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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루시아 Feb 05. 2024

마음 정리

내가 만드는 행복의 길


머릿속이 복잡했다. “가야죠, 네!”했던 그 순간부터 불과 얼마 전까지도 계속.


지난 금요일에 교수님 퇴임 기념, 전공자들만 모인 저녁 식사 자리에 다녀왔다. 10년이 더 지났는데도 어학 전공자 모임에 나를 불러주셔서 감사하기도 했고 변한 것 없는 나 자신이 조금 초라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마자 이름을 부르며 환대해 주는 그 자리가 나의 부들부들한 20대를 소환했다. 앉은자리의 모습들은 그대로였다. 선배들은 여전히 대학에서 강의를 하고, 동기는 전공 관련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지도 교수님은 퇴임 후에도 바깥일에 열심이셨다. 내가 추억하고 있던 그 자잘한 것들은 상대의 기억과 맞물려 행복한 시절이 되었고, 그렇게 꽤 오래 계속된 자리는 좋기도 나쁘기도 했다. 지도교수님의 말씀을 시작으로 그랬다. 여기 모인 중 반은 박사고 반은 바사라는. 그 말씀에 내 마음에도 균열이 일어났다. 제자들이 끝까지 학위를 받지 못한 안타까움에 하시는 말씀일 수 있지만, 여러 이유로 다 내려놓고 자퇴서를 쓰고 나온 내 마음에는 다시 돌아갈 수 없는 것에 미련을 완전히 버리게 해주는 통쾌하고도 비수 같은 말이었다. 그랬다. 나는 늘 오늘을 살고 내일을 꿈꾸는 사람이고 싶었지만 사실은 어제에 매여 한 발짝도 못 나아간 사람이었던 것이다.


주말을 안갯속에서 보내고 이번 월요일부터는 매일 한 시간씩 걷고 있다. 걸으면서 만나는 모든 살아있는 것들이 내 머릿속을 헝클어 놓았던 것들과 거리를 넓혀주었다. 역시, 마땅한 계기가 필요했다. 더 이상 그리 나아갈 힘도 남겨두지 않았으면서 과거에 내가 이런 사람이었다 매어있는 건 희망고문이었을 뿐이다. 내일을 살아갈 힘을 꺾고 늘 제자리만 맴돌게 하는 일이었다. 내 인생에 유일하게 끝을 보지 못하고 스스로 내려온 자리가 그것. 그 또한 내 선택이었음을 잘 안다. 그런데도 머릿속이 내내 복잡했던 건 이제 완전히 버리고 나는 나대로, 내가 잘할 수 있는 것, 잘하는 것을 향해 방향을 틀어 걸어야 한다는 것을 알려주는 시간에 머물렀었기 때문이다.


시간의 길이가 모든 걸 말해 주지는 않는다. 대학부터 대학원 시절까지 그 시간과 그 이후에 지나버린 시간이 이제 같아졌다. 그만큼 나는 털어버릴 것도 없는 입장이 되었다. 대신 그 10년 간 나는 다른 방향으로의 나로 걷고 있었다. 물론 그 방향의 나도 잠시 멈춤이지만, 다시 내 일을 찾아봐야 하는 시점과 맞물려 고민도 한숨의 깊이도 깊어질 수밖에 없었다.

어제 문득 혼자 맥주를 마시다가 내 손의 온기에 부풀어 올라 흘러넘치는 거품을 보았다. 내가 그동안 가지고 있던 마음이 이렇게 흘러넘칠 맥주 거품 같았구나 싶었다. 적당한 거품이 맥주의 풍미와 목 넘김을 좋게 하지만 그게 맥주 거품이지, 맥주는 아니잖아? 내가 맥주 거품을 마시려고 맥주 캔을 쥔 것이 아니듯 가두어두지 않아도 되는 것은 이렇게 흘려버려야겠다는 생각도 함께 했다. 어쩌면 몸을 회복해 가며 하고 싶은 일이 있냐고 물었을 때 선뜻 다시 학교로 돌아가야겠다고 생각하지 않은 것부터가 나의 마음을 대신하고 있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맥주 거품은 걷어냈으니, 이제 시원하게 마실 일만 남았다. 앞으로의 나에게 아무것도 되지 않아 두렵다는 말은 없는 거다. 다시 내가 될 일만 남았다. 시간이 흐르듯 사람도 변하는 게 당연하다. 그러니 더 이상 속상해하지 말고 요즘의 내 마음을 잘 따라 움직이기를... 그렇게 내가 만드는 행복의 길에 가까워지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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