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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월 Jun 23. 2021

유튜버들과 기다리며

무겁지만 찍을 만해

지지지직.


"오디오 왜 이래."

혼선이 났다. 옆에서 카메라를 잡고 있던 타 사 선배가 긴장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많은 방송사 카메라가 현장에 몰리면 종종 오디오 사고가 발생한다. 무선 마이크 주파수 대가 겹치기 때문이다. 신입 때 혼선이 나서 오디오가 망가졌을 때는 진심 퇴사해야 하나 고민했다. 

그런데 '그 사람' 법원 도착한다는데, 포토라인에 선다는데, 혼선이 났다? 아주 그냥 뭐 되는 거다. 오디오를 못 쓰는 영상은 죽은 영상이니까. 찰나의 시간. 카메라 잡고 있던  선배는 이미 천국과 지옥을 오가고 있었다. 그의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혀 있었다.


테스트했을 때는 분명 문제가 없었다. 달라진 게 하나 있었다. 유튜버들이다. 테스트할 때는 보이지 않았던 유튜버들이, '곧 도착한다'는 기자들의 소리에 마이크를 들고 어디선가 나타났다.


예전에는 휴대폰 카메라가 전부였는데, 이제는 유튜버들도 무선 마이크를 들고 다닌다. 혼자 촬영도 하고 질문도 던진다. 그들이 법원 출입구 앞을 빼곡히 가리자, 기자들이 서둘러 삼각대 위에서 카메라를 뜯어냈다. 그리고는 이내 곧 10kg짜리 카메라를 들고 인파 속을 헤집고 들어가기 시작했다.


유튜버 vs. 기자.


정치적 이슈가 뜨거운 현장에서 종종 벌어지는 일이다. 첨예한 대립 각을 세우는 이슈에는 각각 진보와 보수를 표방한 유튜버들이 몰린다. 현장은 아수라장이다. 각 방송사에서 온 취재진만 해도 20명은 가뿐히 넘는다. 여기에 지나가는 시민들도 발을 멈추고 구경한다. 관계자들도 나와 있다. 혹시 모를 상황을 대비해 가끔 경찰도 보인다. 여기에 유튜버들까지 가세하면 현장은 아수라장이다. 사람이 많으니 누가 누구인지 분간조차 안 간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선고일 취재진들의 모습

옛날에는 기자들끼리도 싸웠다. 심각해지면 몸싸움도 발생했다. 목소리가 큰 사람 위주로 현장이 돌아갔기 때문이다. 좋은 자리를 잡기 위해 사진기자와 영상기자 간에, 지상파 영상기자와 종편 영상기자 간에 다툼이 발생했다. 마이크를 드는 취재기자와 카메라를 든 영상기자 사이에서도 고성이 오갔다.


그러나 다행히 기자들 간의 자리싸움은 예전보다는 나아진 편이다. 크고 작은 사건들을 겪으면서 자성의 목소리가 나왔고, 암묵적인 가이드라인이 생겼기 때문이다. (일찍 온 사람이 좋은 자리를 맡는다, 포토라인을 넘지 않는다, 혼선 나면 늦게 온 방송사가 마이크를 끈다 등)


문제는 유튜버들과의 싸움이다. 업계 내에서 관습법이 지켜진다고 해도, 각자 활동하는 개인들에게는 준수하라고 할 수 없는 노릇이기 때문이다. 서로의 배려에 의지해 취재를 해야 하는 상황에서 유튜버들의 독단적인 행동은 영상기자나 사진기자에게  스트레스로 작용한다. 피사체를 가리니까 비켜달라고 해도 무시당하기 일쑤며, 때로는 현장 기자들이 폭행을 당하기도 한다. 정치색을 강하게 띠는 유튜버들은 방송사 로고가 박힌 카메라를 들고 있는 영상기자를 찍으며 먼저 시비를 걸기도 한다. 취재기자들의 질문에는 비아냥대며 취재를 저지하기도 한다.

취재기자-유튜버-영상 및 사진기자 순으로 앉았다.

법정에 들어간 '그 사람'이 나오길 기다리는 동안 그들 지켜봤다. 유튜버들은 확실히 기존 미디어와는 다른 게 있었다. 권위의식이 없다. 가르치려 드는 게 없다. 그래서 재밌다. 웃기다. 무례하거나 염치없는 유튜버들도 많지만, 방송과 달리 그들은 자신의 감정에 솔직하다. (그것이 옳든 그릇된 일이든.) 꾸밈이 없다. 또한, 그들은 항상 현장에 있다. 앵글과 컷들이 조악하긴 하지만, 현장성과 신속성에 있어서는 방송 카메라보다 우위일지도 모른다. 10kg짜리 카메라와 휴대폰. 둘 사이에 누가 더 빠르고 쉽게 찍을 수 있는지는 안 물어봐도 알 수 있다.

문득 두려워졌다.

시청자들 점점 뉴스를 외면할까봐.


하지만 뉴스 외면이 과연 유튜브만의 탓일까. 과연 확증편향에 매몰된 인간 본성만의 잘못일까. 현장에 나오지 않는 기자. 사실과 다른 기사를 쓴 기자. '기자뽕'에 취해 천상천하 유아독존으로 구는 기자. 과연 책임이 없다고 볼 수 있을까. 시청자들의 외면은 미디어 대변혁 시대와 일부 기자의 '꼰대스러움'이 만나 빚은 대참사가 아닐까. 시청자들이 뉴스로부터 느끼는 위화감을 유튜브가 파고든 것은 아닐까. 어쩌면 이 모든 게 오해가 오해의 꼬리를 물고 일어난 일일지도 모른다.


전에는 TV에 광고를 많이 줬는데,
요새는 유튜버에게 더 많이 주거나
비슷한 것 같아요.


몇  년 전, 광고업계 지인이 말했다. 그의 한 마디는 꽤나 함축적이었고 충격적이었다. 광고는 사람이 많은 곳을 찾아간다. 즉, 시청자들도 TV보다 유튜브를 많이 찾아간다얘기가 된다. 그 얘기를 들은 뒤, 시간이 또 흘렀다. 흘러간 시간만큼 과연 얼마나 사람들이 유튜브로 더 갔을까. 얼마나 더 시청자들과 뉴스는 사이가 멀어졌을까.

야, 너네 좀 잘하는 카메라 기자 뽑아.
돈 좀 더 주고.


판결이 거의 끝나갈 때쯤, 격양되어 있던 유튜버들도 어느덧 자기들끼리 수다를 떨고 있었다. 끝나가는 그들의 대화를 듣다가 홀로 피식했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서로 사기꾼이라며 비난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영상과 노동에 대한 담론이 나오다니. 


실은 정치색을 떠나, 소속을 떠나 유튜버들도, 기자들도 어쩌면 넓은 의미에선 다 같은 미디어 종사자일지도 모른다. 모두가 뒤섞인 현장에서 새삼 묘한 기분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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