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r Honor! ”
미국의 법정 영화를 보면 재판정에 있는 판사를 직접 면전에서 부를 때 이 단어로 호칭한다. 군주제의 역사를 가지고 있는 영국에서 왕을 “Your Majesty!”(폐하)라고 부른다. 둘 다 비슷한 맥락의 느낌이다. 상대방에 대한 깊은 존경심과 경외심이 용어에서 짙게 베어 나온다. 어원상으로도 앞부분의 “ho”는 하늘, 높다는 의미이고, 뒷부분의 “nor”는 북쪽(north)을 뜻한다고 한다.
판사를 그냥 심판관을 뜻하는 “Judge”라고 부르지 않는 것은 왜일까? 그만큼 대립하는 이해관계의 당사자 사이에서 정의를 심판하는 재판이 가지는 중요성과 의미가 매우 크기 때문일 것이다.
형사 재판의 경우 인신 구속뿐만 아니라 사형제가 있는 나라에서는 인간의 생명까지 박탈하는 일이 벌어진다. 그렇기 때문에 과거 민주화가 뒤떨어진 시기에 우리나라 형사 재판정에서는 재판을 받는 민주화 인사나 방청객들이 재판정에 있는 판사를 향해 큰 소리로 야유하거나 재판을 거부하는 일도 자주 있었다. 독재 정권이 만든 비민주적인 악법을 적용하여 심판하는 재판에 대해 더 이상 정의는 없다고 본 것이다.
민사 재판에서도 가족관계나 경제적 이해관계가 극명하게 갈린다. 몇 년 전 안성기가 주연한 영화 “부러진 화살”도 이러한 예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이 영화는 석궁테러라는 유명한 실제 사건을 모티브로 했다. 서울의 모 대학교수가 자신의 재임용을 거부한 대학 당국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어떤 이유인지 정확히는 모르지만 그가 소송에서 패소하자 앙심을 품고 재판장에게 석궁테러를 가했다. 이 사건은 재판의 권위에 대해 사회에 큰 경각심을 일으키며 당시 국민들에게 많은 충격을 주었다.
이제는 시대가 많이 바뀌어 이런 경우를 보기 힘들어졌다. 특히 민사 재판은 신체의 자유를 좌우하는 형사재판과는 성격이 많이 다르기 때문에 대부분 점잖은 분위기에서 진행된다. 민사적으로 복잡한 법리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판사는 사건에 골몰하며 신중하게 처리한다.
당사자도 그런 판사에 대한 최대한의 존중과 예의를 갖추고 사건에 임한다. 여러 사건을 변호해 왔던 내 사건에서도 지금까지 대부분의 당사자들은 이와 같은 태도를 보였다. 하지만 역시 사람 사는 세상에 예외도 있었다.
하나는 홍수 피해와 관련된 사건이었다.
몇 년 전 경기도 일대에 엄청난 폭우가 쏟아졌다. 비 피해가 매우 심했다. 도로가 물에 잠기고 산사태가 났다. 방송에서도 연일 비 피해의 심각성을 보도했다. 내 고객은 그 지역에 야산을 가지고 있었다. 그곳에서도 산사태가 발생했다. 이 때문에 산에서 흘러내린 토사가 야산 부근에 있던 물류센터를 덮쳤다. 건물에 있던 많은 물건들이 손상되고 토사로 뒤범벅이 되었다. 건물 주인은 많은 비용을 들여 복구 작업을 벌였다.
결국 건물 주인은 야산의 소유자인 내 고객을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소송을 제기했다. 피고가 된 내 고객도 억울하기는 마찬가지였다. 폭우는 고객이 어떻게 할 수 없는 불가항력적인 자연재해이기도 했다. 당연히 면책을 주장했다.
그런데 피해자는 산사태가 얼마 전에 고객이 산사태 부근에서 벌목 작업을 했던 것을 알아내고 그것 때문에 피해가 발생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래서 모든 책임이 고객에게 있다고 주장했다.
고객은 이에 반박했다. 상대방이 건물을 신축했는데 고객의 야산과 너무 가깝게 지었고, 이를 위해 상대방이 고객의 야산을 너무 경사지게 깎아내리고 옹벽을 친 바람에 산사태가 난 것이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그가 찍은 현장 사진을 여러 장 보여주었다.
