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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하실주인 Aug 19. 2020

고소를 당하다

무(武)에서 문(文)으로

이른 아침부터 사무실에 전화가 왔다.

"조사실인데요. 이따 시간 괜찮을 때 잠깐 들릴래요?"

평범한 하루였다. 담장 안 공기도 평소와 다를 것 없었다. 매일 출근하던 시간에 출근을 했고, 매일 보던 수용자를 데리고 매일 하던 일을 시작하려던 찰나였다. 도서 업무 특성상 영치품 담당자나 각 수용동 담당자들과 통화할 일이 많았지만 조사실은 너무 뜬금없었다. '허가받지 않은 도서를 소유 중인 수용자가 생겼나? 그러면 전화로 해결해도 충분할 텐데', '혹시 금지물품이 도서를 통해 들어갔나? 그럼 큰일인데' 조사실이 썩 유쾌한 곳은 아니기에 생각이 꼬리를 물어 부정적인 상상만 했다.


*조사실은 수용자들 간의 마찰 등으로 교도소 내 질서를 어지럽히는 행위에 관해 인과 관계를 조사하고 그에 따른 적절한 조치를 취하는 곳이다. 경찰 검찰에서 수사받는 데에 이골이 난 수용자들도 허다하니 말 한마디도 조심해서 해야 하는 곳이라 다른 사무실에 비해 무거운 분위기다. 조사업무에 베테랑이거나 형 집행법이나 형사소송법 등 법적 지식이 뛰어난 직원들이 근무하기 좋다.


무슨 일인지 감이 잡히질 않고 생각만 어지러워 아침 일을 빨리 마무리하고 조사실로 향했다. 조사실 분위기는 문제를 일으킨 수용자들 조사 업무에 한창이라 무거웠다. 무거운 분위기에 국가송무를 담당하시는 분이 내게 공문을 하나 내밀었다. 그 공문에는 oo지검에 접수된 고소장이었고 피고소인란에 내 이름 석자가 적혀있었다.   


'?'

'??'

'???'

처음에는 이게 무슨 상황인지 잘 인지 하지 못했다. 피고소인이란 단어와 내 이름이 같은 선상에 있을 때 단어 앞에 '피'가 붙는 게 내가 알고 있던 그 뜻이 맞나부터 의심하게 됐다. 현실을 부정하려 했다. '이건 혹시 서프라이즈 인가?' 산으로 가는 상상력은 송무 담당에 의해 다시 현실로 돌아왔다. 태어나서 처음 당해본 고소라 의연함을 유지하기 쉽지 않았다. 결국에는 멘붕에 빠지고야 말았다.


사건의 발단은 타 교도소에서 이송 온 N수용자가 소지한 도서였다. 타 교도소에서 이송을 오면 일단 CRPT(교도소 내 기동순찰대)가 혹시나 부정 물품을 은닉하지 않았나 짐 검사를 실시하는데 여기서 N수용자가 매우 음란한 AV배우 도서들을 소지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도서 담당으로 N수용자와 상담을 했다. 타 교도소에서 허가를 받았다고는 하나 우리 소에서는 허가해줄 수 없다는 점, 일단 음란물이 들어가면 그동안 금지해왔던 다른 수용자들 형평성에서도 문제가 생기고 소 질서유지에 있어서 여러모로 곤란하다는 점, ISBN(국제표준 도서번호)가 찍혀 있지 않고 우리나라 도서가 아니기에 유해간행물인지 판단할 수 없지만 기존 유해간행물과 비교해 봤을 때 이 도서들은 유해간행물이 아닐 수가 없다는 점 등등을 근거로 불허하는 이유를 설명했고 N수용자도 수긍을 했다.


그리고 며칠 후 근무 태만으로 사유 재산권을 침범했다는 고소를 당했다. 근무 태만이라.... 그동안 상담은 무엇이며 상담 후 수긍한 것은 무엇이었을까.


"와~ 우리 O부장 이제야 진정한 교도관이 됐구나"

전에 도서 담당했던 선배가 찾아와 나에게 우스갯소리로 고소도 당해보고 해야 진정한 교도관이 된다고 했다. 내 속은 바싹 타들어 가는데 남의 일이라고 아무 말이나 하는가 싶었다. 앞으로 교도관 생활하다 보면 수용자에게 고소당할 일이 왕왕 있을 거라 했다. 독직폭행이나 금품을 대가로 수용자 요구를 들어주거나 하는 범법을 저지르지 않은 이상 별 일 없을 것이니 걱정 말라 안심시켜줬다. 그리고 조금 귀찮다는 말을 흘리고 갔다.


담장 안에서 수용자들은 요구가 많았다. 이를테면 독거실 사용하게 해 달라, 의료 거실로 보내달라, 운동시간을 늘려달라, 온수목욕을 시켜달라, 외부병원 진료를 보내달라, 그리고 이렇게 허가받지 않은 도서나 물품을 사용하게 해 달라 등등. 예전에는 자신의 요구를 관철시키기 위해 자해를 했다고 한다. 쇠붙이를 구하기 힘든 이 담장 안에선 단추를 쪼개 본인 몸에 자해를 하기도 했고 이물질을 삼켜 위장을 상하게 했다고도 했다. 그러나 시대는 변했다. 고소 고발뿐만 아니라 인권위를 통한 청원 진정이란 제도도 생겼다. 어느덧 우리도 투명한 행정처리와 공개된 규정으로 대응할 수밖에 없게 됐다. 자해는 줄고 고소는 늘었다. 어느덧 담장도 무(武)에서 문(文)의 시대가 도래한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렇다고 이 전 선배님들이 불투명하고 은밀하게 일을 처리했다는 것은 아니다. 수용자 복지와 인권이 강화되고 있다는 말을 하고 있는 것이다.)


나도 투명하게 처리해야 했다. 조금 귀찮다는 선배의 말이 생각났다. 조금? 조금이라는 단어가 내가 아는 그것이 맞았나?. 사건 경위와 상담기록, 업무를 처리한 규정 등등을 꼼꼼히 찾아 육하원칙에 맞게 정리해야 했다. 어색한 문장이나 필요 없는 자료들을 송무 담당과 수정을 거듭하면서 대응했다. 동사무소 서류 떼듯 단번에 끝나는 것이 아니었기에 피로감과 귀찮음이 점점 몰려왔다. 차라리 그나마 수위가 낮은 도서를 주고 끝낼까 하는 생각마저 들기도 했다. 물론 그랬다간 더 귀찮고 까다로운 일에 휩싸일 게 뻔하니 귀찮아도 고심해가며 대응했다.


그 후 얼마 지나지 않아 혐의 없음으로 고소 사건은 일단락됐다. 수용자 편지 한 통에 몇 개의 기관과 부서에서 움직이나 싶어 행정력 낭비인가 싶다가도 반대로 수용자 편지 한 통에도 몇 개의 부서가 움직여주니 오히려 행정력이 좋은 건가 싶은 아이러니한 마음이 오갔다. 귀찮은 한 짐 덜어내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 본연의 업무를 했다. 이따금씩 이송 온 수용자들과 도서 문제로 시빗거리가 생기고 게 중에는 또 사유 재산에 침범에 대한 고소를 진행할 거라 으름장을 놓는 수용자도 있었다. 그러나 잘 못한 게 없으니 두렵거나 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어느 정도 내공이 쌓였는지 의연하게 대처할 수 있었다.

단지, '아 진짜로 고소하면 귀찮은데....'라고 생각했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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