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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옥미 Jul 26. 2022

관대해질 필요가 있지.


이렇게 어색할 일인가?

지금까지 씀방을 하면서 자신에 대해 자부심을 가지라고, 칭찬을 해주라고 얼마나 많은 말을 했던가? 스스로 칭찬하며 관대해질 필요가 있다는 생각에 셀프 칭찬이란 제목으로 글쓰기 주제를 준다. 다들 어려워하고 오글거려하지만 그럼에도 시도해보라고 격려를 넘어 압박을 했다.

“옥미님도 쓰실 거죠?”

이렇게 훅 들어올지 몰랐다.

안 쓰겠다는 명분이 먼지 한 톨만큼도 없었다. 난 당연히 써야 하는 입장이었고 써보겠노라고 말을 했다. 그리고 반년이 지났다. 눈코 뜰 새 없이 바쁘기도 했지만 나를 칭찬하는 일에 인색했었다는 것조차 인지 못할 정도의 삶이었구나를 새삼 느낀다. 나에게는 조금도 관대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닫는데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한 줄도 제대로 쓰지 못했기 때문이다.


글을 쓰면서 많은 위로와 힘을 얻었다. 무엇이든 써야 직성이 풀렸고, 쓰고 나면 압력밥솥에 밥이 끓어 터질 듯한 압박도 살살 김이 빠져 평온해졌었다. 글쓰기는 나에게 일상이 되었다.  브랜다 유랜드의 말을 빌려 "글쓰기가 성취가 아니라 나에 대한 관대함을 얻을 수 있다"는 말을 모임 때마다 했었다. 그러나 내가 뭘 칭찬받을 만한 사람이라는 생각은 해보지 않았다는 것을, 나에게  인색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제부터 좀 관대한 마음으로 마주하려 한다.


글쓰기를 하는 분들에게 이 셀프 칭찬을 쓰라 하며 다들 난감해한다. 나와 같은 마음이다. 자신에 대해 칭찬할 만큼 자신 있어하는 사람을 만나기는 쉽지 않다. 그러다 보니 이 주제를 드릴 때는 원성을 들을 각오를 해야 한다. 그때 하나의 팁을 준다면 타인의 시선에서는 나의 어떤 모습을 칭찬하고 있는지 들어보라고 권면했다.


'그럼 나도 해보자!'

가족들에게 엄마 칭찬을 써서 가족 톡에 써달라고 했다. 딸, 사위, 아들은 바로 내 칭찬을 써서 올려줬다. 칭찬으로 올라온 글은 오랫동안 굳시멘트 같은 완고함이 따뜻한 태양 아래 아이스크림처럼 녹아내렸다. 입꼬리가 실룩거리며 히죽 웃음이 나오는 것을 보니 좋은가보다.


딸은 동년배들보다 마음이 젊다고,  젊은 사람들, 자식 또래의 사람들과 자주 만나다 보니 내 친구들 엄마보다 생각이 깨어있는 것 같다고 칭찬했다. 그리고 최선을 다하고 성실하다고 칭찬하면서 한마디 덧붙였다. 체력이나 컨디션을 넘어서 욕심을 부릴 때도 있다고. 그러나 대충 하지 않고 매사에 최선을 다하는 열정이 있다고 칭찬해줬다. 사위는 처음 만났을 때부터 마음이 따뜻한 분이라는 걸 느꼈다고, 사람들을 대할 때도 진심을 다한다고 칭찬했다. 그리고 책임감과 성실함을 빼놓고는 엄마를 설명할 수 없다고 칭찬하면서 많이 배우는 부분이라고 칭찬해줬다. 숫기 없고 마음 표현 잘 안 하는 아들이 칭찬한 내용이 뭉클하게 했다. 누나와 형이 얘기하지 않은 것을 하겠다며 고민하더니 짧고 묵직한 칭찬을 해줬다. 언제나 차분히 기를 들어주시고 대화해주시고, 상냥함과 엄격함을 둘 다 가지고 계시며, 사교성이 좋다고 톡을 보내줬다.


가족들이 동일하게 칭찬한 것 중 하나는 음식에 대한 것이다. 그동안 내가 해준 음식을 먹고 자라서 그런지 내가 해주는 음식은 뭐든 다 맛있게 먹어준다. 요즘은 다양한 음식을 접할 수 있는 시대이기에 딸은 객관적으로 대충 하는 것 같은데 맛있다는 표현을 썼고. 사위는 결혼을 잘했다는 생각이 들 때가 내가 해준 음식을 먹을 때라고 했다. 나중에 내가 없는 세상에서 우리 가족이 내가 해준 음식을 그리워하며 떠올릴 단서를 남긴 것 같아 묘한 뿌듯함이 남았다.

