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차이인 Dec 06. 2020

새우 전병이 알려준 외로움의 맛

57회 금마장 여우주연상 수상 영화 <구미(孤味)>     

코로나 덕분에

오히여 영화시장의 호황을 맞이했다는 대만


 세계 영화제가 전염병으로 모두 얼어붙은 이 시기에, 유일하게 해빙된 지역이 있다. 우리나라에서 멀지 않은 나라로 지난 몇 개월간 지역감염 확진자 수 0명을 자랑하는 대만이다. 덕분에 중화권 3대 영화제 중 대만의 57회 금마장(金馬奬, Golden Horse Awards)은 문제없이 개최되었다. 


 유독 올해는 예년보다 더욱 뜨거운 대만 대중들의 관심을 받게 되었다. 아마도 할리우드를 주축으로 한 외화 개봉작들이 줄줄이 취소되면서, 대만 국내 영화들에게 돌아간 기회들이 긍정적으로 작용한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전 세계로 보았을 때는 최악의 한 해였겠지만 대만만 두고 보았을 때는 예년보다 호황이었을 이례적인 한 해였을 것이다.


 그런 분위기에 다양한 대만영화들이 거론되었지만 그중에서 '외로움의 맛'으로 우리말로 직역되는 대만영화 <구미孤味>가 연일 큰 화제였다. 바로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배우 첸슈퍙 때문인데, 그는 대만 국민 할머니라는 말의 대만어인 국민'아마'로 불려 왔다. 우리나라로 치면 김혜자 선생님이 <눈이 부시게>로 상을 받았던 때와 비슷했다고 볼 수 있겠다. 게다가 감독의 장편 데뷔작이라는 데도 놀라움을 샀다. 영화의 배경인 대만의 남부지역 타이난의 장례의식까지 디테일을 살려, 장례식 신을 찍기 이전에 북쪽과 다른 남쪽만의 문화를 먼저 배우들에게 가르치고 진행했다고 할 만큼 대만의 특색, 그것도 특정 지역특색을 도드라지게 담으면서 가족 보편적 정서를 플롯으로 이어나갔다. 


청춘, 공포물 탈피에는 성공했지만

극명하게 갈리는 평점


포스터 이미지가 꽤 비슷하다고 느껴지는 <페어월> 


 보통 교복 청춘물, 혹은 공포 수사물 위주로만 상업 영화에 걸려왔던 최근 10년간 대만 영화계의 한계에서 그 흐름을 깨고 아주 보통의 대만 사람들의 이야기를 현대적으로 잘 그렸다는 평을 받고 있다. 그렇지만 반대로 평이 극명하게 갈리기도 했다. 상업영화의 틀을 조금 확장했다는 것 이외에는 이 영화가 과연 이렇게 큰 상을 받을 정도였느냐 인지는 모르겠다는 반응이다. 

 <구미> 포스터를 보면 <페어웰>(2019) 메인 포스터가 떠오르는 것을 보면 가족 휴먼 드라마에 집중하고 있는 모양새다. 현재 이 작품을 국내에서 볼 방법은 없어 아래의 내용들은 모두 트레일러와 대만 내 영화 유튜버, 평론가들의 이야기를 번역하여 재구성한 것이다.






영화 제목 <구미>는

무슨 뜻인가


 孤味(구미)를 직역하면 '외로움의 맛'으로 번역되는데 영어제목으로는 이를 살리지 않고 Little Big Women이라는 단어로 번역되었다. 영화제목이 가진 뜻은 무엇일까?

 이 부분에 대해서 감독 슈 청지에 가 이렇게 설명을 덧붙였다. 중국어로는 '구웨이'로 읽히는 이 단어가 대만의 고유 언어인 민난어로 '고미'로  읽히는데, 민난어에서 고미라는 뜻이 '한 음식만을 파는 식당, 그중에서도 그 음식이 최상의 맛을 내기까지 지독하게 길고 고독한 시간도 마다하지 않고 견뎌내는 과정'이라고 한다. 그리하여 끊임없는 사랑에 대한 태도이자 직접 맛을 보지 않고서는 누구도 알 수 없는 맛이라는 뜻을 내포한다고 한다. 이 영화에서 수영이 한평생 새우 전병을 팔아 양육했다는 사실뿐만 아니라 수십 년 인생을 살아오며 뒤엉켜온 애증의 감정을 말하기도 한다. 



네 명의 여성

엄마, 그리고 세 딸


오래 끌다 보면 그게 고집으로 변하고 그 고집이 결국 포기로 편해. 그렇지만 포기해본 사람만이 앞으로 나아갈 수 있어.

