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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선생 Oct 18. 2020

엄마의 은퇴를 축하합니다

“B야. 엄마 직장 그만뒀어.”


여느 때 같은 통화 중에 엄마가 말을 꺼낸다.


“앞으로 나아질 것 같지도 않아서 그만둔다고 했어.”


잠시 머뭇거리다 말을 이었다.


“잘했어요, 엄마. 진작 그만뒀어야 하는데!
고생 많았어요.
이제 무리하지 말고 편히 쉬세요.”


“그러게.”


위로인지 응원인지 모를 몇 마디를 더 건네고 전화를 끊었다.


올해 2월. 엄마는 일을 그만뒀다. 매년 봄이면 재계약을 걱정했지만 더 이상 걱정할 필요가 없어졌다. 코로나가 문제였다. 매일 수십 명의 사람들과 몸을 접해야 하는 곳. 손님이 오지 않는 가게에 몇 달이나 청소비만 물어주고  수는 없는 일이다. 그렇지 않아도 많은 나이에 은퇴를 고민하고 있던 터였다. 한두 해 그 시기가 빨라졌지만, 언제고 곧 다가올 일이었다. 58년 개띠. 앳된 10대 초반부터 일을 시작한 엄마다. 50년이 넘는 긴 직장 생활의 마침표는 그렇게 찍혔다.


엄마는 홀가분하다고 했다.


“언제쯤 나 직장 안 다니고 편하게 생활하게 해 줄 것이요~?”


아빠에게 입버릇처럼 엄마가 하는 말이었다. 농담 섞인 말투였지만 고된 육체노동의 어려움이 묻어있음을 우리 가족은 잘 알고 있다.


“그땐 그 일을 어떻게 했나 몰라.”


내겐 기억조차 없는 어린 시절을 엄마는 이야기하고는 했다. 김밥장사가 그래도 참 쏠쏠했다거나, 과일장수 시절 나를 들처업고 파는데 애기 엄마 불쌍하다고 손님들이 매상을 많이 올려줬다며 웃었다. 고모네 방앗간 보조, 미싱사, 슈퍼마켓 일은 내게도 생생한 옛날이다. 무엇 하나 쉬운 일이 없었다. 내가 고3일 때 시작한 2교대 일을 15년이 넘도록 했으니 ‘젊었으니까 했다’는 말은 어딘가 어색하다.


아빠도 엄마의 은퇴를 좋아했다. 하루 걸러 하루를 혼자 빈 집에서 잠들었던 아빠다. 험한 노동일을 마치고 집에 왔는데, 맞이해줄 사람이 없다는 게 아빠에게도 유쾌한 기억은 아니었을 테다. 밤새 켜질 TV 소리를 들으며 잠들지 않아도 되니 얼마나 기분이 좋을까.


“잘했어. 그놈의 가게 남 좋은 일만 시키느니 그만두는 게 훨씬 낫지.
나 혼자 벌어서도 두 사람 입에 어떻게든 풀칠하면서 살 수 있으니까
일 더 가지 말고 집에 있어.”


큰소리치며 아빠가 말했다 한다. 물론 아빠는 둘에게 필요한 생애 소득이 얼마나 더 필요한지, 한 달 생활비가 얼마가 드는지, 아빠가 만든 빚을 어떤 식으로 갚을지는 크게 생각하지 않았겠지만 말이다.


그 후 몇 달이 지났다.


엄마는 그동안 평소 하지 못 했던 일들을 했다. 가끔 친구들도 만나고, 매일 아빠와 저녁 식사를 하고, 손자와 교외로 꽃구경을 갔다. 무지외반증 수술도 받았다. 발가락이 예뻐졌다며 아빠가 웃었다. 엄마가 바라는 완전한 은퇴였다. 그렇게 조용한 시간이 흘렀다.


“B야. 그런데 말이야...”


엄마가 통화 중에 말을 꺼낸다.


“엄마 일자리 구했어.”


들뜬 목소리로 엄마가 말했다.


“응? 엄마 무슨 일이요?”

엄마에게 되물었다. 사실 엄마는 지난 몇 달을 답답해했다. 평생 사람을 만나던 사람이다. 단조로운 일상의 반복이 엄마에게는 견디기 힘든 일이었을 것이다. 생활비를 달라면 짜증을 내는 아빠에게 돈 이야기를 꺼내는 것도 큰 스트레스라고 자주 말하고는 했다.


“응, 힘든 건 아니고. 옆집 아지매가 공공근로라는 게 있다고 소개해줘서 지원했는데 그게 됐네?
아침에 따릉이 보관소들 돌면서 소독하는 거래.
 다음 주 월요일에 교육도 있다고 어디로 나오라던데?”


11월 말까지의 단기근로이지만 엄마는 설래 보였다. 하루에 5만 원씩 준다며 좋아하는 엄마에게 뚱한 목소리로 얘기했다.


“엄마 잘됐네요. 그거 그런데 열심히 안 해도 돈 주는 거고, 일자리 만들려고 짜낸 자리니까 대충대충 해도 누구도 뭐라고 할 사람 없을 거예요.
괜히 열심히 해서 힘들어하지 말고 슬렁슬렁 요령 피면서 해야 해요!”


작은 일에 기뻐하는 엄마의 모습이 왠지 싫었다. 그래서 심드렁하게 답을 했다. 그러면 안 되는 걸 알면서도.


“그랴~? 그래도 사람들이 많이 이용하는 건데 깨끗하게 잘 소독해줘야지. 거기 가면 매일 소독약 6개를 준다는데 엄마 배낭을 들고 다닐까~? 그런데 발이 아직 온전치 않아서 걱정이긴 하네?”


내 말투를 못 읽었는지 엄마는 기쁘게 통화를 계속했다.


“아들아. 내일 교육받는 데 가려면 그런데 어떻게 가야 할지? 엄마한테 카톡으로 좀 정리해서 보내줄래?”
“네 엄마. 지금 정리해서 보낼게요. 그래도 꼭 쉬엄쉬엄하셔야 해요.”


전화를 끊고 반성했다. 밝게 응원했어야 했다. 내 거인이 약해진 것만 같아서, 내 비릿한 죄책감을 덜고 싶어서 틱틱거렸다. 그렇게 이야기할 게 아니었다. 엄마는 진심으로 새 일을 좋아했다. 단순히 일로써가 아니라 자부심을 느끼고 있었다. 여전히 나보다 훨씬 큰 사람이었다.


“일을 할 수 있다는 게 정말 기분이 좋구나.”


엄마의 카톡에 아직 제대로 된 답을 하지 못 했다. 이 공간을 빌어 엄마에게 말하고 싶다.



‘축하해요. 엄마.
엄마의 은퇴를 축하하고, 엄마가 새 일을 시작하게 된 것도 축하해요.
예전과는 다른 모습이겠지만,
그 순간마다 의미 있게 살아가는 엄마의 모습을 응원해요.
엄마 덕분에 나도 따릉이 타면서 매일 안전하게 퇴근해요.
고맙습니다.’


사랑한다는 말은 역시 쑥스러워 적지 못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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