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에서 한국식으로 이유식 하기
드디어 180일이 되었다!
이유식 시작은 5개월-6개월 사이에 시작하면 된다고 하는데 어쩌다 보니 180일에 맞춰서 이유식을 시작하게 되었다. 해외 육아에 있어서 큰 도움이 되는 삐뽀삐뽀 선생님의 동영상이 뇌릿속에 박혀서일까 이유식은 180일!이라는 생각으로 준비하고 있었고 독일에서도 요새 차츰 180일 이후에 이유식을 시작하는 새로운 방향이 제시되고 있다고 해서 여유 있게 기다릴 수 있었다. 이유식 시작는 날이 다가올수록 아기가 분유만 먹을 때가 제일 편하다는 말이 와닿아서 최대한 그 시간들을 즐겼다.
마지막 수유를 마치고 아기가 잠든 후 한국에서 바리바리 싸 온 4권의 이유식 책을 펴고 이유식 공부를 시작했다. 4권에서 나온 공통되는 이야기를 바탕으로 독일에서 구하기 쉬운 식재료로 식단표를 짰다. 이유식만큼은 한국식으로 제대로 해주고 싶어서 지난번 한국을 다녀올 때 이민가방 하나를 전부 이유식 용품으로 가득 채워왔다. 이유식 용품 사는걸 제2의 혼수라고 표현하기도 하던데 창고에 넣어뒀던 이유식 짐을 꺼내놓고 보니 칼, 도마, 식기류, 냄비, 그릇 등등 이것만으로도 새로운 주방을 꾸릴 수 있을 것 같았다.
내가 식단표를 완성하는 동안 남편은 이유식 용품을 깨끗하게 씻고 뜨거운 물로 소독을 해놨다. 엄마도 아빠도 떨리는 첫 이유식 전날 밤! 내일은 쌀가루 20g에 물 400ml로 쌀미음을 만들면 된다! 이름은 쌀미음이지만 찹쌀풀 쑤는 거랑 똑같은 작업이다. 김장용 찹쌀풀이라면 간단하게 후루룩 끓였을 것을 아가의 첫 이유식이라고 하니 몇 번이나 머릿속으로 시뮬레이션을 한 뒤에야 잠을 청할 수 있었다.
아침 일찍 아기와 운동을 다녀온 후 쌀미음을 만들기 시작했다. 어제 시뮬레이션대로 착착 진행되니 MBTI J는 마냥 행복했다. 쌀미음을 다 만들어놓고 식히는 동안 아기와 함께 낮잠을 잤다. 아가는 계속 곤히 자고 나는 중간에 일어나서 잘 식은 3일 분량의 쌀미음을 두 개는 냉장고에 넣고 3일째 먹을 거는 냉동실에 넣었다. 그리고 한 시간 타이머를 맞췄다. 아기가 배고파 하기 20분 전부터 준비를 해서 배고프다는 신호를 줄 때 딱 첫 입을 먹이는 것이 나의 계획이었다. 우리 아가의 첫 이유식 두근두근!!
띠리리리! 알람이 울리기 시작했다!
이유식 첫 입 넣는 순간을 영상으로 꼭 남겨주고 싶어서 스토케 의자 옆으로 아기의 모습이 잘 찍힐 수 있도록 카메라를 세팅했다. 이제 냉장고 속에 차갑게 있던 쌀미음을 따뜻하게 중탕하고 아기를 스토케 의자에 앉히고 먹이면 된다! 휴우! 드디어 그렇게 기다려왔던 마지막 스텝만 남았다! 이유식을 중탕 기계에 넣고 거실에서 잘 놀고 있는 아기를 데려와 스토케 의자에 앉혔다. 오잉... 아직 허리에 힘이 완전하지 않아서 아기의 상체가 자꾸 의자 앞으로 기울어졌다. 이럴때를 대비해서 스토케 하네스를 준비해놨어야 하는데 지난주에 남편과 얘기할 때 나는 사자 남편은 사지 말자로 의견을 내놓고 결국 남편의견을 따랐던 것이 이순간 이렇게 후회가 될줄이야. 이대로 앉혀서 먹이면 이유식 소화하는데 무리가 올 것 같았다.
