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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변민아 Jan 03. 2023

1인출판사 사장님들은 각자 필살기가 있다

비용을 통제하는 1차원적이지만 가장 확실한 방법 

어떤 사업을 시작한다고 했을 때, 그 사업이 어떤 수익 구조를 갖고 있느냐를 아는 건 정말 중요한 문제다. 그리고 역시나 나는 이런 거 따위 간과하고 사업을 시작한 사람이다. 물론 출판사를 다녔고 출판계에 10년 정도 있었으니 대략적으로 출판사라는 곳이 어떻게 굴러가는지는 알고는 있었으나, 수익 구조 따위 생각하지 않고 그냥 덤벼든 자의 최후는 내 돈이 어떻게 나가고 어떻게 들어오는지를 전혀 파악을 못하는 채로 사업에 이끌려가는 행태가 된다는 것이다.

수익 구조를 알려면, 한 권의 책이 어떤 과정을 거쳐 출판이 되는지도 알아야 하고 출판사를 운영하는 데 어떤 비용들이 들어가는지도 알아야 한다. '출판 프로세스' 각각의 단계마다 인력이 필요하고 비용이 들기 때문이다.


1인출판을 한다고 하는 분들을 만나본 적이 있는가. 적어도 3년 이상 운영을 했다면 대부분 이런 특징이 있음을 알게 된다.


'1인출판사 사장님들은 각자 필살기가 있구나.'


나는 현재 팀원들도 있지만, 정말 혼자서 출판사를 운영하시는 분들도 있다. 특히 이런 분들을 주목할 필요가 있는데, 대부분 자기만의 필살기가 있고 그 필살기 덕에 비용을 줄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 본인이 전문 번역가 수준의 번역을 할 줄 안다 --> 번역비 절감

- 본인이 편집을 할 줄 안다 --> 편집비 절감

- 본인이 인디자인으로 조판 정도는 가능하다 --> 디자인비 절감

- 본인이 제작 쪽에 일가견이 있다 --> 제작비 절감

- 특정한 유통망을 잡고 있다 --> 영업/마케팅비 절감


이게 말 그대로 '필살기'여야만 한다. 다른 사람을 쓰지 않고 내가 그 부분을 다 충당할 수 있을 정도의 실력이어야만 비용을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나도 이 사실을 몰랐던 건 아닌데, 막상 1인출판사를 운영해보니 왜 1인출판사 사장님들이 어느 날은 번역도 하고 있고 본문 조판도 하고 있고 때로는 표지 디자인까지 하고 계신지를 뼈저리게 알게 되었다. 규모가 작은 만큼 '투자'할 만한 여력이 별로 없기 때문에 결국에는 비용을 줄일 수 있을 만큼 줄이는 게 관건이 된다.

예전에 성공한 사업가분의 인터뷰에서 이 답변이 계속 머릿속에 맴도는 것이다.


"돈 있으면 돈으로 조지면 다 돼요. 마케팅? 디자인? 모르면 돈으로 조지면 되고, 어쨌든 돈을 쓰면 그만큼 퀄리티는 올라갈 수밖에 없지. 근데, 대부분 돈이 없으니까. 돈으로 조질 수가 없으니까 내가 공부하게 되는 거죠. 내가 알아야 남도 잘 시킬 수 있어요. 내가 모르면 뭘 시켜야 하는지도 모르고, 돈을 아껴야 해서 몸값이 적당하거나 초짜와 일을 할 일이 많다 보니 내가 피드백도 줄 일이 많거든요. 창업 초창기에는 그래서 사장이 세무부터 디자인, 마케팅까지 공부를 많이 할 수밖에 없어요."


출판에도 그대로 적용되는 게, '돈으로 조질 수 있다면' 모든 면에서 퀄리티는 올라가기가 쉽다. 디자인만 해도 일정 수준 이상 돈을 쓰면 그만한 퀄리티는 나오기가 쉽다. 그러나 1인출판사 사장은 조금은 구질구질하게 협상을 할 수밖에 없다. 그래도 상대의 몸값이라는 게 있고, 내가 원하는 결과를 얻기 위해서 내가 인풋해야 하는 일정 수준이라는 게 있다. 그렇게 모든 프로세스마다 돈을 투입하다 보면... 이게 책 한 종 만드는 데 생각보다 돈이 꽤 많이 들어간다는 걸 실감하게 된다.

게다가 출판사를 시작할 때는 '책을 만드는 것'에 집착하다 보니 책 제작비를 중심으로 생각하게 되지만, 사무실을 구하는 순간부터는 사무실 월세, 관리비라는 엄청난 고정비 지옥에 빠지게 된다. 처음에는 우리도 중고에 작은 복합기를 썼지만 일을 하면 할수록 복합기의 필요성을 느껴 현재 렌탈 중인데, 이 또한 월 고정비고, 물류창고비도 지속적으로 나간다. 아, 대출 금리도 당연히 올랐다. 정말 올해는 이 모든 비용이 다 올랐다. 거의 모든 비용의 앞자리수가 몇 개월 만에 바뀌는 일이 태반이었다. 책은 드라마틱하게 팔리는 일이 없는데, 비용은 꽤 드라마틱하게 오른다. 이럴 때 정말 멘탈이 와르르 무너질 수밖에 없는데, 멘탈을 부여잡고 내가 어떤 부분을 줄일 수 있고 어떤 부분은 타협이 안 되는지 냉정하게 판단해야 한다.


