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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변민아 Dec 06. 2022

출판사 대표는 사적인 욕망을 푸는 자리가 아니었다

사(私)적인 기획에서 사(社)적인 기획으로

나는 출판편집자로 10년 정도 일하고 창업을 했다. 출판기획자로 활동하기도 했지만 사실 넓은 의미의 편집은 기획도 포함하는 개념이므로, 편집자라고 통칭하겠다(다만, 기획에 특화된 일을 더 많이 했던 건 사실이다).

출판편집자로 3~5년 정도 일하면, 누구나 이런 갈림길에 놓인다.


1. 계속 해야 돼, 말아야 돼? --> 직업을 바꿔야 되나?

2. 출판사를 계속 다녀야 돼, 말아야 돼? --> 퇴사하고 프리랜서로 일할까?

3. 언제까지 회사에 맞추고 살아야 돼, 내가 만들고 싶은 책 만들면서 살 수는 없나? --> 출판사 창업을 할까?


이 일을 천직으로 믿고 뛰어든 내게 1번은 없는 일인 줄 알았는데, 오히려 프리랜서로 일하고 창업을 한 후에 이 고민에 대해서 그 어느 때보다 진심이었다. 일을 계속 진행하면서도 끊임없이 한눈을 파는 것이다. 괜히 자격증에 눈이 돌아가고, 출판계는 디스토피아니까 도망가야 한다는 신념을 시작으로 내 진로가 어디서부터 잘못되었는가를 따지고, 내가 왜 출판계에 들어가서 이 모양이 됐는가를 생각하고 하다 보면 어느새 사이버대학교도 물색하고 있고, 대학원도 찾아보고 있고, 자격증도 찾고, 채용 사이트, 알바 사이트 등등 별거 다 뒤지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물론, 직업을 바꾸는 건 개인의 자유다. 그게 맞을 수도 있고. 그런데 문제는 이 시작이 그저 현실을 도피하기 위한 욕망이라는 것이기에 진지하게 전업에 대해 고민해서 생긴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어쨌든, 1번은 현실 도피 욕구가 폭발할 때마다 일어나는 흔한 일이었다. 그렇다면 2번은? 나는 이미 2번을 2016년 3월에 실행했다. 정확히 2월까지 회사를 다니고 나왔으니까. 이직은 아예 옵션에도 없었고 그냥 프리랜서로 먹고살아보려고 나왔다. 사실 최종 목표는 창업이었지만, 회사 밖 세상에 대해 좀 더 알고 창업을 하는 게 맞다고 생각했다. 프리랜서로도 먹고살지 못하면 내 생에 창업은 그냥 없는 거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즉, 나는 프리랜서로 반드시 자립을 해야만 했다. 창업으로 넘어가고 싶었으니까. 그리고 그때부터 또 비극은 시작된다. 무엇이든 '이거 아니면 안 돼'와 같은 집착과 강박이 따라붙기 시작하면 조급해지고 성질부터 나빠지기 시작한다. 성질이 나빠지면 당연히 건강도 나빠지고 주변에 이상한 사람도 꼬인다. 당시 나는 사실 탓할 일이 참 많았다. 실제로 개인적으로 너무 안 좋은 일도 많았고 결혼생활도 힘들었으며 내 꿈도 아직 못 이뤘으면서 남편의 꿈을 이뤄주겠다는 (지금 생각하면 그것부터 잘못됨) 생각으로 꽤 오랜 시간 남편 유학을 위해 뒷바라지를 하기도 했다. 회사에서 버는 것 이상으로 버는 해도 있었지만 정신적 건강, 육체적 건강 다 깎아먹고 살던 시기다. 그리고 거의 잠자는 시간 외에는 일만 하는 일봇이었다. 다시는 돌아가고 싶지 않은 시간들이다.지금은 알고 있다. 다 내가 만든 지옥이라는 걸.


아무튼! 프리랜서라는 말이 멋있어서 좀 있어 보이는데 정확한 개념은 외주자였다. 조금 다른 개념이긴 하지만, 암튼 꾸역꾸역 나는 프리랜서라고 말하고 다닌 건 외주자란 말이 그냥 싫어서. '내부자' 그만하려고 회사 나왔는데, '외주자'가 되니 찬밥 신세다. 그래서 타이틀은 외주자인데, 거의 내부 인력이 할 법한 일들만 골라 했다. 한마디로 일이 빡셌다는 이야기다. 기획에 관여하고 싶은 욕심 때문이었다. 기획자로 자립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기획 인세와 편집비를 같이 받는 사람이 되고 싶었으니까. 어느 정도는 소망을 이루었으나, 사실 삶의 만족도, 일에 대한 만족도는 최하였다.


그러다가 나 혼자 하기는 어려운 일이 의뢰가 들어와 그때 딱 이런 생각을 했다.


'창업으로 넘어가기 위한 과도기가 왔구나!'


그래서 친한 편집자들에게 연락해 급히 팀을 꾸려 일을 받았다. 멋진 말로 '팀 빌딩'. 그리고 사실 그 팀이 지금 출판사 에디토리 팀의 모태다. 당시 팀 이름도 에디토리였다. 그들 중 2명이 창립멤버가 되었다.


내가 왜 이런 과정을 쭉 설명하느냐 하면, 바로 이 여정 때문에 창업을 하고 깊은 함정에 빠졌기 때문이다. 프리랜서는 어쨌든 한 개인으로 일한다. 내 이름을 걸고, 내 몸값을 올리는 데 집중한다. 당연히 계약할 때마다 예민해진다. 사실 그때는 오직 나만 생각하기 바빴다. 여러 회사, 여러 사람을 상대하는 것도 피곤했고, 내가 아무리 욕심이 많고 열정이 폭발해 봤자, 외주자는 외주자일 뿐. 점차 '외주자로서 해야 하는 범위'라는 것이 뭔지 알아가기 시작했고, 적당히 끊고 거절하는 방식도 배워갔다. 다 나를 지키기 위한 일이었다.


