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1 태정이의 중간고사가 금요일에 끝난다. 토요일과 일요일은 놀 테니깐 짧은 여행을 가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남편에게 계획을 말했다.
"태정이에게 물어봤어?"
"시험도 끝났는데 가면 되는 거지."
"태정이도 계획이 있는데 먼저 물어봐야지."
시험이 끝나기만을 기다렸던 태정이는 잠깐 생각 좀 해보겠다고 했다. 무 자르듯 단번에 안된다 하지 않고 생각해 보겠다니 이 정도면 꽤 긍정적인 답이다. 시험 기간 동안 게임과 농구도 중단하고 시험이 끝나는 주말만 기다리고 있을 텐데. 그런데 뜬금없이 여행을 가자고 하니 남편 말처럼 황당할 수도 있겠다 싶었는데 말이다.
"엄마, 여행이 꼭 가고 싶어요?"
"그렇지 뭐, 가을이라 날씨도 좋고 바람 쐬면 좋을 것 같아서. 하지만 아빠가 말한 데로 네가 결정해. 주말 동안 네가 하고 싶은 것 하기로 먼저 약속했었으니깐."
"가요. 오랜만에 여행 가요."
기대하지 않았다. 여행보다 게임과 농구를 택해도 서운하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게임 때문에 울고불고 난리부르스를 치렀던 그 시기가 지나고 스스로 자제할 줄 아는 지금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잘 알고 있다. 그런데 그렇게 좋아하는 게임을 마다하고 가족 여행을 선택했다. 태정이의 결정에 바로 남편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남편도 믿기지 않는지 재차 확인을 해왔다. 잘못들은 건 아닌지 당일 치기가 아니라 하룻밤 자고 오며 주말이 다 갈 텐데 다시 한번 확인해 보라고 했다.
벌써 중간고사를 끝내고 10월 초부터 시작된 연휴에 친구들은 다 여행 간다며 매우 부러워하고 있던 태영이도 형의 결정에 환호를 질렀다. 중고등 사춘기 자녀들과 여행 가는 건 힘들다던데 남의 집 얘기인가 보다.
"엄마, 여행 오길 잘했다. 잘한 결정이었어요. 즐거웠어요."
고등학교에 입학하고 처음 함께한 가족 여행의 평을 말하는 태정이를 꽉 안아주었다. 키가 훌쩍 커서 허리를 꺾어 엄마 키에 맞춰주는 태정이에게 매달렸다고 하는 게 정확하겠다.
어렸을 때부터 휴일엔 자주 나들이를 다녔다. 경험을 쌓게 해 준다는 목적도 있었지만 복작복작 집에서 삼시 세끼는 너무 힘들었다. 가까운 거리 먼 거리 할 것 없이 비바람이 쳐도 눈보라가 몰아쳐도 나갔다.
아이들이 지금처럼 학교생활로 바쁘니 휴일엔 여행 이야기를 꺼내며 자주 추억에 젖곤 한다. 사춘기가 되어도 선뜻 함께 나설 수 있는 건 스펙터클 했던 생생한 기억들 때문이 아닐까? 진짜 생생했지. 눈보라 속에 운전하다가 죽을 번한 적도 있다.
이번 여행이 좋았다는 건 알겠는데 그래도 게임을 뒤로하고 어떻게 선택한 거지. 여행도 비현실적으로 좋았지만 태정이의 선택이 더 꿈만 같다. 태정이가 하교하면 물어봐야지. 어려서 몰랐다고 생각했는데 알았던 걸까? 작은 화면 속 게임세상보다 더 스펙터클한 그 무엇을 기대했던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