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직속' 상사들, 특히 디자이너 사수가 있지 않는 한 생산적인 피드백을 받기는 어렵다. 친구들이랑 하는 작업엔 웬만하면 좋다 좋다 넘어가는 경우가 대다수, 외주도 시간이 촉박하니 그냥 넘어가기 바쁘고.. 취향을 두고 이래저래 실랑이를 한 적은 있어도 이게 '틀렸으니', 혹은 '불편하니' 고쳐야한다는 말을 들어본 건 정말 오랜만인 것 같다.
듣자마자 납득이 가는 조언이었다.
사실 메뉴가 뭔지 정확히 몰랐다. 이유인 즉 아마 구글이나 안드로이드 체제에서 자주 사용되는 형식이었기 때문에 그런 것 같다. 내가 사용하는 IOS에서는 메뉴가 펼쳐지는 경우를 거의 보지 못했다. 오히려 하단에 스크롤 피커가 올라와 도로록- 도로록 굴려가며 고르는 재미가 있었다.
메뉴 사용에 대해선 잠시 뒤로 미뤄두고, 그런 의견이 나온 이유를 먼저 봐야했다. '터치를 좀 더 빠르게 할 수 있을 것 같아서'. 그 말은 현재 상태가 터치 상호작용이 굉장히 느리게 이루어진다는 피드백과도 같다.
그래서 지금 작업한 회원가입/프로필 프로세스를 살펴보자니...
*(디자이너에게 중요한 덕목 중 하나는 피드백을 곧바로 받아들이지 않고, 근본을 먼저 생각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렇게 저렇게 해주세요'해서 고갤 끄덕이고 그렇게 하면 안된다. '이렇게 저렇게 해주세요'라고 말한 이유를 먼저 생각하고, 디자이너 선에서 생각할 수 있는 더 효율적인, 또다른 '이렇게 저렇게'를 제시해야한다.)
이런 식으로 구성되어 있고, 저 아래를 향한 화살표를 누를 때마다 아래에서 스크롤 피커가 팝업되어 해당 항목을 선택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만들 때에는 몰랐지만, 세어보니 회원가입 프로세스에서 필요한 스크롤 피커 팝업은 최대 3번. 작은 수라면 작은 수지만 같은 행동을 세 번이나 반복해야하는 사용자 입장에서 확실히 '느리고 지겹다'라는 느낌을 줄 수 있겠다 싶었다.
그래서 변경안은 이렇다.
초등학교 / 중학교 / 고등학교의 3가지를 굳이 피커를 펼쳐서 보여줄 필요는 없다는 걸 깨달았다.
학년같은 한정된 숫자를 선택하는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단, 학교의 분류를 결정하는 경우에는 최대 9개까지 보여줘야하므로, 메뉴로도 감당할 수 없는 탓에 그대로 스크롤 피커 팝업 방식을 선택했다.
여기서 배운 점은, 피커의 형태 자체가 정보습득에 힌트를 줄 수 있다는 점이다.
이 회원가입 프로세스는 본인의 교육과정을 입력하는 프로세스다.
좌측의 경우 학교의 등급, 분류 등을 선택입력해야하는 홀더와 똑같이 생겼으므로 텍스트를 읽고 이해해야만 이것이 '학년'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인지하는 데에 시간이 걸릴 것이다.
반면 우측의 새로운 UI 속에는 '늘었다 줄었다 할 수 있는 것'이라는 직관적인 힌트가 숨어있다. 먼저 학교를 골랐다는 전제조건 하에, 숫자로 늘고 줄 수 있는 간편한 UI는 이 장소가 학년을 입력하는 곳이라는 것을 은연 중에 알려주는 것이다.
물론, 이런 방식을 통해 생기는 단점도 있다. 중,고등학교는 1학년부터 3학년 뿐이니 괜찮다 쳐도, 초등학교 6학년의 경우 +버튼을 6번 누르거나, 그만큼 오래 누르고 있어야하는 불편함이 생기는 것이다. (사실 1학년에서 -를 누르면 6학년으로 돌아가는 등의 해결 방식도 있다) 어떤 사용자에게는 평범하게 편하고, 어떤 사용자에게는 특히 불편하다는 것, 치명적이다.
하지만 이 숫자 패널이 이야기하는 것이 학년이라는 점에서 납득되는 부분도 있지 않을까 하는 흥미로운 생각이 들었는데, 바로 '학년이 오른다'라는 것이 긍정적인 플러스 요인이라는 점이다. (물론 나이가 들면 플러스 한 살은 그렇게 좋은 경험이 아니지만...) 단순히 1이라는 숫자를 6으로 키우는 것과, 1학년부터 2학년, 3학년을 거쳐 6학년까지로 올리는 것은 다른 경험이 아닐까? 나의 성장을 직접 1부터 올리는 과정이 느껴진다면, 그건 또다른 경험이 되지 않을까? 특히 학년이 오른다는 것을 좋아하는 초등학생들에게는 더더욱.
변명일지도 모르지만, 재미있는 발상이 될 것 같다.
'유저가 UX가 의미하는 실제 과정에 긍정적이라면, 그 과정을 의도적으로 느리게 만들어도 되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