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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나 Aug 24. 2022

잘 살고 잘 죽는다는 것

삶을 끌고 가는 게 참 무겁게 느껴질 때가 있다.

어릴 때는 그저 어른이 되기만을 바랐는데, 내 몸 하나 건사하는 게 이리도 무거운 일인 줄은 미처 몰랐나 보다.

그뿐일까. 그저 내 몸 하나 잘 먹이고 잘 재우고 잘 계발하는 것조차 버거울 때가 종종 있는데

집 대출금도, 아이들의 미래도, 남편과의 노후까지도 양 어깨에 주렁주렁 매달려 있는 걸 볼 때면 무겁기가 그지없다.


성경에 이런 구절이 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나는 저 구절에서 수고와 무거운 짐 진 자는 고민 한가득 안고 생에 온갖 어려움을 떠안은 사람인 줄 알았다.

사실 어떤 사람이든지 수고와 무거운 짐은 다들 주렁주렁 지고 있다는 걸 몰랐던 거지.




오늘 가슴에 덩어리가 느껴져서 급하게 병원에 다녀왔다.

초음파를 찍는 중에 동영상을 캡처해서 종양의 사이즈를 재는 무표정한 의사의 얼굴에 서늘함을 느꼈다.


-종양이 있네요. 모양이 악성일 확률은 낮은 것 같아요.

-암.. 은 아니라는 거죠?

-그건 조직검사 해봐야죠.


잊을만하면, 마음에 짐이 없다 싶을 때면 한 번씩 찾아오는 건강 이상, 역시나 찾아왔다.

건강염려증을 달고 사는 나에게 한 번씩 찾아오는 건강 이상은 내 몸을 끌고 사는 게 참 버겁게 느끼도록 만든다.

내 몸 하나 늙을 때까지 잘 쓰는 게 이리도 어렵다는 걸 느낄 때면 나머지 삶의 짐들도 무거운 배낭여행 짐처럼 느껴지는 것이다.


동시에, 건강 이상은 내가 잘 살고 있는지도 되돌아보게 한다.


나는 오늘 가족들과 웃으며 헤어졌는지,

아이들과 행복한 추억을 많이 만들어 두었는지,

사소한 일로 이기적이진 않았는지, 그런 것들.


그렇게 떠오르는 것들 중에서 내가 얼마나 일을 열심히 잘했는지, 돈은 얼마나 벌었는지 따위는 전혀 생각나지 않는다.

살면서 무언가 대단한, 장기적인 목표보다는

오늘내일 내 가족들과 행복했는지가 더 중요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오갔다.


함께 일하던 박대위님이 유방암으로 돌아가셨을 때가 서른 중반쯤이었다.


너무 좋아하던 분이었고, 존경하던 분이었던지라 돌아가셨다는 소식이 며칠째 머리에 떠다녀 아무 일도 손에 잡히지 않았다.

그렇게 뇌리에 박혀있던  박대위님의 죽음은 내게 종양이 있다는 검사 결과에 두려움을 겹겹이 덧입히는 효과를 더 해주었다.


늙어서 죽고 싶다.

최소한 내 아이들이 결혼해서 아이를 낳고 나면, 그다음에 가고 싶다.

늙어서 자는 듯이 가는 게 나의 가장 큰 소원인 것을 다시금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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