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작당모의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소운 Feb 03. 2023

아무도 모른다, 미스터리 인생

<내 인생의 미스터리- 사람>

  입관은 새벽빛이 가시지 않을 무렵 시작되었다. 염습(殮襲)을 마치고 반듯이 누워 있는 아버지의 모습이 단정하면서도 안온하다. 얼굴은 하얗고도 붉었다. 이 세상 먼지 말끔히 털어내고 저 세상 훈향(薰香) 편히 즐기시라 곱게 화장한 때문이리라. 저런 편안한 얼굴을 예전에 본 적이 있었던가. 너그럽고 인자해 보이기까지 한 표정이 낯설다. 그러나 몸과 얼굴은 안 본 새 많이 야위었고 수척해 있었다. 사람이 이렇게까지 작아 보일 수 있을까. 왜 이리 작아지셨을까. 하루하루 마음 내려놓고 지내신 탓일까. 울컥 뜨거운 것이 목을 치고 올라왔다.


  터져 버린 울음은 원망보다는 측은지심에 가까웠으나 미운  마음이 없지는 않았다. 살아생전 가족에게 다정하셨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아쉬움이었다. 마음은 그 누구보다 여리고 순한 양반인데 왜 가족들에게는 사랑을 표현하지 않고 속내를 감추고만 사셨을까. 무르고 약한 마음을 들키기라도 하면 권위가 떨어진다 여기셨을까. 그래서 말을 아끼고 칭찬에 인색하고 버럭으로 일관하셨던 것이었을까. 독불장군처럼 당신하고 싶은 일만 하고 주위에 관심을 두지 않으셨을까. 힘든 바우고개 언덕은 당신 혼자 오르는 것으로 충분하다 여기셨을까. 그 덕에 당신도 가족들도 모두 외로웠던 것을 모르시진 않았을 텐데. 서로의 외로움을 직면하는 것이 두려워 회피하고 살아진 것을 분명 아셨을 텐데.


  응달에는 아직 잔설이 희끗하게 남아있는 삼월의 장례식장은 3일 내내 조용했다. 엄숙하고 경건한 분위기의 차분함이 아니라 스산하고 건조한 침묵이 메운 냉랭함이었다. 식구들과 하객들은 어쩌다 세상을 등지게 되었는지 의례적으로 한 마디 물었고 대답하는 상주 역시 세상을 떠날 당시를 한 마디로 설명하는 것으로 인사는 마무리되었다. 더 이상의 대화는 이어지지 않았다.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위대한 침묵 DNA의 증거였다. 장례식장에서 흔히 볼 법한 눈물바람도, 들릴 법한 곡소리 하나 나지 않는, 지나가는 바람 같은 장례였다. 그냥 어느 날 그런 일이 일어났을 뿐이다. 그날이 아니었다면 멀지 않은 어느 날 일어날 일이다 여길 뿐이었다. 아쉽다거나 안타깝다거나 허망하다거나 상심이 크다거나 힘을 내야 한다거나 하는 일체의 감정이 오가지 않는, 공기도 없고 따라서 중력도 없는 대기권 밖의 진공의 세계와 같았다.


  입관을 준비하는 일꾼들은 서둘러 절차를 끝내고 싶다는 듯 주위를 살피며 눈짓을 주고받았다. 마지막 가시는 길 인사하시라는 장례지도사의 건조한 말이 떨어지고야 가족들은 제자리에 서서 고개만 숙였고 일꾼들이 행여 어수선하여 화가 미칠까 서둘러 노잣돈을 챙겨주었다. 그래도 미우나 고우나 아버지라는 이름으로 살았고, 가족을 위해 헌신했으며 가정을 지켜왔던 아버지의 존재가 더 이상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이유만으로도 슬픔은 미리 당도해 있어야 했건만... 그러나 미처 준비하지 못한 슬픔은 마지막 길에서 조차 침묵 속에 처박혀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었다.


  아버지의 얼굴을 만진다. 파르라니 잘 깎여진 머리를 쓰다듬고 작아 쪼그라든 가슴에 손을 얹는다. 아버지의 볼에 내 볼을 갖다 댄다. 서늘한 기운, 이미 아버지는 이 자리에 계시지 않는 것일지도 몰랐다. 당신 뒤에 따라오든말든 앞서 혼자 걸어가셨듯. 문득 소주 냄새를 느낀다. 염을 하는 과정이나 주위를 닦을 때 썼던 알코올냄새일 수도 있겠다. 그러나 그런 알코올냄새와는 달랐다. 평소 아버지가 치열하게 마셨던 그 소주냄새다. 치매의 상황은 가족 하나하나를 천천히 잊게 했고 술과 담배마저 잊게 했지만 이제 죽음으로 다시 자유를 찾으신 모양이었다. 나도 이제 소주 냄새를 알고 맛을 아는 나이가 되어가는 즈음, 알코올냄새는 차라리 안도였다.


