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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랑쥐 Jan 03. 2022

[아내의 글]비가 내리면 비를 맞자

함께 당장 해보고 싶은 일

intro

함께 당장 해보고 싶은 일

둘이서 함께 당장이라도 해보고 싶은 거 있어?

머릿속으로 생각만 해오던 일

아님 할 수 있는데 막연하게 미뤄뒀던 일

꼭 함께 해보고 싶은 것!!


아무거나 좋아.

함께 하고 싶은 소소한 일상을 공유해보자


[아내의 글]비가 내리면 비를 맞자


지금 당장이라도 함께 하고 싶은 거?

늘 꿈꿔오던 게 있긴 했다. 그러려면 비가 와야 하는데..

"응? 웬 비야? 설마 비 맞고 그런 거?"

"엉 그런 거! 맞아 하하"


레이첼 맥 아담스가 나오는 영화 <어바웃 타임 About Time, 2013>에서 결혼식을 하는 날, 비를 맞으면서도 행복해하는 두 사람의 표정이 담긴 영화 포스터는 꽤나 인상 깊었다.

우산이 없어도 행복해 할 수 있는 상대가 생기면 ‘나도 꼭 같이 비를 맞으며 춤추듯 걸어봐야지’라고 생각했다. 내가 꿈꿔 본 가장 로맨틱한 장면이었다.


지난 여름은 유독 비가 많이 내렸다.

온난화로 이상 기후 현상이 생기면서 다른 해 보다 내리는 비의 횟수가 잦았다.

그리고 비가 한번 내리기 시작하며 하늘에 구멍이라도 뚫린 마냥 폭우가 쏟아졌다.


그럴 때마다 당장이라도 뛰쳐나가 우산 없이 거리를 활보하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매일 출근하는 직장인이라, 비를 맞으면 중간에 씻고 말려야 하는 현실적 제약으로 당장 내리는 비를 맞고 싶었지만 매번 상상에 그치곤 했다.


직장생활에 길들여지고 나서부터였을까.

공동체 문화가 점점 익숙해지면서 나는 남들의 시선을 꽤나 의식하는 사람이 되어갔다.

‘이렇게 해야 상대가 더 좋아하겠지?', '하고 싶지만 이건 참을래'라며 누가 뭐라 하는 것도 아닌데 늘어나는 회사 연차만큼 느끼는 눈칫밥도 커졌다.

하고는 싶지만 스스로 금기시하는 행동과 감정이 늘어가는 걸 느끼면서 갈수록 일탈은 상상 속으로만 꿈꿨다.


그러던 중 여름휴가로 남편과 제주도 여행을 떠났다.

그리고 그곳에서 더없이 좋은 기회를 만났다.

태풍과 가을 장맛비였다.

남들은 휴가에 비를 만났다며 안타까워 했겠지만 난 내심 기쁜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

휴가 이틀째 되던 날 태풍이 지나간 뒤에도 폭우가 내렸다.


나는 아침부터 비자림 숲을 가야 한다며 남편을 조르기 시작했다.

도착한 뒤 숲 속으로 걸어 들어갈 땐 비가 조금 그친 뒤였다.


둘이서 우산 하나를 들고 500년 이상 된 비자나무 숲길을 걸어 들어가니, 비가 내린 뒤 숲에서 피톤치드가 뿜어져 나와 공기가 정말 상쾌하고 머리가 맑아졌다. 그리고 나무와 돌이끼들이 뒤엉켜 마치 영화 <아바타>의 한 장면처럼 숲 속이 더욱 신비롭게 느껴졌다.


비자림 숲에서 가장 유명한 새천년 비자나무를 돌고 있을 때쯤 잠시 멎었던 비가 다시 쏟아지기 시작했다.

신기하게도 숲 속에 있을 땐 빼곡한 비자나무 잎들이 우산이 돼 적당히 비를 피할 수 있었다.


하지만 숲길을 나와 매표소까지 가는 길에선 억쑤로 퍼붓는 비와 강풍에 온몸은 순식간에 흠뻑 젖었고 우산을 쓰는 건 의미가 없어졌다.

늘 꿈꾸던 일탈을 시도할 기회를 맞이한 순간이었다.




“여보, 우산 좀 접어봐.”

비에 몸을 맡겼다.

비가 바닥과 나무와 내 머리를 때리는 소리가 내 귀, 그리고 온몸에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질퍽한 흙길 위를 걷는데 왠지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남편도 옆에서 함께 내리는 비를 맞으며 천천히 걸어갔다


둘이서 뭐가 그렇게 신났는지 어린아이 마냥 낄낄깔깔 거리며 숲길을 걷는데, 어느 누구의 시선도 아랑곳하지 않고 오롯이 둘이서 걷는 순간, 무한한 자유로움을 느꼈다.


살면서 비 한번 제대로 맞아 보는 일이 뭐가 어려웠을까?

대단한 일도 아닌데. 막상 맞고 나니 계속 웃음이 났다.

편견과 시선의 울타리를 한번 깨는  나한테는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었나 보다.


장대비를 맞으면서도 함께 웃어줄  있는 사람과 손잡고 타인의 시선과 금기를 뛰어넘어본 황홀한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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