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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저는 인복 많은 섬의사 입니다.

섬에 들어온지도 어느덧 3주가 지났다.

육지와 달리 섬은 적응기간도 많이 필요했다.

육지와 다른 생활환경과 고립된 상황에서 좀처럼 잘 지내기가 힘들었다.


한때는 섬에 대한 환상도 있었다.

바다로 둘러싸인 섬에서 유유자적하며 낚시도 하며 물고기도 잡고 섬사람들이 나눠주는 해산물을 먹을 줄 알았다.


그러나 깨달았다.

그런 곳은 한이틀 여행이면 족하다.

도시에서만 살아온 내게 섬에서의 삶은 매우 힘들었다.




#1. 내 별명은 인복 많은 선생님입니다.


오늘까지 닥터헬기를 네번이나 띄웠다. 

3주차니까 5일마다 한명씩 보낸셈이다.


응급환자는 꼭 근무 끝날 때쯤이나 자려고 하면 나타난다.

덕분에 밥도 못 먹고 뒤처리하다가 날밤을 새곤 했다.


잠시 환자가 뜸한 시간

간호사가 내게 말한다.


"선생님은 유독 힘든 환자들이 많은것 같아요"

"아휴 저도 모르겠어요 왜이럴까요....?"


작년에도 한 의사가 유독 위독한 환자를 많이 봤다며 그분의 바통을 받은것 같다며 웃는다.


"ㅎㅎㅎㅎㅎㅎ후 웃지 마세요. 이런 환자들 오면 가슴이 철렁한다고요"




#2. 두번째 닥터헬기 이야기


노인정에서 놀던 할머니가 갑자기 마비증세로 들어왔다. 

나는 밖으로 나가야 한다고 말했으나 환자는 내일 병원 예약이 있으니 내일 가겠다고 했다.

동행한 아들도 내일 가면 된다며 고집을 부렸다.

섬에는 편하게 헬기까지 태워 병원에 보내주겠다는데 귀찮음을 핑계로 가지 않으려는 사람들이 있다.

의사인 내 판단에 의하면 중증질환일수 있어 죽을 수도 있다고 다시 경고하니 그제야 못 이기듯 헬기에 탔다.


그러나 헬기를 타고 가서도 제대로 진료도 안 받고 돌아왔다.

걷기라도 하던 그분은 결국 경색이 심하게 와 오늘 중환자실로 다시 후송됐다.


아들의 행동도 이해 가지 않았다. 어머니가 죽기를 바라지 않고서야 어떻게 저럴수 있었는지...


아직은 초반이라 의욕적으로 일하고 있지만 

굳이 환자가 원하는대로 하지 않아 욕먹으며 스트레스를 받아야 하나 하는 회의감도 든다.




#3. 세번째 닥터헬기 이야기



12시가 되자마자 갑자기 한 남자가 가슴을 움켜쥐고 들어왔다.

혈압을 재보니 230/180. 재측정에도 220/180이 나왔다.

들어올 때부터 대동맥 박리 ( 심장에서 나가는 혈관으로 이곳이 찢어지는 질병을 말하며 조절되지 않는 고혈압이 가장 큰 위험 요소이다)를 의심하여 닥터헬기 호출을 요청해놓은 상태였다.

아 그런데 환자는 또 고집을 부린다.

본인은 혈압만 높으니 진통제를 먹고 내일 나가겠다고 한다.


이곳은 섬이라서 그런지 환자들이 웬만해서 나가려고 하지 않는다. 

이럴땐 내가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환자가 죽을지도 모르지만 환자가 원하는 대로 하게 나둬야하는걸까? 아니면 욕을 먹어가며 억지로라도 헬기에 태워 보내는 것이 맞는 걸까?

역할의 모호함 속에서 일단은 욕을 먹으며 또 한 번 헬기로 밀어 넣었다.


그러나,

그때 밀어 넣지 않았더라면 그 환자는 헬기 안이 아니라 우리 병원에서 죽었을 것이다.


간담이 서늘하다.





#4. 집에 가고 싶다.


꼬박 10일을 일하고 오프를 얻었다 (주말근무 2일+주말 2일을 붙여 사용하는 것뿐이지만)

오프 첫날 날씨가 흐린게 불안하더니 배가 뜨지 않았다.

다음날도 바람이 세게 불어 집에서 쉬었고 그 다음날엔 바람이 잦아들어 기대했지만 마지막 배까지 취소되었다.

내게 남은 오프는 하루. 하루로 서울까지 다녀올 순 없었다.

섬에 하나뿐인 마트로 향했다. 스트레스를 받으면 나는 마구잡이로 먹곤 했다.

깡깡 얼은 냉동피자와 카스 맥주를 샀다.


피자마저도 말썽이다. 통피자라 직접 잘라야 했다.

서글픈 마음에 피자를 자르다 손가락을 베었다. 아프지 않았다. 그저 서글펐다.

나는 어딘가에 홀린듯 맥주 한 캔을 비웠다. 피자를 먹기도 전에 두번째 카스 맥주를 들었다.

맥주를 마실 때 나는 청량한 목넘김 소리에 위로를 받았다. 

TV에는 유독 슬픈 방송이 많이 나왔고 나의 마지막 오프날도 그렇게 끝나갔다.

나는 또 그렇게 섬에서 2주 근무를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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