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은 여름 같이 습윤했던 어느 9월, 인생 처음으로 여고 교실에 발을 내디딘 적이 있었다. 한옥의 성지 전주에, 한복 데이트도 못 해봤던 그 전주에, 선생님으로서 첫 방문을 하게 된 셈이다. 일일선생님 자격으로 아이들에게 글쓰기의 매력을 알려주기 위해서였다. 평범한 월급쟁이가 되고 나서 익숙한 궤도 밖으로 벗어나는 기회가 오기는 할까. 늘 그랬던 궤도를 이탈해 볼 수 있었던 건 동료 작가와의 인연 덕분이었다. 작가로서 초빙되었다고 하기에는 당시 세상에 내놓은 나의 책은 온라인으로 발행한 브런치북이 고작이었으니까. 여고로 나를 이어준 인연은 '책만들어볼과'란 청년 프로그램에서 시작됐다.
몇 년 전 몇 번의 도전 끝에 브런치 작가가 됐고, 어른의 성장통을 담은 브런치북까지 발행했다. 남은 숙제는 종이책 출판이었다. 그때 '책만들어볼과' 청년 프로그램에 15명의 예비 작가들이 모였고, '데뷔조'라는 조원들과 10주의 시간을 함께 했다. 퇴사 후 백수생활, 상록의 추억, 돈보단 꿈, 달리기, 어른의 성장통, 서로의 깊은 이야기로 엮인 우리는 금세 서로가 낯설지 않게 되었다. 프로그램이 끝나고도 서로의 안부를 주고받고 간혹 만났다. 여전히 직장인이었던 나는 책이라는 모형을 만들어내는 것에 만족했지만, 이들은 자신의 책을 더 다듬어서 세상에 내놓았다. 그리고 온갖 북페어 행사들을 다니면서 직접 책을 홍보하고 판매했다. 전주 북페어 '전주책쾌'가 운명의 시발점이었다. 부스에 진열된 이들의 책을 본 어느 여고 선생님이 제안을 주신 것이다. 우리 아이들을 위해 수업을 해주지 않겠냐고. 그렇게 우리는 전주 유일여고에 일일 선생님이 되었다. 아, 물론 나는 맥주 피처에 달린 행사품 견과류처럼 끼워 넣어졌지만.
9월이 되고서, 여고생들을 만나는 날이 찾아왔다. 날이 제법 흐렸고 종종 비가 왔다. 전주 터미널에서 동료 작가님들과 만나 함께 택시를 타고 유일여고로 향했다. 우리를 초빙해 주신 김 선생님이 웃으며 따뜻하게 맞아주셨다. 사전에 문자로 연락을 주실 때 느꼈던 인자한 느낌 그대로의 인상이었다. 우리에게 점심은 드셨냐며 같이 식사하자고 말씀하셨다. 선생님의 호의 덕에 모처럼 고등학교 급식을 먹어볼 수 있었다. 급식소로 향하는 길에서 만난 학생들이 우리에게도 공손히 인사했는데, 그 경험이 다소 낯설었다. 수줍게 인사를 건네는 학생들도 있었고, 개구쟁이처럼 인사를 건네는 학생들도 있었다. 학생들의 어조에서 순수가 느껴졌다. 획일화되지 않아서 미숙하고 그래서 피어나는 순수함이었다. 급식의 메뉴는 돈가스와 소시지볶음 그리고 우거짓국이었다. 금세 식판을 말끔히 비웠다. 오랜만에 맛본 정겹고 맛있는 점심이었다.
5교시 수업 시간이 다가오자 학급의 반장 또는 부반장이 우리를 찾으러 대기실로 와주었다. 우리 반 학생을 따라 터벅터벅 교실로 향하는 길이 공무원 면접장을 향할 때보다 더 떨리는 것 아닌가. 아이들이 나를 반겨주지 않으면 어떡하지. 다 졸면 어떡하지. 첫사랑 얘기를 해달라고 하면 어떡하지. 교실에 들어서기 전까지 온갖 상상이 나를 긴장으로 옥죄었다. 1학년 6반 미닫이 문을 열고 문지방을 넘어서자, 정사각형의 교실에 26명의 여고생이 날 기다리고 있었다. 떨리는 목소리로 자기소개를 했다.
"반갑습니다. 이번 수업을 맡게 된 훈재라고 합니다. 인생 첫 여고 방문인데 오게 되어 영광입니다."
딱딱한 자기소개를 끝내니 고작 1분이 흘렀을 뿐이었다. 수업에 주어진 50분이 만만치 않구나. 매일 교단에 서는 선생님들이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그래도 수업 직전보다는 마음이 한결 편해졌다. 준비해 온 PPT 자료를 스크린에 띄우고 오늘 수업 주제를 소개했다.
