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한상영변호사 Jul 06. 2021

6전 6패의 오기 ➀

뒷산을 강아지 버니와 산책하고 있는데 갑자기 핸드폰에 문자 메시지가 떴다. 


“형님, 아직 사건이 끝난 게 아닙니다. 대법원에서 승소했다고 좋아하지 마세요. 조만간 경찰이나 검찰에서 다시 봅시다. 마음의 준비나 잘하세요. 친형처럼 생각했기 때문에 마음의 상처가 더 큽니다.” 내 고객이었던 분이 오늘 친척인 사촌 동생으로부터 받은 문자를 그대로 나에게 전달해 주었다. 


그는 불과 몇 개월 전에 그 사촌 동생과 5년 동안 무려 6번의 민사 재판을 끝냈던 참이었다. 사실 말이 그렇지 주위에는 살면서 재판 한번 하지 않고 사는 사람이 대부분이다. 그런데도 그는 한 번도 아니고 여섯 번이나 재판을 했다. 그것도 친척인 사촌동생과 말이다.


그로부터 사건을 수임하여 여섯 번이나 재판을 진행했던 나도 치열한 분쟁의 소용돌이 속으로 들어가지 않을 수 없었다. 그가 안쓰럽기도 했다. 보통 이런 사건의 고객들과 상담하거나 재판을 진행하다 보면 고객들은 대부분 평정심을 잃거나 분노하기 십상이다. 경제적인 이해관계가 걸린 상황에서 자신에게 큰 피해가 올 수도 있기 때문에 촉각이 예민하게 곤두세워 있다. 그럼에도 그는 여느 고객과 달리 늘 마음이 평온한 편이었다. 그런 고객을 만나는 것도 변호사로서는 감사한 일이었다.


참 악연도 길다 싶었다. 사촌 친척 사이인 그들이 이렇게까지 틀어지게 된 것은 시골에 있는 땅 덩어리 때문이었다. 밭농사를 짓는 땅인데 그 땅 주인이 누구냐에 대해 둘 사이에 무려 6번의 민사재판이 벌어졌던 것이다. 부동산 소유권 분쟁이었다. 


이 사건처럼 친족 사이의 갈등은 남남인 경우보다 그 감정의 골이 매우 깊다. 혈연으로 맺어진 관계이기 때문에 당사자뿐만 아니라 선조 때부터 문제가 복잡하게 얼기설기 꼬여 있다. 재판이 종결되어도 남남처럼 무시하며 살기가 쉽지 않다. 악감정의 꼬리가 길게 이어져 특히 패소자는 일종의 오기가 작동하고 끝까지 완전한 패배를 인정하지 않으려 한다. 


재판을 진행하는 변호사 입장에서도 그런 뿌리 깊은 갈등관계에 개입하여 소송을 수행하는 것이 여간 쉽지 않다. 이런 경우에 변호사는 분노와 배신감으로 휩싸여 있는 당사자의 감정을 최대한 다독거리며 객관적인 시각에서 문제를 분석하는 것이 중요하다. 사실과 증거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법적인 결론은 어떻게 되는지 고객에게 잘 설명해야 한다. 이 사건이 바로 전형적인 그런 케이스였다.


갈등의 뿌리는 위로 3대까지 거슬러 올라가 조부 때부터 시작되었다. 이렇게 갈등이 선대부터 시작하는 사건은 당연히 스토리가 매우 길고 복잡하다. 자료나 증거도 턱 없이 부족하다. 무엇이 진실인지 기초적인 사항을 제대로 분별하기가 무척 어렵다. 사건을 설명하는 고객은 오랜 세월의 복잡한 가족사를 잘 전달해야 한다. 변호사인 나도 3~4대에 걸친 고객의 가족사를 다 듣고 그중에서 법적으로 반드시 체크해야 할 사항을 정확하게 파악해야 한다. 남의 가족사를 그렇게 자세하게 알아야 하는 것도 변호사의 업무이다.


고객이 선조 이야기를 꺼냈다.


“ 조부는 슬하에 8남매를 두었습니다. 자녀들도 오순도순 살았지요. 조부는 땅 부자였습니다. 시골의 특정 지역이 모두 조부의 소유였습니다. 그 땅에서 가족들이 농사를 짓고 살면서 부족함이 없었습니다. 조부는 6. 25 동란 중에 사망했고 조모도 이즈음 사망했습니다. 그래도 땅의 등기는 여전히 사망한 조부의 명의 그대로 남아 있었습니다.”


이렇게 땅의 등기를 정확하게 정리해 놓지 않으면 이 사건처럼 나중에 결국 분쟁의 씨앗이 될 가능성이 크다. 조부모가 사망한 후 그 땅은 복잡한 경위를 거쳐 결국 2남(차남)이 소유하게 되었다. 그러나 등기는 여전히 조부의 명의인 상태였다. 


 2남은 이 땅을 산 후 갑자기 막내 여동생(8녀)이 생각났다. 여동생은 출가하여 살던 마을을 떠나 다른 지역으로 시집을 갔다. 시집 형편이 그리 넉넉하지 않았다. 살던 집도 새로운 댐이 건설되면서 수몰되어 버렸다. 2남(오빠)은 막내 여동생이 불쌍한 생각이 들었다. 여동생을 만났다.


“살기가 무척 어렵지? 고생이 많구나.”

“뭐, 사는 게 다 그렇지요.” 동생이 아무렇지 않다는 듯이 대답했다. 하지만 동생의 얼굴에 나타난 표정은 살아가는 게 그리 만만치 않은 기색이 역력했다. 


“고향 마을 강변에 아버지 땅 기억하지? 그 땅을 형수(1남의 처)가 다른 사람에게 판 것을 내가 다시 사 왔어. 살던 집이 물에 잠기고 마음도 심란할 텐데 고향으로 돌아오면 어떻겠냐? 내가 산 땅에서 밭이나 일구면서 농사를 지으며 살면 그래도 입에 풀칠은 할 수 있지 않겠냐?”


오빠는 막내 여동생의 처지가 딱하여 어떻게라도 도와주고 싶은 마음에 이렇게 제안을 했다. 그러나 땅의 소유까지 여동생에게 주는 것은 아니라고 분명하게 말했다. 어디까지나 여동생은 농사만 지으라는 것이다. 


그런데 이게 결국 화근이 되었다. 힘들게 살고 있던 막내 여동생을 어떻게라도 돕고 싶어 하는 오빠의 순수한 선의가 그 후대에서 6차례의 민사재판을 벌이게 되리라곤 둘 다 꿈에도 생각지 못했을 것이다. 어설프게 베푼 선의가 악의를 품은 자에 의해 악용되면서 화로 변하여 부메랑으로 돌아온 셈이었다.


오빠의 제안을 따라 남편, 자녀들과 함께 고향 마을로 돌아 온 막내 여동생은 오빠가 사 놓은 땅에서 농사를 짓기 시작했다. 여동생은 영농자금이 필요했다. 오빠는 금융기관에 땅을 담보로 제공하여 빌리는 돈으로 여동생을 도와줄 계획을 세웠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담보대출의 1인당 한도가 정해져 있어서 1명에게는 충분한 돈을 빌려 줄 수가 없어요.”금융기관 직원이 안타깝다는 듯이 오빠에게 말했다.

“ 무슨 방법이 없을까요? 돈이 꼭 필요합니다.”오빠가 간절한 표정으로 물었다.

“ 땅의 등기를 여러 명으로 나누어 분산해서 대출받으면 가능합니다.” 직원이 방법을 알려 주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살며, 다투며, 배우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