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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프로신물러 Oct 16. 2019

설리를 떠나보내며

프랑스에선 이해받지 못할 슬픔

"너 갑자기 왜 그래...? 아는 사람이야?"


남편과 주말여행을 기분 좋게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기차였습니다.

자리를 딱 잡고 주전부리를 종류별로 펼쳐두고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던 저는

그대로 굳어 체해버리고 말았습니다.


제가 기억하는 그녀의 마지막, 예쁘기만 한 모습입니다. ⓒ 호텔델루나 tvn


시차때문에 한국에선 이미 한바탕 소란이 지나간 뒤였고,

제가 본 건 '유가족들이 장례를 조용히 치르기를 간곡히 바라고 있다'는 기사였습니다.


그러니까 밝게 웃는 사진 속 설리가 이제는 고인이라는 사실과,

유가족들이 마음껏 슬퍼하며 보낼 수 있게 기자와 악플러, 고쳐 말해 살인자들에게 호소해야 하는 현실...

이 두 팩트가 심장을 후드려 패는 느낌이었습니다.


내내 실실 웃다가 갑자기 돌변한 제 표정을 보고 남편이 묻습니다.

"너 갑자기 왜 그래...? 너랑 알던 사람이야?"

.

.

그럴리가요.


한번도 자의로 F(x)의 노래를 들어본 적도 없는 걸요.

설리는 그 그룹에서 가장 인기도 많고 구설수도 많아보였지만

한번도 딱히 좋아해보거나 싫어해본 적도 없습니다.

간간히 그녀의 기사를 스쳐보면 소신 있고 용감한 친구구나,

이런 대중의 관심을 견뎌내다니 멘탈이 강한가보네 생각해 본 기억이 있네요.




한국사회의 악플테러리즘


"아니, 그냥 한국의 스타야. 소신있는 아티스트였는데 기자랑 악플러들이 물어뜯어 죽였어"

"왜?"

"얘가 보통 사람들처럼 연애하고 셀카올리고 브라 안하는게 편하다고 해서"

"음.. 그렇구나.. (이해 못 함)"

"프랑스에서 IS가 테러를 하듯이 한국에선 악플러들이 테러를 해서 사람을 죽여."

"음.. 왜?"

"왜냐면.. 휴...... 말하자면 너무 길어."


말하고 나니 더 화가 났습니다.

이건 보편적으로 공감할 수 있는 사례가 아니라

지극히 한국적인, 우리들의 병적인 광기에 대한 이야기였으니까요.


우리 사회가 악마를 키웠습니다.
그리고 그 악마들이 여린 영혼들을 죽이고 있습니다.


마치 정치경제적으로 억압받아온 계층의 젊은이들이 IS의 일원이 되는 것과 무엇이 다를까요.


사회적 잣대에 지긋지긋하게 억눌리거나,

남들의 평가와 시선에 평생 감옥처럼 자신을 검열해온 우리들은 그 분노를 남에게도 쉽게 돌립니다.

"나도 고통스러우니 너도 좀 아파봐! 그리고 연예인, 넌 돈과 인기도 있으니 더 가혹해도 마땅하지"


테러가 일상이 된 프랑스
그리고 정상적인 뇌에서 나오기 힘든 발상의 충격적인 악플들. 어떤 테러사회가 더 최악일까?  ⓒ 조선일보


연예인 악플러 뿐만일까요.

'심리적 폭력'에 있어 우리는 심각하게 잔인한 사회라고 느낍니다.

어디서든 사람들이 모이면 온갖 가십과 남얘기를 즐기는 문화가 만연하고

학교를 넘어 직장에서까지 왕따 돌림따가 문제가 되고 있으니까요.


말 한마디 행동거지 SNS에 올리는 사진과 말들까지

남들의 비난과 뒷얘기 조리돌림을 당할까 살얼음판을 걷는 듯한 기분,

저를 포함해서 대한민국에서 교육을 받고 사회생활을 해봤다면 모두 잘 알 것 같습니다.



