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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브라질소셜클럽 Mar 01. 2024

전통이 상실되면 나타나는 사회의 모습

명절 없는 나라

여러분은 기념일을 좋아하는 편인가요?


세상 모든 문화권에는 부활절(종교), 제헌절(사회), 삼일절(역사)과 같은 기념일들이 존재합니다. 많은 국가들이 이 날을 위해 국민의 세금을 걷어서 행사를 하고 값비싼 폭죽을 공중에 아낌없이 터트리곤 합니다. 그런가 하면 회사와 같은 사적 조직에도 돈을 모아서 여행을 간다던지, 연말 송년회를 하는 등 기념일과 전통이 있습니다. 


기념일, 전통 행사에 회의적인 사람들은 보통 이렇게 말합니다.


"아... 저 세금으로 힘든 사람들이나 좀 나눠주지"

"이런 데다 쓸 돈 그냥 내 월급으로 주면 좋겠다"


하지만 만약 사회와 조직에 극단적 효율만을 추구하기 위해 전통이 모두 없어진다면 어떻게 될까요?

오늘날의 한국이 그 결과를 조금씩 보여주고 있는 것 같습니다.




사라지는 민족 대명절



중국, 베트남을 비롯한 아시아 문화권에서 음력 설날은 1년 가장 중요한 명절 중 하나입니다. 설에는 멀리 외국에 있던 동포들도 비행기를 타고 날아와 가족을 만나고 특별한 음식을 먹으며 서로 돈봉투를 주고받습니다.


반면 한국은 더 이상 음력설을 중요하게 지키지 않는 경향이 강해지고 있습니다. 인구의 대부분이 서울과 그 주변에 사는데도, 30-50%가 가족을 만나지 않겠다고 답했으며, 특히 18-29세 젊은 층 중 거의 절반은 만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18세 이하 학생인 경우에도 아마 비슷한 결과가 나왔을 것으로 예상합니다. 학생 때를 돌이켜 보면 일부는 부모님만 고향에 내려가고 남아서 공부를 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는데, 지금도 다르지 않을 것 같습니다.



대신 설날은 이제 가족이 아니라 해외여행을 가는 명절이 되었습니다. 매력적인 엔화 환율과 코로나 때 억눌려있던 여행 수요가 폭발하면서 하루 20만 명씩 총 124만 명이 넘게 해외여행을 떠났고, 그중 1/3 가량이 일본을 선택하였습니다. 명절, 전통을 중시하는 일본인들이 보기에 흥미롭다 느낄 것 같습니다. 




가족과 공동체 연대감 상실


기념일에도 가족을 만나지 않으니, 자연스럽게 가족과 이웃에 관련된 만족도 수치에서 한국은 전 세계 바닥을 찍는 기록을 세웠습니다. 2023년 이케아 설문조사에 따르면 대다수의 한국인들이 집에서 가족과 같이 있는 것이 즐겁지 않으며, 인생에 중요하지 않고, 그냥 혼자서 간섭받지 않고 쉬는 것이 가장 행복하다고 답했습니다. 


이것은 평소에 효율만을 좇아 기념일, 명절을 등한시하는 사회의 특성을 생각해 보면 놀랍지 않습니다. 물론 기존의 명절은 여성들이 가사노동을 지나치게 부담하는 구조였고 명절 갈등으로 인해 이혼까지 발생하는 폐습이 있었지만, 그렇다고 가정간 소통이 완전히 단절되는 것도 바람직하지는 않습니다. 


시댁에 가서 며칠씩 숙박하는 서양 문화


선진국인 미국이나 캐나다를 보면 여유 있고 행복한 집안일수록 가족, 시댁 간 생일과 기념일을 적극적으로 챙겨주고, 1년에도 몇 번씩 집을 방문해서 며칠씩을 같이 보냅니다. 오히려 시집살이라고 할만한 문화는 이제 서양에 있다고 말해도 될 정도입니다. 외국인들이 K-드라마에서 보는 가족 중심 문화는 <응답하라 1988>에서나 볼 수 있는 역사가 되었습니다.




없어진 결혼식 전통

모두의 축제, 인도 결혼식


결혼식은 독립적인 성인으로서 치르는 가장 중대한 의식인 만큼, 한 문화권의 전통이 집약되어 있는 행사라고 보아도 좋습니다. 숙박을 잡아가며 3박 4일씩 치러지는 인도나 아프리카 국가들의 결혼식은 전통 음악과 춤, 의상을 아낌없이 선보이며 모두의 축제거리가 됩니다. 또한 대부분 문화권에서 결혼식에 온 손님은 자선의 의미로 거지든 부자든 무조건 밥을 제공받았습니다. 조선시대에도 결혼식을 하면 음식을 나누어 먹었지 돈을 걷지 않았습니다. 인도나 우즈벡 웨딩에서 자주 등장하는 거대한 솥에는 아무리 많은 사람이 와도 굶기지 않겠다는 인심이 담겨있습니다.


우즈벡의 3,000kg 웨딩 필라프


한국은 어떤가요? 참가비를 걷어야만 들어갈 수 있다니, 외국인들은 입구에서부터 충격에 빠집니다. 결혼식장과 주례, 음악, 의상 그 어떤 요소도 한국 문화와는 별 상관이 없는 서양식의 웨딩홀일 뿐이고, 결혼식도 2-3시간이면 끝이 납니다. 예식만 놓고 보면 30분 컷도 가능합니다. 양가에서 많은 돈을 들이고 사람들에게 참가비까지 걷어가며 치렀지만, 많은 신랑신부들은 끝나고 보면 별로 기억에 남지 않는다고 합니다. 인생 행사치고 너무 짧고 형식적인 데다 전통적이지도 않기 때문입니다. 


비슷비슷한 서양식 웨딩


가족을 이루는 첫 단계인 결혼식마저도 효율만을 따지는 30분 웨딩으로 전락하고, 결혼 때 주고받는 선물도 하이엔드 명품급으로 액수가 높아지면서, 이제는 결혼식장까지 가는 과정도 약혼자 간, 가정간 불화로 가득 차게 되었습니다. 물론 인도나 동남아 결혼식이라고 이런 문제점이 없는 것은 절대 아니지만, 적어도 그들의 행사 자체는 돈을 기꺼이 내고 참석할 만큼 재밌어 보입니다. 그에 비하면 외국인들에게 한국 결혼식은 수천 년 역사가 무색한 정체성 불명의 행사처럼 보입니다.




물론 한국이 오늘날의 모습에 이르게 된 데에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습니다. 고속 성장을 위해서 급격한 도시화, 산업화가 필요했고, 그 과정에서 서울과 강남의 집중적 개발이 지금의 도시국가화로 이어지며 대가족에서 핵가족, 1-2인 가정으로의 전환을 일으켰습니다. 이때만 해도 둘만 낳아 잘 기르자고 할 정도로 가족 문화는 조금 희생해도 된다는 주의였고 오늘날처럼 급속도로 인구가 바닥날 줄은 상상도 못 했을 것입니다.


지난 반세기 효율과 돈만을 좇아 전통과 기념일을 모두 버린 결과는 외국에서 볼 때 안타깝기 짝이 없습니다. 전통 행사가 없으니 일본처럼 많은 관광객을 모으지도 못하고, 매력적인 지방 축제나 볼거리도 없어 외국인 관광객들도 반나절 한복 대여해서 경복궁, 북촌 가는 것이 사실상 전통체험의 전부가 되었습니다. 한국인들이 전통, 명절을 중요시하지 않으니 어찌보면 자연한 결과입니다. 


21세기 한국에게 남아 있는 전통이란 뭘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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