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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머뭇펭귄 Feb 02. 2022

광야 요정들의 '순한 맛' 겨울나기

에스파 - Dreams Come True





1. 들어가며


작년 12월 공개된 에스파의 디지털 싱글. SM STATION 프로젝트를 통해 발표된 곡으로 선배 걸그룹 SES의 동명의 곡 'Dreams Come True'를 리메이크한 버전이다. STATION을 통해 발표 되었던 기존 곡들에 비해 퀄리티가 매우 높고 음원실적도 전작 'Savage'에 버금 갈 정도로 좋은 편이다. 프로젝트성 앨범 치고 SM에서 여러모로 공을 많이 들인 티가 난다.


처음 뮤직비디오를 보고 상당히 영리한 기획이라는 생각을 했었다. 먼저 한 해 동안 Next Level -> Savage로 이어지는 마라맛 컨셉에 지친 에스파 팬들에게는 마치 쿨피스같은 곡이 아니었을까 싶다. 가끔씩은 이렇게 난해함을 덜어낸 대중적인 곡으로 '일반적인 걸그룹스러움'을 보여주는 것도 좋다고 본다. 또 원곡의 유명세를 빌려 MZ세대 뿐 아니라 조금 더 윗세대에도 어필할 수 있는 기획이었다고 생각한다. 우리 윗세대는 에스파는 아직 잘 모르지만 SES는 잘 아니까 말이다.



2. 비주얼 컨셉


처음 뮤직비디오를 보고 음악도 음악이지만 의상과 배경이 정말 매력적이라고 느꼈다. 뮤비에는 총 세 가지의 테마가 등장하는데, 정원 씬, 차고 씬, 미래도시(?) 씬이다. 곡의 분위기가 바뀌면서 멤버들이 춤을 추는 배경과 의상이 변하는데 색감이나 무드가 너무 찰떡이어서 감탄하면서 봤다. 특히 차고 씬의 청바지, 조던, 그라피티, 브릿지 헤어 등의 레트로한 무드가 기존의 에스파가 보여주었던 네오함과 상반되는 느낌이라 가장 인상적이었다.



a. 정원 씬


원곡의 바이브가 가장 많이 느껴지는 씬. 순백의 미니드레스를 입은 멤버들과 동화적인 아치형 정원 배경이 마치 올림푸스에 사는 네 여신같은 느낌을 준다. 저 보랏빛 정원은 CG처리를 한 것인지 실제로 있는 정원인지가 궁금하다.



b. 차고 씬


잘 보면 뒤에 Dreams Come True의 가사를 담은 그라피티가 있는데 이 장면을 위해 손수 제작한 듯 하다.



c. 미래도시 씬

영국 근위병 모자같은 어그부츠와 카리나의 핑크색 어깨뽕이 인상적이다. 닝닝의 의상은 뭔가 데스노트의 미사가 생각나기도.



3. 음악 분석

https://www.youtube.com/watch?v=H69tJmsgd9I


1) 곡의 구성

Intro -> Verse1 -> Hook1(A) -> Hook1(B) -> Verse2 -> Hook2(A) -> Hook2(B) -> Bridge(A)-> Bridge(B) -> Hook3(A)


굉장히 다채로운 구성이다. Hook과 Bridge가 두 부분으로 쪼개지고, 후술하겠지만 중간중간 장르가 바뀌기도 한다. 멜로디는 원곡과 큰 차이점은 없지만 Hook 부분에 "I'm in twilight zone"이라는 멜로디 라인이 추가되었고, Verse2의 멜로디라인과 가사도 수정되었다. 단조롭게 흘러가는 원곡의 지루함을 덜고자 노력한 흔적들을 엿볼 수 있다.


2) 작편곡적 특징


a. SMP스러운 인트로

인트로는 무조성의 강렬한 트랩리듬으로 시작되며, 반음계로 하강하는 독특한 Lead 악기가 등장한다. 이러한 인트로는 엑소, NCT등 수많은 SMP 스타일의 곡들에서 찾아볼 수 있는 유형이다. 특히 반음계로 하강하는 음산한 리드 멜로디는 굉장히 많은 SM 아티스트의 음악에 등장한다. 대표적으로 NCT 127 - Cherry Bomb, EXO - Ko Ko Bop 이 있다.


