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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루시아 Jun 29. 2023

내 이름



나는 임진아. 할머니 진갑 때 낳았다고 ‘진아’다. 내 이름인데 할머니랑 무슨 상관인지 생일에 이름의 의미까지 겹쳐서 내 알맹이가 쏙 빠진 느낌이다. 흔한 이름은 아니었다. 학창 시절을 지나는 동안 내 성에 받침 하나를 뺀 친구 하나를 만났을 뿐이다. 이름보다 성에 함께 붙은 이름 때문에 나는 ‘임진왜란’이 너 때문에 일어났다는 말도 안 되는 우김을 들으며 자랐다. 지금은 그런 억지는 빠졌지만 학원에서는 여전히 이름 때문에 ‘임진왜란 샘’으로 불린다.

고등학교 제2외국어 시간에 안 사실이지만, 아빠는 내 이름 한자를 왜 그렇게 지었는지. 마지막 글자인 ‘아’는 한자로는 사랑하다는 뜻이지만 이름으로는 잘 쓰지 않고 중국어에서는 감탄사로 쓰는 글자였다. 이 무슨. 그래도 좋았던 건 내 본 이름의 한자 의미까지는 생각지도 않으시고 나를 ‘참 나’로 불러줬던 교수님이 계셨다는 건데 우리 아빠는 왜 그때 ‘참 진’과 ‘나 아’는 생각하지 못했던 걸까.

이리저리 흐르며 휘청이고 있을 때 서점에서 ‘임진아’ 작가의 책을 만났다. 갑자기 뒤통수를 맞은 느낌이었다. 흔하지 않은 이름과 성인데 나랑 똑같은 이름을 가진 작가라. 나는 될 수 없을 것 같았던 것을 이미 이루고 살고 있는 사람 같았다. 나는 무엇인가. 운명은 스스로 개척해 가는 거라고 하는데 나는? 그 이름을 신선한 자극 삼아 오늘을 지낸다. 저 이름보다 더 나은 이름이 되어야지 다짐하면서.

여전히 내 이름이 썩 좋지는 않다. 그러나 이름은 이름 자체로 쓸 때보다 누군가 불러 줬을 때 더 의미가 있다. 연애할 때나 지금이나 “진아야~”하고 불러주는 남편의 목소리, 밖에서 만난 누군가에게 내 이름이 선명하게 닿아 다시 나에게 돌아올 때, 그때 나는 괜히 기분이 좋아진다.


나는 루시아. 천주교 세례명이다. 루시아로 산 지 겨우 7년 차지만 함께 세례 받은 남편의 세례명과 굳이 맞추지 않고 내 뜻대로 ‘루시아’로 지은 이름은 내게 그야말로 빛이다. 살면서 내 이름을 다시 택할 기회는 많지 않으니까. 루시아로 지내며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나씩 해 나가는 중이다. 쓰고 싶었는데, 읽고 싶었는데, 전하고 싶었는데 이제 모두 루시아라는 이름으로 하고 지낸다. 성녀 루시아가 그랬듯 내 뜻을 위해서라면 무엇에도 꺾이지 않으며 그 이름으로 선물처럼 건네는 모든 것이 축복이다.



다른 누구의 이름도 아니고 내 이름에 대해서는 생각해 볼 기회가 없었다. 매일 부르고 듣는 이름인 만큼 그 익숙한 것들을 종종 잊고 살기 때문일 것이다. 지금은 내 이름을 빼앗기고 살지도 않고 누구 엄마로 불리는 것 이상으로 내 이름을 자주 들으며 지낸다. 자주 부르고 들으며 익숙한 이 이름이 나를 더 좋은 곳으로 데려다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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