  장례절차가 마무리되어가고 있었다. 마포로 된 대렴포를 깔고 아버지를 관에 뉘이고 생시에 입었던 옷가지며 소낭을 각각 머리와 허리에 질러 넣고 천판을 덮어 못을 박았다. 관을 들어 옮기고 버스를 타고 화장장으로 간다. 함에 담겨 나오는 아버지. 납골당에 함을 넣어두고 가족들은 그제야 헤어져 각자의 집으로 향했다. 길고 피곤한 장례였을 것이다. “너, 아까는 왜 그렇게 많이 울었어?” “네 울음소리라도 들리니까 좀 낫더라.” “아버지라는 존재가 이제는 없다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슬펐다고?” 여러 말들, 가슴을 할퀸 말들은 잊어야 했다. 그렇게 그를 마음에 묻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3월인데도 눈이 많이 내리고 있었다. 폭설이라 했다.


  ‘그렇다손 이리 푸대접을 받을 일이가. 막말로 사내 자슥이 지 돈 벌어가 지 멋대로 쫌 쓰고 댕기고 집안 건사 안 했다고 그기 무신 흠이라꼬. 기집질을 해서 첩을 들앉힌 것도 아이고 새끼를 델꼬 들온 것도 아인데. 글타꼬 노름을 해서 가산을 탕진한 것도 아이고 보증  잘못 서가 집을 날려 묵은 것도 아이고. 마누라를 패기를 했나 자슥을 때맀나. 사람이 여물지 몬하고 물러서 그런 기지. 사람 착하고 성실한데 아쌀한 맛이 없어 그런 기지. 우짜겠노, 옆에 사람이 고생했겠지만 사람 버릇 어데 쉽게 고쳐지드나? 남한테 해코지 안 하고 지 혼자 저라다 가는 것만으로도 다행이지. 자슥 내 몰라라 한 지 애비를 닮아가… 피는 몬 속이는 기라. 그래도 애비라꼬 그리 따라댕기고 정성을 다하드만 애비한테는 갔을라나…’ 어른들의 푸념 섞인 넋두리도 생각하지 말아야 한다. 맞기도 틀리기도 하지만 지나가버린 일이었다.


  우리는 태어나는 것에 대해 이유를 묻지 않는다. ''를 알고 있기 때문이다. 새들이 알을 품어 때가 되면 새끼는 알을 깨고 세상에 나오듯, 사람이 태를 품어 때가 되면 아이는 세상 밖으로 나오는 것이다. 어떻게 생기게 되었는지, 왜 지금 태어났는지, 어쩌다 태어났는지 의아해하지 않는다. 그러나 죽는 것에 대해서는 이유를 묻는다. ''몰랐기 때문이다. 그''는 대부분 급작스럽고 예기치 못한 상황일 경우가 많아 죽음과 맞닥뜨리게 된 순간을 궁금해하고 슬퍼한다. 그것은 그 사람이 어떻게 살아왔는지에 대한 관심이며 가열하게 살아온 세월에 대한 회억일 것이다.


  어떻게 생겨나서 태어나게 되었는지가 미스터리였던 아이였다고 고모라는 사람은 얘기했었다. 신기하다고까지 표현했었다. 그리곤 잊힌 사람으로, 외로운 남자로 살았을 것이다. 그래서였을 것이다. 옛날을 잊기로 했을 것이다. 사람과 사랑을 잊기로 작정했을 것이다. 잊어야만 더 행복한 기억을 얻게 될 것처럼... 죽음에 대해 애타게 이유를 묻지 않게 된 경위였을 것이다. 결국 처음과 끝이 미스터리였던 것이다.



  그런데 참으로 이상한 일은 해마다 반복돼 일어났다. 3월이 다가올 무렵이면 이유 없이 불쑥 눈물이 솟는 것이었다. 그리고 가족들은 해마다 기일 즈음에 모였다. 모여 아버지를 추억하거나 슬픔을 확인하는 일은 없지만 그랬다. 나 역시 아버지를 그리워서 잊고, 못 잊어서 그리워하는 것이 아니다. 마음 속에선 이미 보내드렸는데도 가끔 그리움이란  것이 찾아온다. 그리운 것은 그냥 그리운 것이다. 그 또한 미스터리다.

인생을, 사랑을, 사람을 아무도 모르듯이.

인생이, 사랑이, 사람이 미스터리이듯.


 



4인 4색, 결 다른 사람들이 글쓰기 위해 모였습니다.

제대로 한번 써보자는 모의이며, 함께 생각을 나누며 어울려 살자는 시도입니다.

격주 목요일 매거진에 글로 작당 모의할 예정이니 지켜봐 주시길 바랍니다.

자, 그럼 수작(手作) 들어갑니다~, 큐!

매거진의 이전글 불가능한 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