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cindy May 08. 2022

노력을 그만두기로 했다.

어느 디자인 노동자의 하소연

안되는 일을 되게하기 위해  자신을 끊임없이 몰아부쳤다.  살이었든 내가 어떤 신분이든, 주위 사람들에게 떳떳하게 나는 이러이러한 사람이야 라고 말할  있는  프로필의  줄을 보여주기 위해   까지 노력했던 것 같다.  나은 성장을 위해 꿈은 원대하게 가져야 한다지만  단계에서 나는 만족이라는  모르는 사람이었다.  미래의 키워드는 '성공'이라는 단어에서 파생된  어떤 것들이었다.


적성에도 맞고 교수님께도 인정받으며 다녔던 첫번째 대학교를 다니면서 나는 더 좋은 학교에 가고싶었고 더 유능한 학생들과 공부하고 싶었다. 헛된 시간이 될 수도 있는 1년이라는 시간에 야구장 매표 알바를 하며 편입 공부를 했다. 엄마의 권유도 한 몫을 했지만 진득하게 의자에 앉아서 공부하는 스타일이 아니라는 건 누구보다 잘 아는 내가 무슨 깡으로 휴학을 호기롭게 신청했는지 모르겠다. 10시간씩 앉아서 공부해도 힘들다는 편입 공부를 잉여롭게 하면서도 "나 공부하고 있어. 공부하는거 진짜 힘들다?" 생색내며 스트레스는 그 누구보다 더 많이 받았다. 암기형이라는 편입 시험의 특성과 운빨의 합으로 원하는 학교에 들어간 후에는 인간관계를 넓히기 위해, 대학생활의 이력에 한 줄을 추가하기 위해 수 많은 대외활동을 했다. 정작 전공공부와 취업준비는 뒷전으로 미뤄놓고 말이다.

이 때 까지만 해도 나는 뭐든 열심히만 하면 되는구나, 취업도 연애도 결혼도 내가 노력하면 될 거라는 대단한 착각에 빠져 있었던 것 같다. 몇 년 후에는 어떤 곳에서 어떤 모습으로, 내가 원하는 내 미래의 모습을 예쁘게 그려놓고 그것이 이루어 지지 않았을 때의 뼈아픔을 모른채.


내가 더이상 노력을 하지 않기로 한 건 두번째 회사에 입사한 후 뭐든 잘 해내려고 했던 내 의지와 노력이 조직 내의 이해관계와 부서 이동으로 무시당한 후 부터이다.

그렇게 원하던 이직을 성공했지만 얼마 가지 않아 나의 능력을 인정받고자 하는 불타는 의지는 무참히 짓밟혔다. 내가  작업물을 두고 갖다붙일  있는 온갖 지적을 하며 '기어오르지 말라' 말을 그렇게 에둘러 했던 상사였다. 회사만 가면 가슴이 두근대는 불안장애가 그때부터 시작됐던 건지도 모르겠다. 디자인에 있어서는  누구보다 자신이 있었다고 생각했던 내가 벌벌 떨며 오로지 상사에게 혼나지 않기 위한, 사람의 입맛에 추기 위한 수동적인 디자인을 하고 있었다. 회사가 나의 자아실현과 꿈을 펼치는 곳은 아니라지만 내가 진정 하고싶은 디자인이 뭔지, 앞으로 어떻게  커리어를 쌓아 나갈지 등의 고민은 저리 치워놓고 오직  회사의 디자이너라는 타이틀이  자신을  설명했다.

회사에서는 내가 하고싶은 디자인을 할 수 없어, 100% 다 만족할 수 있는 회사는 없겠지 라는 합리화가 무섭게도 그 조직에서 3년이라는 시간을 버티게 해 주었다. 일에 있어서는 잘하고 완벽하고 싶은 내 성향 때문일지도 모르지만 그 3년동안에는 어떤 사소한 작업이라도 혼을 다해 디자인을 했다.

퇴근 후와 주말에 개인 작업으로 내 디자인에 대한 목마름을 채웠고, 다음 스텝을 위해 포트폴리오도 열심히 정리했다. 이렇게 노력을 하는 동안에는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나는 이렇게 노력하는 사람이라는 내 모습을 뿌듯 해 하며.  

하지만 그 조직에 수년간 길들여진 내 상사에게 '디자인'이란 컨펌을 목적으로 한 작업, 상황과 때에 맞게 대충 해도 되는 작업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다. 그런 그녀의 눈에 내 '헛된'노력은 윗 사람에게 잘 보이려는 정치에도, 연봉을 올리는 데에도 티 나지 않는 수고로 비춰질 수 있었을 지도 모른다.


입사한 지 3년 쯤 되던 날, 조직 개편으로 나는 다른 부서에 이동 되면서 더 이상 잘하려는 내 노력을 멈추었다. 회사에서 필요로 하는 역량은 결과물의 퀄리티 뿐 아니라 그 조직의 문화와 수직 구조에 얼마나 잘 스며들어 중도를 지킬 수 있는지

지금은 다른 부서에서 일하고 있지만 나는 여전히 조직이라는 어쩌면 잘 살아남기 위한 법을 가르쳐 주는 환경에서 디자이너가 아닌 일개 회사원으로, 언젠간 당당한 탈출을 꿈꾸며 노동 중이다. 열심히 한 계단 한 계단 앞만 보며 달려오던 예전의 나는 잠시 멈추었다.

'더 해야 해' 라며 타블렛 펜을 놓지 못하는 나에게 이 정도 까지만, 이정도면 괜찮아 라는 내려놓음이 필요한 시기이다.  

-2019년 어느 날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