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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선생 Sep 13. 2021

엄마의 일기장을 열다

엄마는 말하기를 좋아한다. 전화기를 붙잡고 사냐며 젊었던 엄마에게 혼났던 기억이 있지만, 사실 전화기를 잡으면 몇 시간이고 친구와 이야기를 하는 건 엄마였다.


엄마는 집에서 외로웠던 것 같다. 말수가 없는 아빠, 신경질 부리던 형, 사춘기를 지나던 나까지. 머리가 지끈거릴 정도로 크게 볼륨을 높인 TV 소리만 가득한 집에서 엄마의 말 상대는 없었다.


그래서일 거다. 엄마와 함께 30년을 살았는데, 난 엄마의 이야기를 잘 모른다. 아빠와는 왜 결혼하기로 했는지, 내가 취직할 때는 어떤 마음이었는지, 할머니께서 돌아가셨을 때 슬펐는지, 아니면 담담했을지..


가장 가까웠던 사람일 텐데 나는 엄마에 대해 아는 것이 없다.


그런데 몇 달 전 엄마가 일기장을 보여줬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일기장을 열었다. 엄마의 진짜 마음이 적혀 있는 시간의 기록.


낡고 손때 묻은 빛바랜 종이 위에 쓴 일기는 아니었다. 여백은 여전히 새하얗고, 글자는 반듯했다. 맞춤법은 군데군데 틀리기는 했지만.


엄마가 블로그를 시작한 거다. 블로그 위에 독수리 타법으로 찍어 내려간 엄마의 일기. 그 일기를 엿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작년에 은퇴를 하고 엄마는 컴퓨터를 배웠다. 전원 켜는 법, 끄는 법, 이메일 배우는 법까지. 하나하나 엄마는 열심히 배웠다. 학원에서 배운 게 잘 이해가 되지 않을 때는 나와 줌 화상회의를 하며 몇 번이고 연습하며 익혀나갔다.


2021.07.09.

제목 : 공부중


엄마의 첫 일기. 이 짧은 글을 쓰기 위해 엄마는 내게 두 시간을 물어 쓰는 법을 배워야 했다.


2021.07.10.

제목 : 공부중



직장인인 아들을 몇 시간씩 잡아뒀다는 생각에 엄마가 많이 미안했었나 보다. 눈물 표시를 쓴 걸 보고 나 혼자 씨익 웃었다.


두 달이 지난 요즘, 엄마는 이때보다 훨씬 컴퓨터에 능숙해졌다. 꽤 긴 글로 엄마의 생각을 블로그에 옮긴다. 많이 놀랐다. 엄마는 나보다 훨씬 뛰어난 진짜 작가였다. 솔직하고, 수줍고, 위트 있는 엄마의 글솜씨를 내가 조금은 닮았을까?


엄마 블로그의 1호 독자로서, 이 글들을 더 많은 사람들과 나누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공간을 통해 내 글을 읽는 분들과 함께 엄마의 일기장의 페이지를 넘겨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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