 

칭찬은 역시 고래도 춤추게 한다고 하더니 마음속에서 댄스본능이 꿈틀거린다. 몽글몽글, 살랑살랑, 보들거린다. 내 마음이. 남에게 듣는 칭찬보다 가까운 가족에게 듣는 칭찬이 이렇게 큰 힘이 나는지 몰랐다. 익숙하고 당연한 사람에게서 새삼스레 듣는 말이 이렇게 힘이 나다니. 적어도 내 가족에게 내가 소중한 존재라는 것을 확인한 느낌이다. 누군가에게 필요한 사람, 존재감이  의미를 담게 하고, 살아갈 동력이 된다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닫는다.

 

범위를 넓혀서 그동안 다른 사람들이 나를 칭찬할 때를 떠올려봤다. 가장 많이 듣는 말은 부드러운 카리스마가 있다는 말이다. 사람들을 만나면서 대화를 하다 보면 “옥미님은 부드러운 카리스마가 있어요”라는 똑같은 단어를 듣게 된다. 내 입으로 한 번도 내뱉지 않았던 표현이 전혀 다른 사람들이, 오랜 시간에 걸쳐 똑같은 단어로 말할 때 신기하기까지 했다. 내가 카리스마가 있구나.. 다행인 건 부드러운이라는 수식어가 있다는 것이다. 카리스마가 있다는 생각도 해보지 않았고 더욱이 부드럽다는 것이 나에게 가당치 않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다양한 사람들에게 동일한 단어로 듣는 나에 대한 표현을 믿어보기로 했다. 난 카리스마가 있고 거기에 부드러움을 얹은 사람이다.


부드러운이란 말과 연관된 칭찬이 문블리란 별명이 있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러블리라는 단어는 나와 전혀 상관없는 말이었다. 어울리지도 않다고 생각했다. 언제나 바쁘고 버겁고 일에 치여 살아온 나에게 언제부턴가 청년들 입에서 문블리라고 불렸다. 내 안에 러블리 한 구석이 요만큼이라고 있나? 내 남편이 들으면 자다가도 코웃음을 치지 않을까? 러블리한 사람이 되고 싶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을까. 사랑스러운 사람, 바라보기만 해도 행복하지 않은가? 그러나 나를 바라만 봐도 사랑스러워서 행복해한다고. 말도 안 된다.. 아차!! 칭찬하는 글이다. 그래 그렇다고 치자. 난 러블리한 귀여운 갱년기 아줌마다.


내가 스스로 만든 닉네임이 있다. 꿈꾸는 문목. 뭐든 꿈꾸고 시도하고 부딪혀 보는 사람. 실제로 그렇게 살고 있다. 이제 꿈틀거리는 열정을 다스리고 다독이고 누르기까지 한다. 점점 한계를 느끼는 나이와 체력, 상황 등이 더 이상 일을 벌이지 말라고 강력하게 말한다. 지금까지도 열심히 살았으니 좀 여유 있게 살아도 된다고 스스로에게 세뇌시키고 있다. 꿈을 꾼다는 것은 좋은 일이다. 아무 꿈을 꾸지 않는 것보다는.. 그렇지만 그 꿈을 이루기 위해 다른 사람들을 힘들게 한다면 접을 줄 알아야 한다. 지금 난 많은 것을 시작하지 않고 스스로 접고 있다. 내려놓고 접을 수 있는 마음을 칭찬해주고 싶다. 불끈불끈 올라오는 그 열정이 다 옳은 것이 아니기에 한걸음 뒤로 물러나 여러모로 형편을 살필 수 있는 음의 여유칭찬하고 싶다.


정말 진심으로 날 칭찬하고 싶은 것이 있다. 책방을 열고 글쓰기 모임을 시작한 것이다. 글쓰기 모임에서 받는 피드백은 광대 승천하게 하고 설렘으로 가득 차게 한다. 다음 모임이 기다려지는 것을 보면 일이 아니라 숨통이 되는 시간이 틀림없다. 오죽하면 석 달을 어지럼으로 치료받으며, 누워있어야 하는 상황에서도 글쓰기 모임을 포기하지 않았으니 얼마나 진심인지 스스로 놀란다. 글쓰기 나에게 구원이 되었다. 분명 나와 같은 경험을 할 사람이 있을 거라 생각했다. 내가 생각한 것보다 훨씬 깊은 회복과 건강하게 살아 낼 동기를 부여받았다.


그렇다. 나에게 관대해질 필요가 있다. 모든 원인을 나에게 돌리는 습관을 조금씩 버려보자. 하루에 한 번씩이라도 다정한 관대함으로 토닥이고 격려해보자.


어색하고 오글거리는 것을 극복해내며 이 글을 쓰기까지 7개월이 걸렸다. 그래도 퇴고는 했다. 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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