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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변민아 Dec 13. 2022

창업 초기, 도움 청하기에 익숙해져야 할 때

대출만 느는 게 아니라 마음의 빚도 는다

일을 하면서 이 두 가지를 잘하는 것도 능력임을 깨달을 때가 많다.


- 거절

- 요청


이 두 가지를 잘한다는 것은 여러 가지 의미가 있다.

첫째, 특정 일에 대한 내 역량 견적을 잘 낼 줄 안다. 어떤 일을 받았을 때 이 일을 내가 얼마 동안 어떻게 하면 데드라인을 지킬 수 있는지를 바로 감을 잡는 능력인데, 이 감이 없으면 정말 낭패를 볼 수가 있다. 일을 무작정 받고 나서 고민에 빠지다가 결국 마감을 지키지 못하는 케이스를 종종 보았는데, 그 사람한테 왜 그랬냐고 하면 항상 그 시기에 어떤 사건이 있다(사건 없는 사람이 있을까). 또, 자신을 기계라고 착각한다. 예를 들어 100쪽짜리 글을 10일 안에 써야 하면 하루에 10쪽을 쓴다고 계획하는 것이다. 다른 변수를 생각하지 않고 무작정 이렇게 기계적으로 일정을 짜놓는다는 것 자체가 현실적인 감이 없다는 뜻이다. 그리고 일을 제대로 해봤다면 결코 그런 식으로 돌아가지 않는다는 걸 알 수밖에 없다. 일에도 기승전결이 있기 때문에. 일이라는 게 처음에는 워밍업 단계가 필요하고 그다음에는 몰입을 하면서 폭발적으로 더 많은 일을 처리하게 되니까. 그렇게 퍼포먼스가 좋아지는 것이니까.  

둘째, 문제를 혼자 끌어안지 않고 오픈해서 빠르게 '해결'하는 데 집중한다. 문제가 터졌을 때는 '진단과 해결'이 핵심인데, 대체적으로 저 두 가지를 안 하는 사람들은 회피 성향이 강했던 것 같다. 문제가 터지면 두 가지 양상이 펼쳐진다. 자기가 혼자 다 해결할 수 있을 거라고 막연하게 착각해버리거나 한없이 외면하는 것. 사실 상사나 동료에게 이러이러한 문제가 생겼다고 오픈하는 사람이야말로 진짜 그 일을 어떻게든 시간 안에 잘 완수하려고 하는 사람이다. 이렇게 혼자 다 끌어안고 있다가 결국 주변에서 눈치를 채고 '무슨 문제 있냐'고 할 때 그제야 쭈뼛쭈뼛 얘기하는 사람. 그러다 내가 프로젝트 책임자라 독박 쓴 적이 있는데 정말 돌아버리는 줄...


이외에도 타이밍을 기가 막히게 안다는 것(거절, 요청 모두 타이밍이 잘못되면 실패한다), 처세가 좋다는 것 등등 저 두 가지만 잘해도 소위 일잘러라는 걸 느낄 때가 많다.


한창 '거절'을 배워야 하는 시기가 있었다. 프리랜서 시절. 퇴사 후 프리랜서가 되면 누구나 비슷한 패턴을 겪는 것을 보게 되는데, 처음에는 내게 일을 주는 것만으로도 고맙고 회사 다닐 때보다 시간이 많아졌다고 생각해서 닥치는 대로 일을 받는다. 그러다 과부하가 걸리기 시작하면 그때부터 선택과 집중에 대해서 깊이 생각하게 되고 그때부터 지혜롭게 거절하는 방법에 대해서 연구한다. 처음에는 거절 역시 매우 어려운데, 하다 보면 이것도 요령이 생긴다. 특히 나는 사업으로 넘어가는 과도기에서는 거의 거절 마니아 수준으로 거절을 해야 했다. 일을 더 이상 받을 수가 없었으니까. 처음에는 거절 몇 번 하면 프리랜서 생활에 큰 타격이 있을 거란 두려움 때문에 어려울 수 있는데, 내가 거절하는 이유와 명분이 명확하고 그것이 더 중요한 일을 위한 거절이라면 꼭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말 그대로 더 중요하고 가치 있는 일을 선택하고 집중하는 게 내 커리어의 '질'에도 도움이 되니까. 즉, 양보다 질이 중요해지는 시기에 반드시 필요한 게 거절이다.


출판사 창업을 하기 전에 외주 팀을 꾸려 일을 하고 있는 과도기가 있었는데, 그때가 거절을 잘 못하던 내가 이러다 외주자 블랙리스트에 오르려나 싶을 만큼 거절을 해내던 시기다. 그러다 더 큰 산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창업 초기에 진입하면서부터였다. 거절보다 더 어려운 것을 해내야 하는 시기가 온 것이다.


