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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품하는 고양이 Jul 18. 2020

분리수거에 반대하며

아침에 엄마랑 싸웠다. 분리수거를 똑바로 해야 한다는 이유로 종이 박스에서 겹겹이 싸인 테이프를 일일이 떼어내다가 참을성이 바닥난 까닭이었다.


한국의 분리수거율은 전 세계에서 최상위권이다. 선진적인 국민성, 환경 보전에 대한 의지 등에서 이유를 찾을 수도 있겠지만, 그보다는 쓰레기 매립지로 사용할 토지가 없는 까닭이 제일 크다. 실제로 분리수거는 환경에 크게 이롭다고도 할 수 없는 적자 산업이다. 재작년에 통계청에서 발간한 <폐플라스틱의 발생과 재활용 현황>을 보면, 폐플라스틱은 수거 후 처리를 거쳐서 중국 등의 해외 국가로 수출된다. 연간 재활용품 판매 수입은 약 500억 원, 처리 비용은 약 2000억 원으로 약 1500억 원에 달하는 적자가 발생한다. 최근에 중국이 폐기물 수입 금지 조치로 인해 국내 업체들이 비닐과 플라스틱 수거를 거부한 데에는 이러한 사정이 있다.


그러나 내가 화낸 건 조금 다른 이유에서였다.


한국 사회에는 ‘몸으로 때우면 공짜’라는 인식이 있는 듯하다. 그래서 분리수거 제도를 재고하거나 분리 배출이 편하도록 생산 시설을 교체하는 것이 아니라, 국민들이 자발적으로 ‘양질의 재횔용품’을 만들어 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 최근에 국격을 드높였다고 칭송받는 K-방역도 그 근저에는 제대로 보상을 받지 못한 수많은 의료진, 간호사들의 희생이 있다. 전국 모든 남성들을 강제로 징집하는 군대도 최근에는 월급이 많이 올라갔다고 하지만 여전히 최저 시급에도 미치지 못한다.

 

정부만의 문제는 아니다. ‘재능 기부’라는 명목으로 미대생에게 무료로 벽화를 그려달라거나, 감사 업무를 해 달라거나, 법률 상담을 해달라는 사례는 수도 없다. 많은 경우에는 부탁을 넘어서 요구가 되기도 한다. 주변에 컴퓨터를 잘 아는 친구가 있으면 (터무니없는 금액을 주고) 부품을 사서 컴퓨터를 조립해 달라거나, 유료 프로그램을 알아서 설치해달라고 해서 어이가 없었다는 이야기는 흔하다.


이는 한국 기업 문화의 특징이기도 하다. 정시 출퇴근하고 높은 성과를 내는 것보다 자리를 오래 지키면서 일을 하는 둥 마는 둥 하는 쪽이 더 열심히 한다는 칭찬을 듣는다. 야근은 당연하지만 야근수당은 그렇지 않다. 외국 기업들에서는 야근을 요청하면 ‘정해진 시간 내에 업무를 끝내지 못했다’는 능력 부족의 증거로 받아들여지고, 회사의 컴퓨터/조명 등의 자원을 밤늦게까지 가동하는 데에 추가적인 비용이 든다는 이유로 거부하기도 한다.


한국의 노동 생산성(GDP/노동 시간)은 OECD 최하위이다.


과도한 사교육의 문제도 비슷한 맥락이라고 생각한다. ‘하루 종일 공부를 하는데 뭐라도 되겠지’라는 부모들의 심리는 아이들을 밤늦게까지 학원에서 지내게 만드는 주요 원인이다. 불행히도 이런 생각은 대물림되어 학생 스스로도 공부를 왜, 어떻게 하는지에 대한 고민 없이 단지 많이만 하면 된다고 생각한다. 이들이 자라서 야근을 밥먹듯이 하는 사무직이 되는 이유를 찾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물론 열심히 일하는 게 중요하지 않다는 뜻은 아니다. 1960년대부터 일어난 한국의 기적적인 경제 성장은 새마을 운동으로 대표되는 많은 이들의 피나는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했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다. 하지만 수많은 산유국들이 원유를 소중히 여기지 않아서 몰락했듯이, 한국 역시 인적 자원을 소중히 여기지 않으면 조만간 그 대가를 치르게 될지 모른다. 청년층이 한국 사회에 염증을 느끼는 가장 큰 이유가 이러한 노동 경시에 대한 환멸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출처: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4/02/14/2014021402876.html?Dep0=twitter&d=2014021402876

http://news.kmib.co.kr/article/view.asp?arcid=0010545270&code=61121111&sid1=soc

https://www.google.co.kr/url?sa=t&rct=j&q=&esrc=s&source=web&cd=&cad=rja&uact=8&ved=2ahUKEwjV0NWJ6tbqAhWOad4KHbdsA9IQFjABegQIAxAB&url=http%3A%2F%2Fkostat.go.kr%2Fsri%2Fsrikor%2Fsrikor_pbl%2F3%2Findex.board%3Fbmode%3Ddownload%26aSeq%3D372042%26sort%3D1&usg=AOvVaw1DrPycojzZuMG_VlYHEDT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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