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뚜기에게서 배우는 리셋의 미학
< 오뚜기가 답이다… 다시 일어선다는 것 >
무심코 짜먹는 케첩 그리고 마요네즈에 그려진 모양이 갑자기 눈에 띄었습니다.
하루에도 알개 모르게 지나가면서 식당에서도 봤을 법한 그 캐릭터, 바로 ‘오뚜기‘ 입니다.
추억을 짚어보니 어렸을 적 갖고 놀던 장난감 중 오뚜기가 없던 집은 거의 없었던 것 같습니다. 국민 장난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이 물건이 요즘은 찾아보기 쉽지 않네요.
넘어 뜨리고, 손으로 짓누르고, 발로도 잠깐 밟아봐도 일어서던 그 친구.
수평하지 않은 장소에 둬도, 달리다가 떨어뜨려도 곧잘 벌떡 원래자리를 찾는 그 녀석.
그렇습니다. 수십번 넘어져도 원상회복 하며 방긋 웃음을 날려주던 손안의 장난감은 지금 생각해보니 리셋의 대명사가 아닐 지 싶습니다.
<쇼펜하우어 인생수업>(쇼펜하우어 저 / 김지민 엮음, 주식회사 하이스트그로우) 그 27번째 주제는 ‘다시 일어선 사람에게 영광이 주어진다’ 입니다.
언제나처럼 주제문 자체는 깊게 와닿지는 않았습니다. 그래서 제 엄지와 검지에 힘을 줘가며 책장을 넘겨보니 이내 쇼펜하우어 형님의 주옥같은 해석이 파고들었습니다.
‘흔히들 목표를 끝내 이뤘을 때 최상의 기쁨을 느낄 수 있을 거란 착각을 하지만 사실 결과 이전 다가서는 과정 자체에 보람과 행복을 느낀다는 것’이었습니다.
산 정상에 올라 “야~호~”를 외칠 때 상쾌하긴 하나, 숨이 헐떡이는 마치 죽을 것 같은 그 순간을 넘기며 닐 암스트롱은 아니지만 등산화를 쇼트트랙 날밀기처럼 내밀었을 때의 쾌감이 극강이란 사실은 우리 모두 경험해서 잘 아실 듯 합니다.
따라서 결과물을 도출하는 그 자체에 혈안이 되지 말고, 그저 묵묵히 정상을 바라보며 한걸음 한걸음 옮기는 스텝 바이 스텝 정신을 강조하십니다.
나아가 아주 멋진 한 문장이 눈에 띄었는데 ’인내를 그대의 의복으로 삼아라. 의복으 벗고다니는 것이 부끄러워지리라‘는 명문이었습니다.
암이란 불치에 가까운 병을 겪는 환우들이 결국 암을 극복하고 잘 살아갈 수 있는 원동력은 암을 나와 함께하는 동반존재로 인식하고 그대로 받아들인 채 치유하려는 노력을 지속할 때 비로소 퇴치할 수 있는 걸 보면 이 역시 머리가 절로 끄덕여 집니다.
다시 일어선다는 것이 말처럼 단순히 쉽지는 않을 것입니다. 아니 정말 어렵겠죠.
하지만 여러분, 우리 문두에 말씀드린 오뚜기처럼 넘어지는 것 자체를 두려워말고 그 무엇이 우릴 방해한다해도 힘겹게라도 또 기상할 수 있는 당찬 정신을 가져보면 어떨는지요 …(to be continu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