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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루시아 Jan 21. 2024

추억의 맛



지난 주말 1박 2일로 주일학교교사 피정을 다녀왔다. 둘째 날 저녁에는 뒤풀이로 종종 들르는 민속주점에 갔다. 우리는 늘 먹던 파전과 골뱅이무침을 깨끗하게 비우고 옆 테이블에 놓인 안주에 새롭게 눈독을 들였다. 다름 아닌 가오리찜. 그곳에서 처음 시켜보는 안주였지만 왠지 내가 아는 어릴 적 그 맛과 비슷할 것 같아 한번 먹어 보고 싶었다. 드디어 음식이 나왔고 다섯 사람의 젓가락질 몇 번에 가오리는 가운데 뼈만 남기고 순식간에 사라졌다. 짧은 순간 입속을 휘감고 간 맛에 젖어있는데, ‘루시아는 그것도 다 먹었는데 왜 남겨?’ 하는 다른 선생님의 말씀에 멈칫했다. 가오리의 물렁물렁한 뼈를 오독오독 씹어 먹어 앞접시가 깨끗한 나와 달리 가오리찜이 생소한 선생님들의 앞접시엔 뼈가 수북했기 때문이다. 나는 빈 접시를 앞에 두고 안주 삼아 내 추억의 음식들을 꺼내놓기 시작했다.


나에겐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하는 추억의 맛 세 가지가 있는데 모양은 조금 다르지만 가오리찜은 그중 하나다. 반건조된 가오리를 쪄서 큰 뼈만 발라내고 듬성듬성 썰어 초고추장에 콕 찍어먹는 그 오독오독한 맛이 바로 첫 번째 추억의 맛이다. 어린 시절 내가 먹은-입안에서 설렁설렁 씹히는 그 잔뼈들과 꺼끌한 껍질, 쫀득한 살-것과 꼭 같지 않지만 그 익숙한 이름이 가오리찜을 다시 술상 위에 올려놓았다. 두 번째 맛은 더욱 흔한 느타리버섯초무침이다. 살짝 데친 느타리버섯에 소금 간을 하고 초장으로 무쳐낸 단순한 반찬. 별 양념이 없는데도 새콤 달콤 짭짜름한 느타리버섯을 몇 번씩 맨 입에 넣고 오물거렸던 기억이 난다. 세 번째는 고소한 문어죽. 아직 다른 곳에서 문어죽을 먹어본 적은 없어 오래되었지만 그때 그 죽 맛이 또렷하다. 뽀얀 쌀알 사이에 듬성듬성 썬 문어살이 가득했던 죽. 어른이 되어서도 한 번씩 먹고 싶고 궁금해서 어떻게 그 맛을 냈었나 물어봤을 정도다. 데친 문어를 잘 썰어서 불린 쌀과 함께 볶다가, 문어 데친 물을 육수로 하고 소금 간을 해서 냈다던 그 문어죽... 아, 군침 돈다.

사실 내 어릴 적 추억의 맛 셋은 모두 우리 집에 들르신 할머니 밥상 위에 올려졌던 음식들이다. 문어죽을 빼고는 할머니의 막걸리 안주이기도 했던 것들. 그래서 동동주 사발을 앞에 두고 그 음식들이 자연스레 떠올랐던 모양이다. 가오리찜과 느타리버섯초무침을 떠올리는 내 코끝에 들큼한 막걸리 냄새가 진하게 피어오르는 게 할머니 곁에 앉아 안주를 주워 먹으며 맡았던 그 향기와 지금이 꼭 닮았다. 두 가지 음식과 다르게 문어죽은 할머니가 편찮으실 때 엄마나 큰엄마가 문어 한 마리를 큰 솥에 넣고 푹 끓여주시던 것이다. 그 맛이 너무 포근하고 구수해서 어른이 된 지금도 아플 때 한 번씩 생각나는 죽이다. 할머니가 돌아가신 지 이제 햇수로 8년째, 그 시절과 똑같은 그 맛을 다시 볼 순 없다. 아마 죽의 주인이 달라 완벽히 그날의 맛은 아닐 것이다.


아 어쩌다 보니 내 추억의 맛을 이야기하면서 할머니를 추억하는 글이 되어버렸다. 하지만 할머니의 음식뿐만 아니라 모든 음식에는 저마다 추억의 조미료가 조금씩 쳐진 것 같다. 나의 경우 찌짐을 먹을 때나 수육을 먹을 때마다 막걸리식초를 넣어 만든 초고추장을 푹 찍어먹던 시골집에서의 기억이 난다거나, 조개구이집을 지날 때마다 열심히 운동하고 나서 먹던 가리비구이와 돌멍게 소주가 생각나는 것처럼 말이다. 그런 음식에 깃든 사소한 추억 하나에 그때를 추억하고 그 맛을 더듬으며 더 어른이 되어간다. 어쩌면 그런 갖가지 맛의 기억이 있어 지금 내가 더 다채로운 맛으로 살아가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아직 경험하지 못한 무수한 맛들이 있을 테지만 이런 소소한 기대가 나를 더 설레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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