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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수정 Dec 04. 2023

눈물의 레벨테스트 그리고 수업 적응기

놀기만 하던 7살, 7교시 영어수업 가능할까?

세부 어학원에 들어오면 오리엔테이션 이후 가장 먼저 치르는 것이 레벨테스트다. 그래야 내게 맞는 수준의 수업을 배정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요즘 한국에서는 워낙 어릴 때부터 영어 교육을 시작하다 보니 레벨테스트 경험이 있는 아이들도 많겠지만, 7살인 우리 아이에겐 처음이었다. 엄마도 치러야 하기 때문에 서로 분리된 공간에서 각각 받았다. 어른의 레벨테스트는 토익 시험과 매우 비슷하게 치러졌다. 그림을 본 뒤 티처에게 직접 설명하기도 하고, 문법 및 독해 문제도 여러 장 풀었다.


내 테스트가 끝나고 난 뒤 아이를 찾아다녔다. 아이들은 1:1로 레벨테스트를 본다고 했다. 내 테스트를 마치고도 한참이 지나서야 아이의 테스트가 끝났는데, 이미 몹시 지친 얼굴에 눈물이 그렁그렁했다. 담당 선생님은 아이가 중간에 울었다고 했다. 2시간을 영어로만 이야기해야 하고 끊임 없이 질문을 받았으니 힘들만도 했다. 위로가 된 것은 우리 아이뿐만 아니라 다른 아이들 가운데도 처음 와서 레벨테스트를 받을 때 울었다는 경우가 있었는데, 그 아이들도 이내 수업에 잘 적응하며 즐겁게 지내고 있다는 점이었다.


레벨테스트 후에는 시간표가 나온다. 나는 하루에 그룹 수업만 2개 신청했기 때문에 수업 스케줄이 널널했다. 아이들은 자동으로 총 7개의 수업을 듣게 되는데 오전에는 1:1 클래스 수업 4개, 오후에는 그룹 클래스 수업 3개를 듣는다. 수업시간은 45분, 쉬는 시간은 5분이다.

세부 수업 1일차의 눈물

우리나라 초등학교에서도 1학년은 하루 4교시만 하는데, 과연 우리 아이가 7교시의 수업을 적응할 수 있을까? 걱정이 많았다. 집중력도 길지 않은데 너무 지쳐하는 것은 아닐까? 수업을 줄여달라고 이야기를 해야 하나... 역시나 아이는 첫날부터 몹시 힘들어했다. 어린이집에 다시 가고 싶다고, 7개는 너무 많다고 울었다. 어찌해야 하나, 고민하다가 적응기간을 가져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우선 수업을 버틸 수 있을 때까지 듣고, 과감하게 아얄라몰로 향했다. 아얄라몰은 마치 우리나라의 스타필드나 롯데몰 같은 쇼핑몰인데 규모가 매우 크다. 각종 옷가게, 식당은 물론 키즈카페와 오락실도 있다. 키즈카페의 알록달록함에 이끌려 들어간 아이는 볼풀에서 공을 신나게 던지며 스트레스를 풀었다.


오전 수업이 1:1이라 부담이 큰 것에 비해 오후 수업 3개는 그룹 클래스라 상대적으로 쉽다. 선생님의 관심이 여러 명에게 분산되어 부담이 덜하기도 하고, 또래 친구들과 모여서 노래하고 춤추는 등 재미있는 액티비티가 많다. 그래서인지 오후 수업은 대부분 무난하게 넘어갔다.

제법 적응된 2주차

다른 어머님께 조언을 구했다. 아이가 수업을 너무 힘들어하는 것 같은데, 어떻게 적응했냐고 물었더니 의외의 대답이 돌아왔다. 티처들에게 하나하나 편지를 써서 우리 아이의 성향은 이러하니, 공부 보다는 즐겁게 놀이하는데 초점을 맞춰달라고 했다는 것이다. 그 이후로 아이가 모든 수업에 다 잘 적응했다고 했다. 오! 현명하시다! 그래서 나도 포스트잇에 편지를 하나하나 써서 교재마다 붙여 보냈다. 아이가 갑자기 많은 수업을 듣게되어 힘들어하니 노는데 초점을 맞춰달라고 부탁했다.

티처가 만들어준 하트선물

그 이후로는 수업을 마치고 쉬는시간에 나오는 아이의 표정이 눈에 띄게 밝아졌다. 티처가 만들어줬다며 종이배를 가져오기도 하고 수업 시간에 그렸다며 각종 그림들을 보여주기도 했다. 이게 미술학원인지 영어학원인지 헷갈릴 지경이었지만 수업에 대한 거부감은 확실히 줄었다.


아이의 영어를 유창하고 고급스럽게 만들고 싶다면 한국에서 전문 커리큘럼을 갖춘 영어 학원을 보내는 것이 더 빠를 수 있다. 하지만 아이가 영어가 그냥 하나의 언어이고, 들었을 때 거부감이나 어렵다는 생각보다는 그저 자연스러운 소리로 인식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라면 세부 어학연수를 추천한다. 적어도 나와 국적이 다르고 피부색도, 생김새도 다른 많은 사람들을 자연스럽게 매일 마주치면서 외국인만 보면 얼어붙는 한국인 특유의 외국인공포증과 영어공포증은 없앨 수 있다. 못 알아듣더라도 자책하거나 두려워하지 않고 전달하고자, 듣고자 하는 의미에 집중해 바디 랭귀지든 다른 방법으로 어떻게든 대화할 수 있게 된다.


수업이 잘 맞지 않을 경우 변경 신청도 가능하다. 아이가 레벨테스트 때 혹독했던 기억이 남아서인지 한 티처를 매우 어려워했는데, 대화를 나눠본 끝에 아무래도 바꾸는 것이 낫다 싶어 다른 선생님으로 변경했더니 한결 수월하게 수업에 들어가게 되었다. 물론 선생님께는 나중에 따로 수업을 바꿔 미안하다, 나는 당신이 좋은 선생님이라고 생각하지만 아이가 레벨 테스트의 기억이 굉장히 강하게 남았던 것 같다고 사과했다. 그녀는 흔쾌히 이해한다며 웃어주었다.

지금은 수업 가는 것을 엄청나게 좋아한다. 제일 좋아하는 선생님 수업은 쉬는시간부터 미리 가서 기다릴 정도다. 그룹 수업은 쉬는시간에 내가 따로 가지 않아도 알아서 친구들과 놀다가 클래스로 이동한다. 덕분에 나는 아이 그룹수업 시간에 마사지를 받으러 가는 호사도 누릴 수 있게 되었다.


45분 수업이 너무 길지 않은지 걱정했지만 아이들 수업은 아이들 눈높이에 맞춰 진행되기 때문에 아이가 크게 힘들어하진 않는다. 만약 우리 아이처럼 노는게 제일 좋은 뽀로로 같은 아이일지라도 초반 적응 기간에는 조금 유연하게 아이에게 쉬는 시간도 주고, 충분한 보상과 칭찬을 해주고, 선생님과 소통하며 아이에게 맞는 방법을 찾아간다면 무리 없이 적응 가능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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