- 책을 내게 된 계기
- 책을 내고 좋았던 점
- 글쓰기의 행복
지방 방송이 몇 군데서 들렸고, 창가 쪽과 뒷자리에서 이마가 무거워지는 친구들도 있었다. 크게 괘념치 않았다. 점심 이후 5교시는 얼마나 나른한가. 오래전 나도 이 시간에 자주 고개를 처박았다. 허벅지 한쪽에 PMP를 올려두고 미드 <로스트>를 보기도 했다. 귀 기울여주는 학생들이 있다는 게 얼마나 고마운가. 아이들에게 좋은 이야기를 잔뜩 들려주고 싶었다.
내 브런치북은 불완전한 어른의 성장통을 다룬 이야기다. 30대가 되었고, 어느덧 어른이라 불리고 있는데, 무늬만 그럴듯한 빈 강정이지 않을까란 고민을 했었다. 짱구 아빠 같은 듬직한 어른을 꿈꿨는데 여전히 나는 서투름 투성이었으니까. 그런데 알고 보니 또래의 어른들이 비슷한 고민을 품고 있었다. 각자의 페르소나 때문에 알아차리지 못했을 뿐이다.
"새는 알에서 나오기 위해 투쟁한다. 알은 하나의 세계다. 태어나려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깨뜨려야 한다."
헤르만 헤세의 소설 <<데미안>>에서 제일 좋아하는 문장이다. 어른이라는 알을 깨 나가는 나의 이야기를 담고 싶었다. 하나의 세계를 깨트리기 위해 부리를 쪼는 모습이 나만이 아닌 우리로 느껴지길 바랐다. 서툴러도 괜찮다고, 우리 모두 그렇다고. 학자금, 소개팅, 장롱면허, 이별 등 15편 정도의 글을 모아 브런치북으로 발행했다. 제목은 <<깨깨깨깨깨부수고 싶어>>.
'언제부터' '왜' 글을 쓰게 됐을까. 글쓰기는 나를 알아야 하는 작업이다.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끊임없이 오가야 한다. 진정으로 나와 가까워질 수 있는 수단이다. 행복은 나를 아는 데서 비롯된다고 믿는다. 맛있는 것과 맛없는 것, 좋아하는 책과 영화, 행복했던 순간과 슬펐던 순간, 작지만 나를 이루는 것들을 의식할 수 있으면 사람은 선명해진다. 일상의 윤곽이 뚜렷해지고, 똑같이 주어지는 매일에서 그 사람은 특별함을 발견할 수 있다. 무라카미 하루키가 그런 사람이다. 나는 하루키 덕분에 글을 쓰게 됐다. 그의 글을 읽고 있노라면 평범하지만 특별한 그만의 하루에 블랙홀처럼 빨려 들어간다. 반짝이는 일상을 갖고 싶다는 마음으로 펜을 쥐게 되었다. 오늘 이 순간을 통해 학생들 중 한 명이라도 펜을 쥐게 된다면 정말 근사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런 마음으로 글쓰기의 행복에 대해 주저리주저리 늘여놓았다.
수업의 갈무리에 다다랐을 때, 일상을 담은 하루키의 글을 유인물로 나눠 주었다. <굴튀김 이론>이라는 글인데, 하루키가 추운 겨울날 해질녘에 단골 레스토랑에 가서 굴튀김을 시키는 단순한 내용이다. 그 단숨함 속에 이 사람의 기호와 특별함이 잔뜩 배어있는 고밀도의 글이다. 유인물과 함께 글쓰기 과제를 내주었다.
"여러분, 그냥 보낸다고 생각했던 일상을 다시금 관찰해 보고 글로 표현해 보면 기존과 다르게 느껴질 수 있을 거예요. 자신과 좀 더 친해지는 시간이 되면 좋겠어요."
학교라는 챗바퀴 속에서도 어떤 반짝임을 발견할 수 있기를 바랐다. 쉬는 시간을 알리는 종이 울렸다. 다행히 딱 맞춰 수업을 끝낼 수 있었고, 1분이라도 아이들의 휴식을 방해하고 싶지 않아서 교실을 바로 빠져나왔다. 대기실로 돌아오니 내가 1등으로 와 있었다. 이윽고 하나둘 작가님들이 모습을 드러 냈다. 다들 신난 얼굴이었다. 누군가는 학생들에게 선물을 나눠주기도 했고, 단체 사진을 같이 찍기도 했다. 나 혼자 너무 급히 나온 건가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그래도 전하고 싶은 말은 빠짐없이 했기에 후회는 없었다. 교문을 나서기 전에 단체 사진 한 장을 찍었다. 우리 모두 브이를 내밀고 웃었다. 학생처럼 밝아 보이는 우리였다. 저녁 버스를 타기 전에 작가님들과 전주를 둘러보기로 했다. 전주의 책방에 들르고, 밥을 먹고, 카페를 가는 충만한 하루다. 글을 계속 써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