이렇게 일을 하다 보면 계속 드는 생각이 '내가 만들고 싶은 책을 맘껏 만들고 살고 싶다'는 것이다. 이건 어떤 편집자라도 꿈꾸는 것이고, 이게 감당이 안 될 만큼 커지면 출판사를 차릴 수밖에 없게 된다.


다른 분들은 모르겠지만, 나의 창업은 상당히 감정적으로 시작되었다. 사실 이성이 얼마나 작동을 할 수 있겠는가? 창업이란 걸 해본 적이 없는데, 미지의 세계를 뛰어드는 자가 도대체 얼마나 이성적일 수가 있겠느냐는 말이다. 충분히 감정적이어야만 하고 충동적이어야 하고 꿈에 부풀어 있어야만 가능한 일이다.


나도 그렇게 시작했다. 그래서 에디토리 출판사 대표가 되었을 때 내 마음은, 그냥 프리랜서의 연장선상 같은 느낌이었다. 개인 편집자로 활동하던 나와 출판사 대표, 발행인이 된 나는 구분이 되지 않았다. 1인 출판사는 그 경계를 논하는 것도 어불성설이다. 대표가 다 해야 하니까. 더구나 편집자 출신이 출판사를 한다는 건, 기획 편집은 거의 내가 도맡아 하겠다는 뜻이다. 원래 하던 일이 계속 이어지니 크게 달라진 느낌을 못 받았다. 물론 유통 지옥, 마케팅 지옥, 홍보 지옥을 경험하면서 내가 뭘 하고 있나, 그동안 뭘 했나 현타 '씨게' 오지만 아무튼 하던 일이 계속 이어지니 크게 차이를 못 느낀다.


그러다 보니 에디토리는 이런 곳이 되어버렸다.


"변민아라는 편집자의 개인적 욕망을 풀어헤치는 곳."


이게 아주 큰 착각이자 함정이었다는 걸 이제는 안다. 그런데 이걸 무려 창업하고 3년 차가 되었을 때 깨달았을 만큼 내가 사업에 대해 아무런 개념이 없는 사람이다.


물론, 개인적 욕망을 풀어헤칠 수 있다. 내가 창업자인데 내 욕망이 반영되지 않는다는 것도 말이 안 된다. 문제는, 그러다 보니 자꾸만 '에디토리'라는 회사를 기준으로 생각하는 게 아니라 나를 기준으로 생각한다는 것이다. 회사는 '법인'이라고도 하지 않는가. 물론 개인사업자와 법인은 완전 다르지만, 그런 개념을 떠나서 회사는 그 자체만으로 인격을 갖게 된다. 그리고 그런 마음으로 처음부터 임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적어도 내가 예술을 할 게 아니고, 내가 돈이 남아도는 게 아니라면 정말 회사 하나를 제대로 '낳을' 생각을 해야 한다. 회사는 자식 같은 존재지 내가 아니다. 자식도 처음에는 동일시하게 되고 육아를 하다 보면 엄마의 욕망이 투영될 수도 있지만 그게 가장 경계해야 할 일 중 하나 아닌가. 마찬가지다. 아무리 1인 출판이고, 소규모의 회사라도 대표가 회사와 나를 동일시하게 되면 그때부터 아주 큰 문제가 생긴다.


에디토리는 그래서 변민아가 되어버린 것이다. 그러니 기획의 연결성 등을 생각하지 못한다. 기획과 기획 간의 연결성도 있지만, 결국 내 욕망에 빠지면 세상을 잘 읽어내지 못한다. 그때그때 내가 욕망하는 것들을 만들기에 급급해지는 것이다. 창업을 하고 극심한 우울증을 겪어야 했기에 심리 책이 만들어졌고, 한때 벨기에에 여행 갔을 때 서점에서 꽂힌 책을 잊지 못해 계약을 한다. 그냥 스토리만 들으면 그럴싸하고 멋질지 모르지만, 지난 글에서도 말했듯 멋이 아니라 맥을 봐야 한다. 왜냐하면 사업은 '수익을 창출하는' 일이니까. 그렇게 함부로 접근할 문제가 아닌 것이다.


이렇게 되면 내 기분과 상황이 기획에 계속 반영이 되어버리고 에디토리라는 브랜드는 저 멀리 사라진다. 가장 이상적인 것은 내가 무슨 일이 있어도 회사가 돌아갈 수 있을 만큼 시스템을 만드는 건데, 사실 1인출판사를 계속 운영하는 사람에게 쉬운 일은 아니다. 그래도 적어도, 그런 목표 의식이 있어야만 에디토리가 에디토리라는 인격을 갖고, 이 브랜드만의 고유성을 가지고 독립해서 나아갈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지금까지 10종의 책을 냈지만, 그 10종을 봐도 도대체 이 출판사가 뭐하는 출판사인지 감이 안 오는 게 당연하다. 나는 사(私)적인 기획만을 했지, 사(社)적인 기획은 생각하지 않았다. 이건 기획뿐 아니라, 모든 영역에서 마찬가지였다. 이 오류를 드디어 깨달았기에 나는 이제야 에디토리라는 브랜드에 대해 고민을 시작했다. 물론 아직 진행형인 원고들도 있고 내년까지는 아이템이 대기가 되어 있기에 과도기는 있겠지만, 확실한 건 이제는 무엇에 집중해야 하고 무엇을 버려야 하는지 전보다는 명확히 보인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래야만 사업이 돌아간다는 것도 처절하게 깨닫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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