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8주 차를 넘어가는 예비엄마로서 요즘 제가 겪는 아름다운 일들을 공유해보려고 합니다. 임신 사실을 알고 나서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출퇴근 지하철을 어떻게 헤쳐나가지?'였습니다. 지하철에서 이런저런 슬픈 일들이 있었다는 친구들 이야기를 익히 들어왔고, 임산부일 수 없는 분들이 임산부석에 앉아계신 경우를 많이 봤기 때문에 처음부터 단단히 각오하고 있어야겠다 싶었어요.
결과적으로 저는 엄청난 배려를 받고 있어요. 한 달간 지하철을 타고 다니면서 다양한 승객 분들에게 자리양보를 받았는데, 그중에 기억나는 것들 몇 개을 적어봅니다.
고속터미널에서 수많은 인파와 함께 지하철을 탔던 때였어요. 그날따라 속이 메슥거리고 컨디션이 메롱 이었지만 임산부석은 나이 지긋하신 아주머니 한 분과 대학생으로 보이는 여자분이 앉아계셨어요. 20분만 버티자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제 앞에 있는 할머니가 배지를 보더니 벌떡 일어나서 자리를 양보해 주셨어요. 너무 황송해서 괜찮다고 하던 찰나에 옆 자리가 나서 사이좋게 앉아서 가게 되었습니다.
할머니는 임산부석에 앉은 여자를 쳐다보더니 큰 소리로 임산부가 아닌데 임산부석에 앉은 사람이 있다고 중얼거리셨어요. 그 때문인지는 모르겠으나 그분은 곧 내렸고 그다음에는 어떤 아저씨가 앉으려고 하셨습니다. 그랬더니 임산부석 안 비워놓으니까 임산부들이 못 앉지 않냐고 가벼운 핀잔을 주셨어요. 너무 감사한 마음이었지만 덕분에 저는 그 칸에 있는 모두의 눈빛을 느끼며 임산부석으로 옮겨갔습니다. 아저씨는 멋쩍게 잘 몰랐다면서 비워두겠다고 하셨고요. 할머니 최고!
얼마 전에는 그다지 붐비지 않는 1호선을 탔는데 역시나 아주 젊은 여성 분이 앉아계셨어요. 다른 편 임부석은 자리가 비어있어 지나가고 있는데 그새 배지를 본 할아버지가 그 여성 분을 거의 밀어내다시피 하시면서 제 배지를 보라고 가리키셨어요. 저기 가서 앉으면 된다고 말씀드렸는데 잘 안 들리셨는지 얼른 앉으라고 하셔서 결국 앉았습니다. 그 여성 분의 따가운 눈총 속에 오기는 했지만 마음이 너무 푸근해졌어요. 할아버지도 최고!
매번 받는 양보는 아니지만 받을 때마다 마음이 벅차오르는 것은 어쩔 수 없습니다. 제 나이 또래의 여성 분들도 일반석을 자주 양보해 주셔서 편하게 다니고 있습니다. 저도 배지를 보면 부지런히 자리를 양보해 왔는데 이렇게 상부상조하며 사는 세상이구나를 느꼈어요. 아직 배도 나오지 않은 초기임산부지만 따뜻한 배려 속에 한 달이 무사히 지나갔네요. 앞으로 갈 길이 멀지만 저는 큰 걱정 없이 지하철을 타는 법을 익혔고, 회사도 외근도 마음 놓고 다닐 생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