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은 반갑지 않아.
#연말이다가왔다.
벌써 캐롤이 길거리에 들리기 시작한다.
올해도 왠지 옆구리가 시리다.
생일이 연말이라, 괜히 이 맘 때가 되면 한 해를 돌아보게 된다.
'20대의 마지막 생일을 축하해'라는 멘트가 썩 달갑지 않다.
어라... 올해가 끝나면 나 서른이구나. 왜 벌써 20대가 끝나... 나 이제 30대가 되는 거야?
30살이 되던 형 누나들을 너무 놀렸나 보다. 업보가 두렵다
약간의 서운함과 아쉬움이 든다.
어릴 때부터 30대가 된다는 것은 진짜 어른이 되는 나이 같았거든.
그래서 10대에서 20대가 되는 것보다 훨씬 멀게 느껴졌는지 모르겠다.
그렇게 오지 않을 것 같던, 서른이 눈앞에 덜컥 다가왔다.
#나에게20대란
가장 힘든 시기였지만, 소박하게 찬란했고, 따스했다.
끝이 없는 어두운 터널을 열심히도 헤맸다.
가진 것도, 이룬 것도 없던, 압박만이 가득했던 시간을 잘 버텨온 스스로에게 한 번쯤은 박수를 보내고 싶다.
누구에게나 그렇겠지만, 나 역시 20대의 시간은 다이나믹하게 기억될 것이다.
20대 초반의 힘든 환경과 달리, 이제는 어느 정도 안정궤도에 안착한 느낌이다.
많지는 않지만 내 한 몸 건사할 정도의 돈을 벌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
안정적인 이 느낌을 얼마나 간절히 바랬는지 모른다.
나는 '안정적' 이란 워딩이 참 좋다.
#좋은사람
항상 누군가에게 좋은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었다.
좋은 사람 강박증이 꽤 오랜시간 나를 구속했던 것 같다.
왜 항상 좋은 사람이고 싶었을까.
좀 더 내려놓고 살아도 좋았을 것을.
그 덕인지는 몰라도 여느 때보다 주변에 좋은 사람들이 많이 생겼다.
나의 다사다난했던 20대를 지탱해준 사람들에게 감사한 마음을 전하고 싶다.
#20대는처음이라.
첫 재수
첫 대학생활
첫 아르바이트
첫 해외여행
첫 연애
첫 입사
첫 퇴사
첫 월급
첫 대출
여행을 위해 인생 처음 목표를 가지고 하루 세탕씩 뛰던 알바,
삼시 세 끼를 라면으로 때워야 했던 배고팠던 그 시절,
햇빛 한 줌 들지 않던 고시원 쪽방 살이,
설렘 가득했던 런던행 비행기에서 처음 타국에 발을 디딘 그 순간,
첫 월급을 받고 엄마에게 용돈을 드린 그 날.
절대 잊지 못할거야.
수많은 처음이 존재했던, 그래서 참 많이도 서툴렀던 20대의 나.
앞으로도 수많은 처음이 있겠지만, 다양한 처음들을 겪었으니 이젠 헤매지 않기를.
#그래도치열했어
10대 때 스스로에게 굉장히 관대했다.
수많은 자기 합리화들로 좋은 성적을 내지 못했다. 그래서 20대가 좀 더 혼란스러웠나 보다.
그래도 20대는 그 누구도 나에게 잔소리할 수 없을 정도로 치열하게 살았다.
그리고 꽤 좋은 결과들을 얻었다.
나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스스로에게 심어준, 독기 어린 이 시기가 평생 기억에 남기를.
#20대의마무리
조금. 아니 엄청 아쉽다.
올해는 여느 때보다 나의 행복에 집중을 하고 싶었던 시기였기에 하고싶은 일들이 굉장히 많았다.
하지만 역대급 세계적인 질병 덕에 많은 것들을 포기해야만 했다.
코로나가 삶에 이렇게까지 영향을 끼칠줄이야...
계획하던 20대의 마지막 파티.
좋아하는 지인들을 한자리에 불러 대접하고, 나와 친한 사람들이 서로 유대감을 형성했으면 좋겠다는 개인적인 생각으로 기획해오던 그 파티를 열지 못한 것은 두고두고 아쉬움으로 남을 것이다.
2020년.
많은 사람들에게 최악의 해로 기억되겠지.
방콕이 일상화가 된, 삼삼오오 모여 수다떠는 일이 아득한 옛날같이 느껴지게 돼버린 한순간의 변화가 너무나 야속한 해였다.
#30대도처음이라.
그냥 물리적인 시간에 흐름에 따른 한 살을 더 먹는 것뿐이지만,
30대가 가지고 있는 상징성이 굉장히 무겁게 다가온다.
그리고 20대가 가졌던 상징성을 내려놓는 과정도 어색하다.
‘아무래도 괜찮아’ 하며 꽉 잡아주던 안전벨트가 없어진 느낌이다.
물론, 당장 며칠 뒤 내가 30대가 됐다고 드라마틱하게 삶이 달라지진 않을 것이다.
다만 조금 더 행복한 내일이 되기를 바라며.
#안녕,고마웠어20대
#잘부탁해30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