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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월 Jul 26. 2021

다름이 주는 공포

무겁지만 찍을 만해

'외국인'이 열차에 탑승했다.

다른 피부, 다른 머리, 다른 언어.


눈길이 갔다. 다른 사람들도 나와 마찬가지였다. 안 보는 척했지만, 다들 흘끗 쳐다봤다. 노약자석에 앉아 있는 사람들은 그를 빤히 쳐다봤다. 번화가에서 봤으면 별 생각이 없었겠지만, 동네에서 마주치니 신기했다.

이쪽에도 외국인이 사나 보네.


우리 동네에서는 외국인을 거의 본 적이 없다. 코로나 때문에 사람들이 외출이 없다고 해도 원체 드물다. 물론 이태원, 명동, 신촌, 홍대 등 번화가에서는 외국인들을 많이 볼 수 있다. 그런데 우리 동네에서는 본 기억이 없다.


외국인들을 쳐다보는 것도, 반대로 꺼려하는 것도 실례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무조건적인 환대도, 무조건적인 반대도 바로 편견에서 시작하며, 차별의 시작점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KKK도, Yellow Fever도 텍스트만 다를 뿐 모두 인종차별이지 않은가. 그래서 최대한 신경을 안 쓰려고 노력한다.


하지만 부족했다. 새로운 사람에게 눈길이 다. 스스로 꽤나 새로운 것에 대해 오픈 마인드라고 생각하지만, 모든 것이 능숙하진 않다. 세상을 매일 배우고 있지만, 여전히 사람을 대하는 것은 서툴다. 이 호기심 또한 서툴기에 나타난 것이라 변명한다.

해질 무렵 대만의 교정에서
한국인이에요?


역시외국인이었던 적이 있다. 대만에서 짧게 교환학생으로 있었을 때다. 내가 있었던 도시에유독 한국인이 없었다. 그래서 한국인이냐는 질문을 많이 받았다. 하지만 한류 열풍 덕분에, 국적과 상관없이 대다수의 사람들이 나에게 호감을 갖고 다가와 줬다. 한국인이라는 이유로 사진을 찍자고 하는 대만 학생들도 있었고, 같이 밥 먹자는 중국 학생들도 있었다. 한국어 알려달라는 일본 학생들도 있었다. 물론, 가끔 인종 차별하는 사람들도 있었고, 한국에 대해 부정적으로 말하는 사람도 있었다.


여자 카메라 기자도 있네요?


아이러니한 것은, 이 낯설지만 익숙한 기분을 또다시 한국에서 느낀 적이 더러 있다. 방송국 내 소위 남초 직군이라 불리는 영상기자 일을 하면서부터다. 회사 내부에서, 업계 내에서도 신기해했지만, 외부에서도 신기해했다. 여자라고 응원해 주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여자라고 오히려 더 막말하고 무시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오만과 편견은 회사 안과 밖을 가리지 않았다.


인간은 다름에 대한

설렘과 공포를 가지고 있다.


차례 이방인이 된 기분 느끼고 나서야, 다름이 주는 공포의 존재를 발견했. 그리고 5년이 지나서야, 일이 익숙해질 때쯤 설렘의 존재를 깨달았다. 설렘만 느끼면 좋으련만, 그게 어디 쉽나. 다름은 설렘을 주기도 하지만, 누군가에겐 공포를 주기도 한다. 낯선 것을 알고 싶은, 혹은 여유가 되는 사람들은 설렘과 기대감을 먼저 느낄 것이다. 변화를 새로운 모험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들이다. 반면, 낯선 것을 알고 싶지 않은, 혹 여유가 없는 사람들은 공포를 느낄 것이다. 이들은 변화를 자신의 기존 생활패턴을 침범한 존재로 인식하 한다.


사람은 다 다르다. 살아온 환경이 다르고, 역사가 다르다. 각자 다른 세계에서 왔기에 다양성에 대한 이해를 무조건적으로 바라지는 않는다. 다만, 이 명제 하나만큼은 확실하다. 상대도 나와 같은 사람이다. 나도 상대방과 같은 사람이고. 때론 잘할 수 있는 사람이고, 때론 실수도 하는 사람이다. 존재의 이유를 결과로 입증하는 것이 아닌, 목적으로 존재하는, '사람'. 


인간 존엄성은

성과로 입증되는 것이 아니다.



짧지만 강렬했던 유학생활을 되돌아보면, 사실 외국인이나 한국인이나 사실 다 똑같았다. 외국어를 능숙하게 하지 못해도 막상 얘기해 보면, 꽤나 공통점이 많았다. 그 친구들도 나처럼 빙수를 좋아했고, One Republic의 음악을 좋아했으며, 여행을 좋아했다. 취향에는 국경이 없었다. 그래서 우리들은 친구가 될 수 있었고, 10년 가까이 서로의 안부를 물을 수 있었다.


거기도 사람 사는 동네야.


북에서 온 언니가 내뱉은 이 한 마디는 내게 매우 충격적이었다. 놀란 것도 잠시, 내 자신이 매우 부끄러웠다. 언니가 입을 떼기 전, 나는 이미 북한 사람에 대해 어떤 답을 정해놓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도 모르게 '으레  동네는  그럴 것이다'라고 생각하고, 편견으로 대화를 이끌어 나가고 있었다. 그녀는 내 속을 꿰뚫어 보고 있었고, 제동을 건 것이었다. 그녀는 체제 옹호를 한 게 아니었다. 다만, 그녀의 눈이 말한 것은 그들도 나와 같은 사람이라는 것이었다. 달라 보이지만,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열차 맞은편에 앉아 있던 그가

역에서 내리고 나서야 깨달았다.


저 '외국인' 승객도 '이름'이 있는 나와 같은 사람이라는 것을. 저 사람의 세계에서는 자신이 '외국인'이라는 이름이 아닌, 가족이 준 '이름'으로 불릴 것이라는 것을. '이름'을 갖고 있는 그에게, '외국인'이라는 분류 하나만으로는 그를 다 설명할 수 없을 것이다. 그 한 단어로 저 사람의 세계관을 다 담아내지 못할 것이다.  사람의 존엄성은 한낱 '외국인'으로 평가하고 분류될 수 없는 것이다.


우리들은 달라서 특별한 존재다. 이유만으로 가치 있는 사람들이다. 다름에서 공포를 느낀 것은 오만과 편견은 아니었을까. 그리고 그 오만과 편견은 서로를 알아갈 시간이 부족해서 생긴 게 아니었을까. 시간이 문제였다면, 지금이라도 알아가면 되지 않을까. 내 시간만, 네 시간만 여유가 필요한 것이 아니다. 오만과 편견으로 점철된 우리들 시간의 사이에도 여유가 필요하다.


편견은 내가 다른 사람을 사랑하지 못하게 하고, 오만은 다른 사람이 나를 사랑할 수 없게 만든다.

- 제인 오스틴, <오만과 편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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