https://www.youtube.com/watch?v=WkuHLzMMTZM


https://www.youtube.com/watch?v=IdssuxDdqKk


b. 프리코러스의 부재

Black Mamba, Savage 등은 'verse - prechorus- hook' 으로 이어지는 전형적인 케이팝 작법을 따르고 있는 곡이다. 이에 반해 Dreams Come True 는 프리코러스가 생략되어 verse 다음에 바로 hook이 등장한다. 프리코러스를 넣으면 곡 전체에 분절감이 생기며 좀 더 드라마틱한 연출이 가능한데, 프리코러스를 생략하면 드라마틱함은 적어지지만 곡 전체가 신속하게 흘러간다는 느낌을 주어 덜 루즈한 감이 있다. 요즘 나오는 팝들은 프리코러스가 생략되는 경우가 많은데 Dreams Come True도 이전의 타이틀곡들보다 좀 더 요즘 트렌드를 반영한 듯 보인다.


c. 신비로운 Synth Lead 멜로디

'레레 미파미레라라'가 반복되는 D minor scale의 신스 멜로디가 매력적이게 들린다. 원곡과 같은 멜로디이지만 원곡보다 High부분을 Cutting해 좀 더 몽글몽글하고 동화스러운 느낌을 주었다.


d. 전조(Modulation) 없는 분위기 전환

SM이 발매한 곡들을 잘 들어보면 전조와 모드스케일 등을 활용해 재지한 느낌이 드는 곡들이 많다. 그러나 Dreams Come True는 곡 전체가 D Minor의 다이어토닉 음계를 벗어나지 않는데도 Verse와 Hook의 무드가 꽤 다르게 느껴진다. 이는 사용된 악기와 리듬감의 차이에 기인하는데, Verse의 경우 Side Chain이 걸린 신스패드가 낮게 깔려 몽환적인 느낌을 주는 반면 Hook에서는 어택감있는 신스코드가 ascending하며 상쾌하고 발랄한 느낌을 주고 있다. 더해서 리드미컬한 808 베이스가 훅에서 추가되며 verse에 비해 좀 더 댄서블한 느낌을 주고 있다.


e. Hook과 Bridge 안에서의 장르 변화

이 곡은 특이하게 Hook이 두 파트로 나뉘어져 있다. Hook(A)에서 리드미컬하고 댄서블한 느낌을 주다가 Hook(B)로 가면서 퍼커션이 빠지며 Verse에서 느꼈던 몽환적인 무드로 전환된다. 그러다 갑자기 Moombahton 리듬이 등장하며 훅이 마무리된다. 훅 안에서 장르 변화가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같은 양상의 장르변화는 Bridge 파트에서도 나타나는데, Bridge(A)가 느린 트랩 리듬으로 흘러가는 반면 Bridge(B)에서는 뭄바톤 리듬으로 전향된다.


* 블랙핑크가 Trap과 Moombathon을 한 곡에 담아내는 경우가 많은데 대개 마지막 Hook에서 뭄바톤 리듬이 등장한다.


f. 소울풀한 Bridge 애드립

유영진의 취향이 듬뿍 반영된 듯 한 R&B 애드립이 브릿지에서 등장한다. 유영진은 본인 자체가 R&B 보컬인 탓도 있겠지만 상당히 소울풀하고 우수에 젖은 R&B 탑라인을 잘 만든다. 또한 보컬 포지션의 멤버들 모두 상당한 수준의 R&B 보컬이라고 평가하고 싶다. 보아-태연의 계보를 잇는 SM 스타일의 R&B 디바가 에스파 라는 그룹을 통해 또 한 번 탄생할지도 모르겠다.



4. 필자 코멘트


- SM의 기획은 노련하고, 멤버 구성은 나무랄 데 없다. SMP의 '쎈 캐' 바이브부터 SES식 요정 컨셉과 레트로 무드까지 소화 가능한 멤버들에게 박수를.


- 네 멤버의 보컬 합이 상당히 좋다. 블랙핑크처럼 각 멤버들의 캐릭터가 분리되어 있으면서도 뭉쳐 놓았을 때 이질감이 없다. 멤버들의 R&B 애드립 실력이 훌륭하다. 각 멤버들의 솔로 활동도 기대가 되는 부분.


- 비주얼 레퍼런스를 어디서 수집하는지 궁금할 정도로 의상과 배경 구성이 좋다. 이번 곡은 한 곡 안에 여러 컨셉이 들어가 있어서 비주얼 기획팀이 머리를 쥐어짜냈을 듯 하다.


- '광야 서사'를 이어받은 곡처럼 보이지는 않는다. 뮤비 전체에 별 다른 서사가 없고 각 씬들도 이미지 컨셉에 초점을 맞췄을 뿐 특별한 내러티브가 숨겨진 것 처럼 보이지는 않는다. 다만 가사에 등장하는 '너'를 'ae멤버들'로 치환한다면 광야 내러티브의 연장선상에 있다고 볼 수도 있겠다. 필자는 별 다른 접점은 없다는 쪽에 한 표를 던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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