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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맹수봉 Feb 12. 2023

수십 년 전의 시련을 이제야 딛고 일어서는 중이다.

우울증 치료 11개월


우울증 치료 일 년이 돼 가는 중에 가장 궁금했던 부분은 '왜 나는 우울증에 걸린 거지'였다. 우울증치료 초기에도 궁금했는데 , 일년이 되어가는 이 시점에도 여전히 궁금하다. 가정사가 없는 집을 찾아보기 힘들 텐데.. 그렇다고 세상 모두가 우울증을 겪어내는 건 아니기 때문에 그 사람들과 나 사이의 차이점을 알고 싶었다.


역사상 수많은 훌륭한 학자들이 동의한 것처럼 시련이 왔을 때 그걸 이겨내기만 하면 우리는 반드시 성장합니다. 이것은 일종의 정신적 연금이라고도 볼 수 있어요. 위기 극복 경험은 당사자에게 죽을 때까지 자신감과 가치감, 성취감을 부여하기 때문이죠. 또한 지독하게 힘들었던 위기 시절과의 지각적 대조 현상으로 인해, 현재 딱히 좋은 일이 없어도 내 삶에 대한 만족도가 기본적으로 높아진다는 장점도 있습니다.

<내향인을 위한 심리학 수업 / 최재훈>


어쩌면 그들은 시련을 '이겨'냈을지 모르고 나는 여전히 그 시련 속에 '머물러'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성장하지 못한 내면아이가 나에게 ‘우울증’으로 시그널을 보냈다는 가설이 가장 타당하게 느껴졌다. 어린 나는 여기저기에서 불어닥쳤던 힘듦에 고립될까 싶어 대충 덮어놓고 도망 다녔던 것 같다. 마주할 자신이 없어서. 그러니 나는 위기를 '극복'해본 적이 없는 것 같다. 위기에서부터 '도망'다니기에 급급했던 날들이었다.


나이를 먹는다고 저절로 연륜이라든지 여유가 생기는 게 아니요. 사람의 정신적, 인격적 성숙은 반드시 경험을 통해서 이뤄지기 때문에, 나이가 어린 사람일지라도 많은 위기를 극복해 본 경험이 있다면 바위처럼 단단한 정신력을 지닐 수 있는 겁니다. "위기나 시련을 어떻게 해야 잘 극복할 수 있나요?"라는 질문에 대답하기란 무척 어렵습니다만 , "위기나 시련을 극복하면 어떻게 되나요?"에 대한 대답은 너무나도 명확해요. 그리고 내가 이 시련을 이겨냄으로써 성장해 보이겠다는 의지를 가질 수 있다면, 이 동기부여가 지금의 시련을 무사히 지나갈 때까지 나를 지탱해 주는 튼튼한 버팀목이 돼줄 것이라는 사실 역시 분명합니다.

<내향인을 위한 심리학 수업 / 최재훈>


우울증은 덮어놨던 수많은 과거의 시련들과 마주하고 털어내는 기회를 ‘드디어’  만들어주었다. 누군가는 덮어놓은 곳에서 불이 나서 화가 불쑥 치솟아 오르고 그 불은 끈다 해도 잔불들에 사랑하는 사람들을 화상 입게 하기도 하고 나 같은 경우는 덮어놓은 곳에 감정의 물이 괴여 침수가 되었고 나를 갉아먹었다. 우울의 늪으로 빠지게 되고 자기 파괴적인 과정을 거치게 된다. 그 과정 중에 ‘드디어’ 그리고 ‘이제야’ 수십 년 전의 시련들을 떨쳐내고 있다. 나를 바로 마주했다는 것. 이제야 나를 보듬고 이제야 나를 먼저 생각하게 된다. 내가 나와의 관계를 다져가고 있다. 그리고 나는 곧 ‘성숙’해지리라 감히 단언해 본다.


결국 가장 중요한 것은 '나'예요. 하지만 우리는 끊임없이 밀려드는 인간관계의 파도에 휩쓸린 채로 정작 나 자신을 돌볼 시간을 놓치곤 하죠. 심리학에서는 스스로와 친밀하게 사귀고 소통하는 방식으로 '자기 자비심'이라는 개념을 소개하고 있는데요. 이는 간단히 말해 내가 가장 아끼는 사람을 따뜻한 마음으로 대하듯 자신에게도 똑같은 마음으로 대하라는 겁니다. 내가 내 편이 돼주는 것, 내가 나를 따뜻하게 바라봐주는 것, 내 안의 나를 인정하고 이해해 주는 것에서부터 삶은 밝게 빛나기 시작해요. 이 세상에서 가장 든든한 내 편은 바로 나 자신이라는 사실을 잊지 마세요.
<내향인을 위한 심리학 수업 / 최재훈>


생각해 보면 나보다 타인을 먼저 바라보는 것이 잘살아내는 처세술인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던 것 같다. ‘이기적이다’는 말의 뜻을 잘못 해석하고 살아냈던 것 같다. 나를 먼저 보듬는 일은 이기적인 일이 아닐 텐데 말이지.


그런데 종종 여러 상황들 속에서 여전히도 나를 배려하지 않는 선택들을 한다. ‘나’만 괜찮다고 생각하면 잘 굴러갈 상황들에서는 여전히 붕어처럼 입만 뻐끔거리고 있을 때가 왕왕 있다. 그럴 땐 나의 아이들을 바라본다. 나의 삶을 그대로 학습해갈 나의 아이들을 바라본다. 마음이 불편해도 도망치지 않고 직면하는 것을 선택한다.


살면서 배워야 하는 말이나 태도가 있다. 책을 읽고, 공부하고, 강의를 들어도 무심결에 튀어나오는 말은 부모에게서 듣고 자란 말이다. 뼛속까지 각인된 삶의 태도인 것이다. 강렬하게 읽은 책 보다 무의식의 경험이 훨씬 강력하다. 그러니 아이들에게 글이 아닌 삶으로 보여주고 가르쳐주어야 한다.

(중략)

이기적인 엄마가 되자. 나를 제일 먼저 생각하고,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 되자. 아이가 커서 자신을 위한 일에 죄책감을 느끼지 않도록 가르쳐야 한다. 아이가 행복하게 살기를 바란다면, 엄마가 행복하게 살아야 아이도 그런 삶을 살아간다. 부모가 아이에게 삶의 내적 동기가 되어주어야 한다.

‘엄마처럼 하면 엄마처럼 살 수 있구나’
‘아빠처럼 멋진 어른이 되고 싶다’ 고 생각해야 한다.

아이들에게 엄마는 희생하는 사람이 아니었으면 한다. 이기적인 엄마가 되어 아이들에게 행복한 삶의 교과서가 되어주자. 우리가 아무리 이기적으로 살려고 노력해도, 늘 우선순위는 아이들이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안다. 그렇지만 아이를 키우며 살아가는 이 삶이 얼마나 행복한지 아이들에게 늘 알려주자. 아이와 부모가 서로 삶에 균형을 맞추며 살아가야 한다. 엄마의 삶은 무시한 채 지내지 말자. 내 행복이 최우선이다.

(중략)

아이의 행복을 위해서 우리는 더 현명하게 행복해져야 한다. 아이는 엄마처럼 행복하게 살이 위해 공부할 것이다.
<자발적 방관육아 / 최은아>


수십 년 전의 시련을 이제야 딛고 일어나는 중이다.

나를 바라보고 나의 행복을 찾는다.

그리고 성장해 간다.


사랑하는 나의 아이들이 엄마의 이런 모습을 기억해 주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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