프랑스에서 얻은 자유, 비난받지 않을 권리


이전 글에서 프랑스, 파리 살이의 지긋지긋함에 대해 얘기했었습니다만

그래도 프랑스여서 숨통이 트이는 건 '비난받지 않을 권리'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내 마음대로 비난하지 못하는 제약'이 있기에 가능합니다.


제 경험을 돌아보면,

아무리 아랍에서 온 이민자들이 소란을 피우고 불을 지르고 경우 없이 군다 해도

국적이나 인종을 가지고 비난하면 법에 저촉됩니다.  

(남편은 진짜로 감옥에 갈 수도 있다고 굳게 믿으며 조심하고 있네요. 무슨 일이 있어도 집에서만 욕해요.)

굳이 법에 걸려서 조심하는게 아니더라도

너 인종차별주의자(Racist)야? 라고 하면 다들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해질 정도로 부끄러워합니다.

많은 게이들과 일해봤지만, 일터에서 농담이라도 게이라고 조롱하면 결국 그 자신이 더 쪽팔리게 됩니다.


그리고 누가 거적때기를 걸치고 다녀도, 전신에 문신을 했어도, 머리가 무지개 색이어도

여자들이 입은 옷에 뱃살이 불룩불룩 비쳐도, 브라를 하지 않아도, 77사이즈가 미니스커트를 입어도

그 누구도 대놓고 비난하지 않습니다.

누구에게도 그럴 권리가 없다는 걸 모두가 알고있으니까요.


설리를, 그리고 많은 설리들을 죽인 악플러들에 대해 얘기하면

남편을 비롯해 프랑스 친구들은 이렇게 반응할 것 같습니다.

"그 사람들은 그런걸 써서 얻는게 뭔데?"

"왜 굳이 시간을 들여서 기분 나쁘고 인생에 도움도 안되는 일을 해?"

"남의 일에 왜 이렇게 관심이 많아? 할일이 없나?"



그리고 저는 그런 사람들의 속에서 이전엔 느껴본 적 없는 '자유로움'을 느낍니다.




분노가 키운 악마, 분노를 없애는 건 누구 몫?


대한민국의 악플러를 퇴치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온 힘을 다해서 지지하고 싶습니다.

합법적으로 찢어죽이고 말려죽일 수 있는 방법이 있다고 하면 찬성할 것도 같고요.

저와 같은 마음으로 댓글 실명제며 악플금지법 이런 얘기들이 나오는 거겠죠.


뜬금 없지만, 한 여름에 파리 경전철을 타고 출퇴근하던 날이 생각납니다.

다채로운 암내를 뽐내는 사람들이 빽빽한 전철 안에

에어콘도 없이 역대급 폭염으로 체감온도가 50도까지 올라갔던 날,

더운 사람들과 살갗을 맞대며 밀고 밀치며 소소한 전쟁을 벌이고 끝내 체구에서 밀려 찌부가 되어 탈출하던 날,

저는 눈 앞의 모든 사람들을 때리고 허공에 소리지르고 싶다는 충동을 느꼈습니다.

그리고 쾌적한 온도와 인구밀도의 목적지에 도달하자 그 깊은 빡침과 충동은 5분 만에 사라지더군요.

그날 전 순간적인 분노가 만들어낸 제 안의 악마를 보았습니다.


지금 우리가 바라보아야 할 건 우리 안에 차고 넘치는 '분노' 같습니다.

어두운 방 모니터 앞에서 자신의 인격도, 누군가의 영혼도 테러하고 있을 사람들,

그들을 가득 채운 분노가 누그러진다면 달라지지 않을까요.

설리처럼 예쁘고 당찬, 착하고 여린 영혼이 덜 떠나가지 않을까요.



글을 쓰며 사진 속 설리의 밝은 웃음들을 보다 보니 또 다시 먹먹해지는 밤입니다.

오늘 밤엔 그녀처럼 상처받고 힘들어할 누군가들을 위해 기도해야겠습니다.


ⓒ 연합뉴스

하늘에서 편히 내려놓고 이렇게 해맑게 웃기를,

故최진리양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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