고객과 함께 직접 현장을 방문하여 살펴보기로 했다. 현장에 가 보니 고객의 말이 틀리지 않아 보였다. 자세하게 현장 구조와 상황을 정리한 준비서면을 작성하여 법원에 제출했다. 전문적인 감정인의 감정서를 받아 보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 법원에 감정도 신청했다.
그리고 재판부가 직접 현장을 방문하여 직접 눈으로 이와 같은 실제 상황을 보아야 사건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아 현장 검증도 신청했다.
현장 검증일이 되었다. 고객과 함께 현장에 먼저 가서 대기하였다. 감정을 실시할 감정인도 왔다. 드디어 재판부를 태운 차가 도착하였다. 합의부 재판이기 때문에 판사 3명 (부장판사 1명, 배석 판사 2명), 그리고 법원 사무관 등 여러 명이 차에서 내렸다.
3명의 판사들이 사건 현장을 이리저리 다니며 조사를 하고 있을 때 상대방은 판사들을 따라다니면서 큰 소리로 자기의 주장을 내세우기 시작했다. 내 고객도 만만치 않았다. 서로 간에 고성이 오갔다.
상대방은 흥분하기 시작했다. 아예 내 고객을 향해 화를 내고 고함을 치기 시작했다. 거의 말싸움 수준이었다. 검증하는 내내 그는 분을 풀지 않았다. 판사 3명 앞에서 그는 화를 좀처럼 누그러뜨리지 않고 내내 씩씩거렸다.
40대 후반의 부장판사인 재판장은 상당히 점잖은 분이었다. 보통 같으면 판사도 사람인지라 한마디 큰 소리 할 것 같은데 전혀 그렇지 않았다. 조용히 훈계하는 정도였다. 인격적으로 매우 훌륭한 분이었다.
재산상 피해 때문에 아무리 감정이 상했다 해도, 법정 재판으로 간 이상 원고, 피고 모두 재판부의 권위와 판단을 존중할 필요가 있다. 판사 앞에서 최소한의 예의를 갖추는 것이 도리이다. 하지만 상대방은 이런 기본적인 재판 태도를 완전히 무시하고 오직 자신의 피해만을 내세웠다.
자신의 피해 사실에 눈먼 나머지 마치 “이 판국에 판사가 대수야!” 하는 태도였다. 상대방의 민낯을 보이는 태도에 변호사인 나도 민망할 정도였다.
그러나 재판이라는 것이 목소리만 크다고 다 해결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은 경험을 통해 잘 알고 있었다. 거의 난장판이 된 현장검증 절차를 끝내고 얼마 후 다시 법정에서 재판이 계속되었다.
감정인에 의한 감정 결과가 나왔다. 감정인은 감정 보고서에서 산사태의 주원인은 벌목작업이 아니라, 건물 주인인 상대방이 건물을 신축할 때 산과의 간격(이격거리)을 충분히 두지 않고 너무 경사진 옹벽을 만들었기 때문이라고 평가했다.
드디어 재판 결과가 나왔다. 상대방의 청구가 거의 기각되고 일부만 인정되었다. 사실상 상대방의 패소였다. 판결 내용이 너무 잘 작성되어 있어서인지 상대방은 1심 판결에 불복하지 않고 그대로 사건이 종결되었다.
사건이 끝난 한참 후에도 점잖은 그 재판장의 온유한 태도가 뇌리에 계속 남았다.
감정적으로 대립되는 수많은 분쟁 사건들을 처리하면서도 어쩌면 그렇게 마음의 동요 없이 차분하고 친절하게 재판을 진행할 수 있는지 존경심이 저절로 우러났다. 몇 년 후 법원 인사이동에서 그분은 서울지역의 지방법원장으로 승진하였다. 그는 법원 내부에서도 진정한 “Your Honor”였던 것이다.
조정실에서 판사와 조정을 진행하던 중에 고객이 조정실을 뛰쳐나가 버리는 사건도 있었다.
