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라타치 Sep 08. 2024

도망

"여자가 운전을 못하면 집에나 있어!"

운전을 못해서 답답한 건 알겠는데 왜 여자라는 성별을 붙이는지 역겨운 아저씨 면전에 소리치고 싶은데 꾹 참는다. 좁디좁은 골목의 양 옆으로 노란 불빛을 깜빡이며 귀한 자식을 태우려는 자동차들이 늘어서 있다. 불법 주차들로 난리통인 학원가에서 그것도 밤이다. 눈부심이 심해서 밤운전은 잘 안 하는데 이렇게 복잡한 상황인 줄 모르고 차를 끌고 나오다니 잘못했다. 식은땀을 줄줄 흘리며 거북이처럼 빠져나가는데 맞은편에서 차가 온다. 제발 내 차가 먼저 빠지고 들어오길 바라는데 맞은편 차가 막무가내로 돌진하더니 앞에 떡하니 선다. 선팅이 진해서 운전자의 어떠한 제스처도 보이진 않고 도저히 못 가는 상황이라 창문을 내렸다.

"제 뒤로는 차가 많으니 뒤로 조금만 빼주시면 빠져나갈 수 있을 것 같은데요."

"뭐가 좁아요? 엄청 넓구먼. 빨리 빠져요."

"제가 가늠하기엔 좁아서 못 가겠어요. 뒤로 조금만 빼주시겠어요?"

"아이씨, 뭐야. 운전도 못하고."

뒤에 따라오는 차도 없어서 충분히 상황이 돼서 부탁했더니 짜증이다. 뒤로 빠져줄 거면서 서로 얼굴 붉히지 않으면 얼마나 좋을까? 그렇게 스칠 때 남자는 나를 향해 큰 소리를 쳤다.

불쌍하다. 저런 매너 없는 사람이랑 사는 그의 가족들 말이다.

집에 돌아와서 남편에게 이야기를 하니 "당신이 다음 수를 보고 잘 대처했네."라고 말한다. 다음 수? 나 그런 거 생각 안 했는데. 그냥 어이없고 아저씨가 불쌍하다 생각했을 뿐이라고 했더니 남편이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설명해 준다. 그런 사람하고는 싸워봤자 일만 크게 될 거라며 안 좋은 상황에서는 그다음에 어떤 일이 벌어질지 생각하고 대처하라고 말이다.

 출처 pixabay

중학생인 둘째가 대쪽 같아서 불량스러운 학생들과의 마찰로 인해 학폭으로까지 번질뻔한 사건이 있었다. 먼저 욕하고 밀치는 학생한테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얘기를 나눠야 했다. 한두 명도 아니고 떼 지어 다니는 불량 학생들과의 마찰에서 빠져나오는 것이 가장 우선이 되어야 한다. 맞서 싸워봤자 다친다. 몸이든 마음이든. 마침 오늘 읽은 책에서도 이런 경우 어떻게 하는지 방법이 나와 있어서 아이와 얘기를 나눌 수 있었다.


'맞서 싸우는 방법'보다 '도망치는 방법'을 알려 주세요. 도망치는 법을 모른다며 참거나, 견디거나, 혼자서 모든 것을 짊어지는 '고독한 대처'를 할 수밖에 없다. '도망쳐도 괜찮다'라고 말해 주세요. 자기 방어를 할 수 있는 여지를 주고, '너무 아프고 힘들 때는 도망치는 방법도 있다'라고 자기 자신을 지키는 방법 또한 가르쳐 줘야 해요. 구체적인 방법은 먼저 '도망치는 방법을 아이와 함께 미리 연구하는 것'이죠. 아이와 함께 도망치는 방법을 궁리할 때의 요령은 '그 아이가 혼자서도 도망칠 수 있는 방법을 가능한 한 많이 정해 두는 것'입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아이가 자신의 안전을 지키기 위해 스스로 필요한 행동 지침을 알아 두는 것이 중요합니다.


                                                                 <아이를 무너트리는 말, 아이를 일으켜 세우는 말> 중에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