 

이 영화에는 총 네 명의 여성이 등장한다. 어머니인 임수영과 슬하에 둔 세 딸 아칭, 아위, 가가가 그 주인공들이다.
 여우주연상을 거머쥔 첸슈팡은 이 영화에서 한 평생 새우 전병을 팔아 세 아이를 홀로 키운 어머니인 수영 역으로 나온다. 영화 제목과 직접적으로 연관되는 인물로서 사실상 주인공 그리고 그녀의 칠순잔치에 갑자기 오래전 가족들을 등지고 떠난 남편의 부고 소식을 접하게 된다. 상을 치르는 중에 세 명의 딸들이 옛날이야기들을 꺼내기 시작하면서 서사가 시작된다. 


 엄마와 함께 사는 막내 가가는 이 집안에서 금기된 이야기들을 폭로하게 되는 인물이다. 집안에서 막내이다 보니 부모와 친척들 간의 원한관계를 잘 알지는 못하기 때문에 아버지가 집을 떠나고 나서도 유일하게 아버지와 그의 새로운 연인과 연락하는 사람이다. 

 그렇지만 동시에, 아직 엄마와 같이 살고 있는 유일한 자식 기도 하며 수영은 자신의 가게를 막내인 가가에게 물려주는 등 친밀한 관계를 그리고 있다. 그렇지만 가가는 엄마의 지속적인 간섭과 본인 과거에 대한 회한을 아무것도 모르는 막내에게 털어내었고 가가는 점점 지쳐만 간다. 언니와 집안 어른들이 쉬쉬하는 모습에 점점 가가는 엄마에 대한 양가적인 감정이 뒤얽히기 마련이다. 

나는 내가 학교에서 상을 받아오면 아빠가 돌아올 줄 알았어


 둘째 아위운 머리 회전이 빠르고 행동이 재빠른 성형외과 의사다. 집안과 밖 모두에서 각종 능력을 유감없이 발휘하는 아위는 통제권이 자신에게 있다고 생각하며, 만약 예상 밖의 상황이 닥쳤을 때 쉽게 불안해하는 인물이다.

 그런 아위는 아버지의 장례를 치를 때부터 바닥났던 인내심이 더욱 소진되고 말았다. 본인도 한 아이의 엄마가 되고부터 자신의 모친인 수영과 가장 비슷한 모습을 보이기 시작한다. 유년시절 아버지의 바람과, 집안에서의 계속되는 자신을 향한 기대감 등에 믿을 수 있는 사람은 오롯이 자신의 노력뿐이었다. 그래서 열심히 공부하여 의사가 된 후 의사 남편까지 만나게 된다. 그렇지만, 학생 때부터 정도를 걸었다고 보이는 그의 인생은 부와 명예에 대한 욕심에서 시작되었다기보다는 지지 않겠다는 마음에서 시작된 것이라고 보인다. 화목하지 못했던 집안 배경, 친척들의 괄시 등에서 그 스스로 자신과 자신의 가족이 비웃음 사지 않게 하는 유일한 방안이었기 기성세대가 말하는 정도를 걷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자신이 상을 받으면 아버지가 집으로 돌아올 것이라는 말을 한 때 믿었다. 그래서 자신의 아이를 미국에 보내 유학을 보내 앞으로 더욱 많은 선택권을 가져 자신처럼 공부하고 결혼하여 아이를 갖는 삶을 살지 않기만을 바란다. 

인생은 참 제멋대로야. 잘못된 줄 알면서도 그 길을 갈 수밖에 없지


 첫째인 아칭은 세 자매 중에 가장 자유롭고 눈에 띄는 인물이다. 그렇지만 그녀는 가족 몰래 병마와 싸우고 있었고 마침 아버지의 죽음의 소식을 들은 후 아버지에게 더욱 깊은 감정이입을 하게 된다. 그 상황을 모르던 엄마 수영과 첫째 아칭의 관계는 이상하게 변해갔다. 거실에 네 가족이 모여 있는 자리에서 수영은 이혼할 거라도 너희 아버지처럼 책임감 없이 떠돌아다니지는 말아라.라는 말을 해버리고. 


 아칭은 아버지가 잘못한 일을 가지고 내가 사과할 수는 없다고 맞응수한다. 그렇지만 자신이 싫어했던 아버지의 모습이 자신에게 투영되는 것을 막지 못한다. 또한 가족이 자신의 내면에 들어오는 것을 허락 않게 되는데 그 역시 자신이 원하는 범위까지만 타인이 필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해서 다가오는 사람 앞에서 도망가버리는 버릇을 갖고 있다. 그러면서 이런 대사를 남긴다. "손을 꽉 쥘 필요는 없어, 그냥 잡고만 있으면 돼." 


작가의 이전글 조제를 기다리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