고객은 서울의 어느 아파트를 매수하였다. 계약금을 지급했다. 중도금은 없었고 잔금일에 잔금만 지급하기로 되어 있었다. 잔금일 전에 매도인의 양해 하에 이사 갈 아파트의 내부 인테리어도 진행하였다. 상대방이 중도금을 일부 달라고 하여 고리의 사채를 빌려 예정에 없던 중도금도 일부 지급했다.
그런데 아파트 가격이 급격하게 상승하자 매도인의 마음이 바뀌었다. 어떻게든 계약을 파기할 구실을 찾다가 매도인이 결국 계약을 해제한다는 통지를 보냈다. 결국 고객은 소유권이전등기 소송을 제기했다. 상대방의 계약 불이행 때문에 고객이 부당하게 입은 손해배상도 청구했다.
1심 재판에서 승소했다. 그런데 상대방이 1심 판결에 불복하여 2심 재판으로 진행되었다. 고등법원에서는 이 사건을 조정으로 해결하려고 했다. 조정기일이 되었다. 고객은 아내와 함께 조정실에 참석했다. 손해배상 금액을 얼마로 하느냐가 다툼이 되었다.
상대방이 손해배상 금액을 깎자고 말했다. 조정을 진행하는 판사도 상대방에게 동조하는 듯 손해 금액을 좀 낮추자고 했다. 은근히 판결이 불리할 수 있다는 것을 암시하며 합의를 종용하는 것처럼 보였다.
당초 고객이 손해배상을 요구한 금액이 매우 큰 금액은 아니었다. 하지만 고객은 상대방이 1심 판결에 불복하고 2심까지 오게 되어서 감정적으로 매우 나빠진 상태였다. 그런데 판사가 상대방 요구를 어느 정도 받아들여 배상금액을 감액하려고 하자 그의 안색이 변했다.
도저히 인정할 수 없다는 태도였다. 판사도 양보할 기세가 보이지 않았다. 그러자 갑자기 고객이 자리를 박차고 조정실 밖으로 나가 법원을 떠나버렸다. 판사는 물론 나도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어쩔 줄 몰라 난처해하던 그의 아내는 끝까지 조정실을 지켰다. 고객의 아내와 상의 끝에 조정에 합의하고 사건을 종결하기로 했다. 그렇게 해서 빨리 매수한 아파트로 이사를 가는 것이 더 큰 손해를 방지하는 길이었기 때문이었다.
판사가 재판이나 조정을 진행하는 중에 당사자가 무례하게 자리를 박차고 뛰쳐나가버린 것은 나에게 이 사건이 유일무이한 케이스였다. 공교롭게도 이 사건을 담당한 재판부는 영화“부러진 화살”의 실제 판사들이었다.
“Your Honor!”라고 부를만한 가치가 있는 정의로운 재판은 어떻게 이루어질 수 있을까?
사건을 변론하던 당시의 나를 되돌아보면 많이 부족했다. 수해 피해를 입은 건물 주인이 왜 그렇게 악을 쓰고 화를 내었는지 당시에는 전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조정실을 뛰쳐나간 고객의 무례한 태도도 물론 동의할 수 없었다. 어쩌면 나는 당사자가 아니기 때문에 피해자의 감정을 제대로 공감할 수 없었다.
오직 정의의 관점에서 누가 옳고 누가 그르냐의 이분법적인 기준으로 사건을 바라보았다. 설사 누군가가 피해를 입었다 해도 그로 인해 피해자가 얼마나 마음이 아플까를 보지 않았다. 정의의 기준에서 소송의 승패를 가장 중요하게 여겼다.
올바른 법적인 결론을 정확하게 내리는 것도 중요하다. 하지만 사건 속에서 신음하며 고통을 겪고 있는 원고, 피고 당사자들의 깊은 속마음까지 헤아려 준다면 승패를 떠나 누구나 승복하는 재판이 될 수 있다.
변호사는 직업상 소송에서 반드시 어느 한쪽을 편들어야 한다. 그렇지만 사건에 매몰되지 않으면서, 원고, 피고 모두의 진정한 내면과 속마음을 헤아릴 수 있는 공감력과 통찰력을 갖춘다면 "Your Honor"는 못되더라도 존경받는(honorable) 변호사가 되어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