바로 도움 청하기.


내 성격상 이게 더 힘들었던 것 같다. 회사를 다닐 때와는 차원이 다른 요청이다. 왜냐하면 거의 일방적으로 도움을 받아야 하는 일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창업 전에는 나 역시 도움을 준 분들께 그에 상응하는 도움을 드릴 수 있는 상황이 더 많았다. 이번 프로젝트 때는 도움을 받았지만, 다른 프로젝트 때는 내가 비슷한 도움을 주면 되니까.


그런데 창업 초기는 그렇지 못했다. 내가 그 사람에게 도움을 줄 만한 수준도 안 되고 그럴 일도 없는 상황에서 도움을 청하거나 무언가를 물어봐야 하는 일이 하루에 몇 번씩 생길 때가 있다. 나는 완전한 초짜니까. 그게 너무나 괴로웠다. 처음에는 세금계산서 발행하는 것도 덜덜거리며 해야 하는 수준이라 누구를 챙길 역량도, 여력도 없다. 그냥 막 맨땅에 헤딩을 하기 시작하는데 그런 내가 누군가에게 도움을 줄 입장이 될 수가 없다. 게다가 회사 밖으로 나오면 세계가 확장되면서 나와 비슷한 처지에 있는 사람보다는 다양한 업계에 다양한 포지션의 사람들을 수없이 만나게 된다. 따라서 그들과 나는 애초부터 동등한 입장이기가 어렵고 일대일로 무언가를 주고받을 수 있는 포지션이 아니다.


취준생 시절에 이런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면접관이 미션을 줬는데, 다들 컴퓨터 앞 앉아서 서치하는 동안 누군가는 갑자기 핸드폰을 찾는다고. 그러고 전화를 건다.


"아, 선배님~ 이러이러한 문제가 있는데 어떻게 해결하는 게 좋을까요?"


남들은 2시간 걸리는 문제를 2분 만에 풀어낸다. 이 에피소드가 사업을 시작할 때만큼은 너어어어무나도 공감이 되었다. 나보다 잘 아는 사람, 전문가, 선배에게 조언을 구하는 것. 그것만큼 현실밀착형 양질의 해결책이 없다. 사업을 시작하면 처음에는 다 급박하게 돌아갈 수밖에 없다. 할 게 한두 가지가 아니고 문제는 내가 잘 모르기 때문에 헤매는 시간, 시행착오의 시간이 있어 더 조급해진다.


나는 내가 사업을 하면 더 빠릿빠릿하게 정신 차리고 일을 잘할 줄 알았다. 그런데 웬걸. 이런 멍청이, 똥멍청이가 따로 없다 싶을 만큼 어리바리의 끝판이었다. 심지어 어떤 날은 예기치 못하게 시청에서 3시간을 보내야 하기도 하고, 어떤 날은 원고를 검토하기로 했지만 갑자기 사무실 벽지가 (믿을 수 없겠지만 정말 자기 혼자 찢어짐) 북 찢어져서 그 문제를 임대인과 해결하게 된다던가, 착착 돌아갈 줄 알았다가 인쇄사고가 아주 크게 터져서 하루종일 물류창고에 가서 스티커 작업을 하고, 로그인하려고 했더니 무슨 인증이 필요하다고 해서 그거 하다가 날샌 적도 있고... 이게 프리랜서 때도 비슷한 일들을 겪는데 강도가 훨씬 세다.


그래서 내게는 리스트가 하나 더 생겼다.


<귀인 리스트>


정말 너무 많은 분들의 도움을 받아야만 했다. 이렇게까지 도움을 받아도 되나 싶을 정도로. 그리고 저분은 왜 이렇게까지 도와주는 걸까 싶을 때도 많았다. 그런데 그 내막을 잘 살피면 그분도 비슷한 처지인 적이 있어서 내 마음을 잘 이해하고 있거나 그저 내가 잘되었으면 하는 순수한 마음, 응원하는 마음으로 그렇게 도움을 주는 경우도 있었다. 결국 내가 잘되는 것이 보답하는 길이었다. 더 중요한 건 나 또한 그들과 마찬가지로 나중에 나와 비슷한 후배나 동료가 생겼을 때 그들에게 도움이 되어주는 것. 내리사랑은 이렇게 시작되는 것이다.


그러면서 회사를 다닐 때 팀원들, 함께 일을 하는 동료들과 친분을 쌓는 것도 중요하지만 사업을 할 생각이 있다면 다른 부서의 사람들에 대해서도 관심을 갖고 감사를 표했어야 한다는 것을 뼈저리게 깨달았다.


