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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월 Sep 25. 2022

회사에서의 첫 실수

무겁지만 찍을 만해

일을 '잘'하고 싶다. 이왕 할 거면 '잘' 해내고 싶다.


잘하고 싶다는 욕심은 발전의 원동력이 된다. 다만, 그 과정에서 애꿎은 위가 고통스러워할 뿐이다. 내 위도 그렇다. 위염은 내 고질병이 되었다. 내가 저지른 실수는 내 위에도, 내 기억 속에도 오래 남았다.

위를 하얗게 불태웠다
너네 선배들이 너 자랑하더라.


현장에서 만난 타 사 선배들의 말처럼, 나름 일을 처음 할 때 주목을 받았다고 생각한다. 관종이 아니어서 힘들었지만 (내적 관종 INTJ). 당시 나는 취업난 불지옥에서 갓 탈출한 상태여서 스펙두 손에 꽉 움켜쥐고 있었다. 지금은 시간이 지나 만료되어서 거의 무에 가깝지만. 거기에 여자라는 특수성이 붙어서 안팎으로 사람들이 신기해했다. 그 해는 회사도 주목을 받던 시기였다. 경쟁률이 높았다. 모 선배는 바늘구멍을 뚫고 들어온 것에 자부심을 가지라고 했다.


주목받은 신입 1년 차. 

실망시키지 않으려고,

열심히 했다.

 

내가 말한 것들을 보여주고 싶어서, 내가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서. 그래서 일했다. 뱉은 말은 지켜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있어서, 더욱 매달렸다. 그 요구와 기대가 부담스럽고, 때론 부당하게 느껴지면서도 일했다. 별 볼 일 없는 내게 기대한 선배들을, 가족들을, 친구들을 실망하지 않게 하기 위해서도 일했다. 나의 존재를 증명하기 위해 일했다. 증명에 대한 부담감으로 '잘한다'는 칭찬은 내게 안도감을 줬지만, '못한다'는 비난은 내게 사형선고처럼 느껴졌다.


방송가에는 '무소식이 희소식'이 국룰로 받아들여진다. 하지만 2년 차, 나는 그만 부서 상사에게 '소식'을 전해버렸다. 취재기자 연결(생중계)을 위해 챙겨간 휴대용 라이브 중계 장비가 현장에서 켜지지 않았다. 방송 직전, 전화연결로 마무리된 탓에 방송사고가 되진 않았다. 그러나 현장과 내 휴대폰에선 질책과 비난의 목소리가 들렸다. 나는, 회사로 들어오자마자 경위서라는 것을 썼다.


회사에서의 첫 실수


세상에 태어나서 처음으로 경위서라는 걸 써 봤다. 학창 시절 반성문도 써 보지 않은, 노잼 범생이의 멘탈은 와장창 무너졌다. 그러나 '내가 실수했다'는 사실보다 '부서에 폐를 끼쳤다'는 사실이 더 공포스러웠다. 며칠간 이어진 태풍 속에서 전날까지 부서 사람들은 현장에서 비를 맞고 카메라를 부여잡고 일했다. 열악한 상황 속에서 무사고를 기록하고 있던 중, 내가 그만 찬물을 끼얹어버린 것이다.


나도 똑같은 실수를 해 봤어서 알아.


그 이후에도 크고 작은 실수들이 있을 때마다, 선배들은 자신의 과오를 고백하는 방식으로 나를 위로했다. 꼼꼼해서 지금은 프로인 선배도, 차분해서 전혀 실수하지 않을 것 같은 선배도, 말도 안 되는 실수를 했었다며 내게 경험을 공유했다. 때론 대처법까지 전수해줬다. 이걸 어떻게 이렇게 잘 아냐는 내 질문에 선배는 말했다. 이걸 잘 아는 건, 자신도 같은 실수를 해 봤기 때문이라고.


선배니까 그 말을 할 수 있는 거예요

사실 선배들이 그 말을 할 땐 잘 몰랐다. 아니, 안 와닿았다. 뭐로도 내 기분은 위로되지 않았다. 실수한 내 자신에 대한 불확신과 부서 전체에 누를 끼쳤다는 죄책감. 그 속에서 선배들의 말 한마디는 내게 인사치레로 다가왔다. 저 선배는 잘하니까, 저런 여유를 부릴 수 있는 거 아닌가. 남 일이라고 쉽게 말하는 거 아닌가. 실수한 적이 있었던 건 사실 맞나. 자괴감 속에 약간의 질투심과 의심을 넣어뒀었다.


선배들의 말이

진짜라는 걸 알게 된 건

4년이 지나서였다


기자회견이 학교에서 열렸다. 기자회견 시작 몇 분을 앞두고, 하나둘씩 자기 자리를 찾아 카메라를 잡기 시작했다. 내 카메라도 서둘러 자리를 잡았다. 이윽고, 옆에 세워져 있던 작은 카메라. 대학교 방송국 동아리의 것으로 보이는 카메라. 그 작은 카메라에도 3명의 학생이 붙기 시작했다.


이거 녹화가 안 돼. 어떡하지.

 

누구 불러와야 되는 거 아니냐며 허둥지둥 대는 학생들을 보고 신입 때 내 모습이 생각났다. 몇 분 후면 바로 기자회견 시작인데. 촉박하다. 계속 옆에서 지켜보고 있던 터라, 뭐가 문젠지 한눈에 보였다. "그거 카드 문제 같아요. 카메라 줘 봐요." 나의 얄팍한 제스처에 그들은 연거푸 감사인사를 건넸다. 그제야 깨달았다. 공감했던 거구나. 그래서 그때의 나를 보는 선배들의 시선이 이랬었구나.


실수는 누구나 한다.

 다음, 어떻게 할지는

실력이다.


이젠 후배들도 생겼고, 현장에서 날 보면 먼저 '선배'라고 부르는 타 사 사람들도 생겼다. 여전히 실수는 저지르고, 앞으로도 그럴지도 모른다. 다만,  사이 조금은 마음가짐이 달라졌다. '이미 일은 벌어졌다. 타임머신 타고 못 돌아간다. 내겐 헤르미온느의 시계도 없다. 수습이 먼저다. 이 상황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행동을 하자'라고.


년간의 단련이 그래도 나름 작은 결실을 본 게 아닌가 싶기도 싶다. 조금이라도 성장했으면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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