인에 내재된 의미를 새롭게 발견하고 또 담아내면서 영역을 확장해나가야 한다.



* 기호학 및 기호화 과정에 대한 설명은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최장순 님의 네이버 디자인 프레스 인터뷰와 브런치 작가 뮤노 님의 글 "번외_롤랑 바르트는 누구인가"를 참고 및 해석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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