얼른 아기를 범보 의자에 옮겨 앉혔다. 그리고 이유식을 가지러 갔는데 으악! 중탕기계를 코드만 꽂고 전원버튼을 누르지 않아서 10분도 넘게 기계 안에 있떤 이유식이 그대로 차갑게 있었다. 허둥지둥 당황스러운 마음을 겨우 진정시키고 다시 전원 버튼을 누르는 순간 범보 의자에 앉아 있던 아기가 울기 시작했다. 혼자 의자에 앉아 있는 게 지겹기도 한 데다 이제 슬슬 배가 고프기 시작한 것이다. 중탕으로 다시 데우려면 시간이 오래 걸려서 얼른 전자레인지에 이유식 그릇을 넣었다.
10초 돌릴까?
20초 돌릴까?
고민하다가 예전에 친구가 병이유식을 1분 돌렸던 것이 기억나서 나는 용량이 그보다 적으니 30초를 선택했다. 그 짧은 30초 사이 아가는 더 큰 울음소리를 내고 나는 발이 절로 동동 굴러졌다. 거실로 나가 범보의자에 앉아 서럽게 울고 있는 아기를 안고 주방으로 돌아와 전자레인지에서 쌀미음을 꺼내니 아가에겐 너무 뜨거운 상태가 되었다. 하아.. 이걸 이유식 그릇을 잠시 찬물에 담가놓고 싶은데 아가를 내려놓으려고만 하면 다시 크게 울어서 높은 찬장 속에 있는 찬물을 받아놓을 큰 그릇을 꺼낼 수가 없었다. 결국 아기를 안은채 냉장고 속에 내일 먹으려고 준비된 쌀미음과 오늘 먹이려는 뜨거운 쌀미음을 함께 섞었다. ㅠㅠ 그제야 온도가 알맞게 준비된 이유식.... 이제 진짜 이유식을 시작해 보려고 아기를 다시 범보의자에 앉혔더니 더 크게 울어재낀다. 범보의자가 앉기 싫어졌나 보다.
그럼 내가 안고 먹일까 싶어서 자세를 잡아봤더니 아기가 자지러진다. 하아.. 이번텀에 먹일 수 없는 것인가? 다음 텀에 이유식을 주게되면 저녁 7시가 된다. 하지만 첫 이유식을 저녁에 시작했다가 알레르기가 올라오면 소아과 병원이 아닌 응급실로 가야 하기 때문에 될 수 있으면 오후 2시 반인 지금 시작하고 싶었다.
집 안에서는 좀처럼 나에게서 떨어지려고 하지 않아서 아기를 안고 베란다로 나가봤다. 선선한 바람과 새로운 환경에 아기가 좀 진정이 되었다. 살짝 달래진 듯하여 집 안으로 들어오면 또다시 울음이 시작되려고 했다. 결국 릿첼 소프트 의자를 베란다로 가지고 와서 앉히고 바깥에서 먹을 준비를 시작했다. 아기의 얼굴에 짜증은 가득하지만 울지 않고 잘 앉아있었다. 휴 그제야 안도의 숨이 쉬어지며 아기에게 첫 이유식을 줄 수 있었다.
아~~~ 이유식 맛이 어때~? 맛있어~?
아기는 난생처음 분유가 아닌 다른 음식이 들어왔음에도 놀래는 기색도 없이 냠냠 잘 받아먹었다. 먹는거반 흘리는 거 반이었지만 생각보다 너무너무 잘 먹었다. 30ml를 끝낸 후에 바로 연결해서 분유를 주었다. 이유식 먹은 후에 바로 먹는 거라 덜먹을 줄 알았는데 원래 먹던 230ml를 꿀떡꿀떡 다 끝냈다.
다행이다! 잘 먹어줘서 고마워!
분유 마시고 트림하고 아기는 거실에서 놀고 나는 베란다를 치우고 이유식 설거지를 하고 소파에 누웠다. 하하하 어른 한입이면 끝날 30ml를 먹이기 위해서 집에 있는 온갖 아기 의자란 의자는 다 꺼내고 이렇게 힘든 과정을 거치다니!! 헛웃음이 났다. 거실 바닥에서 터미타임 하던 아이가 눈 맞춤을 하며 씩 웃는다.
소파에 누워있다가 아기 옆으로 가서 아기를 안아줬다. 오구오구 그렀어요!! 그래 이 맛에 또 힘내서 육아하는 거지! 내일 먹일 분량을 오늘 이유식 식히는데 써버려서 또 다시 쌀미음을 만들어야 하네! 쌀가루 남을 거 같아서 걱정했는데 이런 실수의 날들은 생각하지 못했다. 여유 있게 가져오길 잘했다. 엄마도 열심히 만들어볼테니 앞으로도 맛있게 잘 먹어주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