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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키츠네 Sep 07. 2024

열병

나는 몹시 앓고 있습니다. 흘러간 우리의 공기를 더듬을 때마다 마음속에서 신음 소리가 들려옵니다. 오늘은 당신에게 잘 보이고 싶었는데 그러지 못한 것 같습니다. 당신은 어떻게 생각할까요. 당신이 소중히 내어 준 시간 앞에서도 나는 그저 석상이 되어버립니다. 당신은 메두사인가요. 나는 페르세우스가 되지는 않으렵니다. 몸이 굳을지라도 당신 앞에 서고 싶은 마음입니다. 굳은 나의 모습이 뜨거운 나의 마음이라는 걸 알아봐 주지는 않으려나요. 마음은 모순입니다. 마음이 마음대로 되지 않습니다. 당신이 좋으면서 당신을 피하게 됩니다. 둘 사이 적막이 소리를 지배할 때, 나는 적막이 없는 곳으로 달음박질합니다. 적막이 우리의 인연을 부정하는 증표일까 봐요. 당신이 그 증표를 느끼지 않기를 바랐습니다. 그래서 도망쳤습니다. 나는 두려움 많은 겁쟁이입니다.


당신이 자주 생각났습니다. '사랑하다'의 유의어는 '생각나다'이지 않을까요. 근사한 식당을 갈 때나 달콤한 로맨스 영화를 볼 때면 당신이 저절로 떠올랐습니다. 맑은 하늘 아래 윤슬이 반짝이는 바다로 드라이브를 갈 때면 옆 자리에 당신이 있기를 바랐습니다. 갑작스레 비가 쏟아지는 날에는 우산을 챙겼을지 당신을 걱정했습니다. 정작 내 우산은 없으면서요. 언제부터 제 마음이 붉어졌을까요. 투명 비커의 색을 뺏는 스포이트 한 방울처럼 순식간에 나는 당신으로 물들었습니다. 무엇으로 당신이라는 방울이 맺혔을까요. 잘 모르겠습니다. 원인 없이 어느새 결과에 이르러 있는 것이 사랑인가 봅니다.  그런데 혼자만 부푸는 이 마음을 사랑이라 불러도 될지 모르겠습니다. 짝사랑이라고 해야 할 것 같습니다. 비록 반달의 마음이지만 그 크기가 결코 작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만큼 시린 마음도 작지 않습니다.


마음은 보이지 않는 것이라서 당신의 작은 행위 하나마다 당신을 읽으려고 합니다. 아마 오독할 때도 있을 것입니다. 당신의 표정이라던가 메시지라던가 그런 것들에서요. 오독들이 내 마음을 어지럽힙니다. 이내, 나는 찌질해지고 맙니다. 혼자 좋아했다가 혼자 마음을 접습니다. 이별한 사람의 코스프레를 하면서 말입니다. 슬픈 영화를 보면서 와인을 마시고, 눈물을 쏟아내고는 마음을 비워냅니다. 그러다 또 후회가 몰려와 다시 당신을 잡으려 하지만 이미 지나간 버스는 눈앞에 보이지 않습니다.


나는 몹시 앓고 있습니다. 사랑은 왜 이리 어려운 걸까요. 처음 보는 내가 낯설고 또 낯섭니다. 이 아픔도 시간이라는 약으로 회복되리라는 것을 나는 압니다. 당신은 추억의 한 편으로 남다가 스러지고 말겠지요. '님'에서 점 하나 찍혀 '남'이 될 것임을 나는 압니다. 누군가는 이런 말을 할 수도 있겠습니다. 왜 이렇게 소극적이냐고. 이슬아 작가는 <<끝내주는 인생>>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정성과 예의를 갖추는 선에서 사랑을 위해 최선을 다해 침범해야 한다고. 그 뜻을 머리로는 아는데 그 뜻이 마음으로는 옮겨지지 않습니다. 선 너머 당신의 영역에서 낯선 이방인이 될까 봐 두렵습니다. 혼자 헤매고 쓸쓸히 돌아올 것만 같은 두려운 마음에 그 선을 넘지 못하는 거겠지요.


나는 두려움 많은 겁쟁이입니다. 사랑이 갈수록 어려워만 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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