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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금택 Apr 08. 2021

가기로 결심은 했지만

대학원과 육아와 코로나와 나.

결혼을 해서 같이 사는 아이가 있는 경우, 모든 일을 시작하려고 할 때 가장 중요하면서도 어려운 일이 상황을 조율하는 것이다.


처음 아이를 낳았을 때도 가장 힘들었던 게 내 시간을 오롯이 쓸 수 없다는 사실이었는데, 이는 아이가 만 7세가 된 지금까지도 무언가를 시작할 때 가장 첫 번째로 해결해야 할 난관이 되었다. 우리 집에는 매일 내 손길이 필요한 아이가 한 명 있었고, 매일 세 끼는 먹어야 하며 - 아이가 크면서 하루 두 끼가 세 끼로 바뀌었다-, 우리는 집안의 청결을 유지해야 어느 정도의 삶의 질을 유지할 수 있다고 믿는 편이었다. 그리고 이 필요조건들은 만족시키기 위해선 당연히 남편과 내 시간을 할애해야 했다.  


그래도 신생아는 아니라서 매일 여덟 시부터 세 시까지 학교에 다니게 된 아이 덕에 낮 시간은 내 마음대로 쓸 수 있었다. 마침 하고 있던 책의 번역 원고를 출판사에 넘기고 난 직후였기에 이때가 가장 시작하기 좋은 타이밍이었다. 


대학원에 입학원서를 내기 위해 필요한 서류 중 가장 시급한 건 토플 성적이었다. 미국에 산지 8년이 넘었지만 번역과 육아로 인해 영어가 생각보다 많이 늘지 않았고, 거의 10년 만에 시험을 본다는 사실도 매우 까마득하게 느껴졌다. 그래도 꾸역꾸역(혹은 느릿느릿) 준비를 하고 있던 중, 머지않아 코로나가 터졌다. 이건 무슨 상황이지, 앞으로 어떻게 되는 거야, 라며 허둥지둥하는 사이, 미국의 모든 학교와 회사, 가게가 문을 닫았고, 곧 학교들은 온라인으로 수업을 전환한다고 공표했다. 


아, 정말. 코로나 시국에 접어들면서 모든 학부모들이 겪었겠지만, 나 또한 하루아침에 아이와 덩그러니 집에 남아 예측할 수 없는 앞날에 불안해하며, 세 끼 밥을 차리기 시작했다. 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남편은 난생처음인 온라인 수업 준비로 반쯤 정신이 나가 있었던 데다가, 상황이 상황이니 만큼 당연히 시터를 구할 수도 없었다. 


미국에 온 지 8년, 일과 육아와 건강 상의 문제로 거의 10년을 미루던 진학의 꿈이었는데, 이렇게 또 좌절인 건가. 그때는 그간 살아온 삶이 허무하다든가 세월이 야속하다든가 하는 어떤 마음도 들지 않았다. 그저 절박함이 있었고 그 절박함이 벽에 부딪혔고 아무리 해도 표출할 묘안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런 맘도 모르고 시간은 참 정직하게 흐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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