출판사 창업을 해본 사람이 아니고서야 창업을 할 때는 누구나 그게 첫 경험이고 초심자다. 내가 아무리 10년 경력을 쌓았어도 그 업에 대해서 완전히 이해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나 역시 편집자였기 때문에 아무리 편집자가 전체 출판 프로세스를 총괄하는 역할을 한다 쳐도, 모든 실무를 다 경험하는 건 아니다. 마케팅에 관여는 하지만 그걸 실행하는 건 마케터고, 영업 현장에 쫓아갈 때도 있지만 영업 플로우를 절대 이해하지 못한다. 그런데 1인출판사를 차리면 이 모든 게 다 내 일이 된다. 내가 깊이 몰랐던 것, 현장에 대해 아예 몰랐던 것, 실무를 하나하나 다 파악해나가야 한다.


출판사에 다닐 때 내가 출고 업무를 한 적은 없다. 회사에 택배 기사님이 오셨기 때문에 그냥 택배 포장을 해서 문 앞에 두면 그만이었다. 물류 창고를 내가 계약한 것도 아니었고, 회사에는 자체 계약서가 있어 내가 계약서를 만들 일도 없었다. 명함도 마찬가지다. 그냥 회사에서 주는 걸 받아 썼지, 내가 명함을 만들어본 적이 없으니 명함 레이아웃 결정도 내가 해야 한다. 총판 계약을 해본 적이 없으니 도대체 미팅을 가도 내가 무엇을 얘기해야 하고 무엇을 지켜야 하고 어떤 스탠스를 취해야 하는지를 모른다. '세금'은 여전히 어려운데, 세무사님을 만나도 첫 미팅 때 뭘 이야기해야 하는지도 잘 모른다. 진짜 내가 이렇게까지 뭘 몰랐나 싶을 일이 계속 터진다. 그래서 그냥 내가 똥멍청이라고 인정을 해버렸다. 멍청이니까 혼쭐 나며 배워야 하는 거구나. 경력 10년이고 뭐고 이렇게 깨지면서 다시 배워나가야 하는 시기임을 인정하고 더 적극적으로 찾고 물어보고 도움을 청하는 일이 많아졌다.


물론 도움을 청하지 않고 내가 그냥 부딪히면서 할 수도 있지만 이왕이면 그 일을 잘 아는 사람에게 속성으로 배우고 시작하는 게 맞다. 앞에서도 말했듯이 시행착오를 한다는 건 어떤 식으로든 비용이 낭비된다는 뜻이기에, 시행착오를 줄이는 것도 내 몫이다.


그래서 내게는 귀인이 많다. 그때그때 적절한 도움을 주신 분들 덕분에 블랙박스 같은 일들을 잘 해결할 수 있었고, 지금도 여전히 물어볼 때가 많다. 내가 그분들께 할 수 있는 거라곤 밥을 사거나 선물을 드리는 수준이지만, 그런 분들은 그 선물마저도 부담스러워하신다. 그리고 이제는 내게도 파트너들이 생겼다. 이제는 웬만한 문제에서는 바로바로 연락하고 조언을 구할 수 있는 전문가들이 있기 때문에, 처음보다는 훨씬 더 상황이 나아진 것도 맞고 여유를 찾은 것도 맞다. 이게 다 많은 사람들의 헌신과 희생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 마음을 결코 잊고 싶지 않다. 그리고 나도 언젠가 지금의 나와 비슷한 처지에 있는 사람을 도와주는 것이 그분들을 위한 보답이자 도움의 선순환이라 생각한다.


창업을 하면 대출과 빚만 느는 게 아니다. 마음의 빚도 만만치 않게 커진다. 이 빚을 갚는 것도 내가 해야 하는 몫인데, 그러기 위해서라도 내가 이 사업을 잘 이끌어야 하는 것이다. 당연히 도움을 주신 분들은 내가 잘되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도움을 주신 거지, 어차피 망할 텐데란 생각으로 행한 일이 절대 아닐 것이다. 퇴사를 할 때도 회사와 동료들에게 피해를 최대한 주지 않기 위해 많은 걸 살펴야 하는데, 하물며 창업을 하고 폐업을 하는 건 오죽하겠는가. 그만둔다는 것도 절대 쉬운 일이 아니다.


처음에는 그냥 내 사업 하나만 바라보고 시작했지 이런 마음의 빚에 대해서는 잘 모르고 시작했는데, 시간이 흐르고 귀인들이 늘고 파트너들이 들고 고객들이 생기면서 점점 사업이란 게 아무리 작더라도 하나의 세계를 만드는 것이고, 사장은 그 세계 속에 있는 모든 것들을 책임져야 하는 자리임을 깨닫게 된다. 결국 날 일으키는 것은 사람이고, 사랑이다. 내가 혹시 망할지라도 이런 깨달음을 얻었다는 것만으로도, 사업이란 게 내 인생이 정말 가치 있는 일이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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