왜 내가 처음부터 '멋이 아닌 맥이 중요하다'면서 '맥'을 그토록 강조했냐면, 이 비용 문제 때문에 그렇다. 우리 출판사 책이 축적될수록 시너지가 나야만 점차 비용을 줄여가고 파워가 생기기 때문이다. 그래서 기획에도 일관성, 통일성이 필요하다. 기획이 통일된다는 건, 편집, 디자인, 제작, 유통 모든 면에서 일정 부분 일관성이 생긴다는 것을 의미한다.

예를 들어, 모든 책을 그 책마다의 컨셉과 특징과 장점에 맞게 판형, 디자인을 달리하고 마케팅 전략을 다시 짜고, 독자 타깃층도 제각각이라면 당연히 매 책은 제로베이스에서 시작해야만 한다. 그러나 주 독자층이 일관되고, 주제도 일관되고, 디자인에도 어느 정도 통일성이 생긴다면 그만큼 통제가 되는 부분이 많다는 뜻이고 비용을 계속해서 줄일 수 있게 된다.

비용을 줄이고 싶다고 해서 한도 끝도 없이 줄일 수도 없을뿐더러 특히 '인건비'와 관련해서는 당연히 더 조심스럽기 마련이다. 특히 디자인은 책의 판매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요인인데, 디자인비 몇 십만 원 아끼려다가 인재를 잃거나 퀄리티를 잃는 수가 있다. 둘 다 최악이다. 그 사람의 '역량'과 '실력'이 몸값에 그대로 반영되는 번역비나 디자인비는 일종의 투자라고 생각하는 게 낫다. 일을 해보면, 왜 돈을 좀 더 주고 일을 잘하는 사람과 일을 해야 하는지 뼈저리게 알게 된다. 나도 디자인비 조금 아끼려다가 피를 본 적이 있어서 이 부분은 타협하지 않는다. 오히려 돈을 좀 더 쓰는 게 결과적으로는 돈을 아끼는 셈이 된다.

내가 의지를 갖고 비용을 줄이려고 하는 부분은 '사람'과 관련이 없는 부분. 그러니까 사무실 월세 같은 고정비, 제작비와 같은 부분이다. 요즘 고민하는 어떤 시리즈물이 있는데, 과감히 책날개를 없애고 판형도 통일하고 디자인적으로도 통일을 할까 생각 중이다. 그리고 임신 출산 이슈와 더불어 사무실도 완전히 줄여서 이전하기로 했다. 코워킹스페이스로 들어가기로 했는데, 사무실 외에도 쓸 수 있는 인프라가 많아 그것들을 다 활용한다고 생각하면 내게는 득이 되는 곳이다. 그리고 훗날 남편과 출판사를 같이 운영할 생각도 있어 현재 직장을 다니는 남편은 전자책 제작, 인디자인을 배웠고 북페어에도 혼자 영업하러 나간 적도 꽤 있다. 남편의 이런 서포트는 1인출판을 하는 내게 여러모로 큰 힘이 된다.


편집자로 일할 때는 오피셜하게 내가 빛나는 게 매우 중요했다. 더구나 프리랜서 외주자로 일을 해야 할 때는 내 포트폴리오가 몸값과 직결되었기 때문에 소위 교보문고 베스트셀러를 만드는 게 중요했다. 그래서 내가 만든 책, 관여한 책이 4대 서점에 많이 노출되고 판매부수, 판매지수가 높은 게 중요했다. 

그런데 출판사를 운영하는 입장이 되니, 이 또한 굉장히 편협한 세계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가끔 전문 출판인이 아닌데도 나보다 훨씬 책을 더 빨리 만들고, 북토크 모객도 잘하고, 판매도 안정적으로 하시는 분들이 꽤 많다. 편집자로 일할 때는 이런 분들을 주목하지 않았다. 그런데 블로그나 SNS를 운영하며 자신만의 콘텐츠를 판매하여 수익을 올리고 커뮤니티도 만들고 지속적인 소통을 하는 분들을 보면서 내가 너무 작은 세계에 갇혀 살았다는 걸 수없이 느끼게 된다. 

그렇게 만들어진 책들의 디자인은 아무래도 퀄리티가 떨어지기도 하고 때로는 맞춤법도 엉망인 경우도 많다. 전에는 그런 게 다 '잘못되었다'고 생각을 했었지만, 그건 내 리그에서나 잘못된 것이지 그 세계에선 잘못된 게 아니다. 어쨌든 사업은 '지속가능'해야 한다. 1차적으로 돈을 벌지 못하면 그 사업은 끝나는 것이다. 계속해서 안정적으로 수익을 창출할 수 있는 방안들을 계속해서 축적해가야만 하는데, 그러려면 늘 장전되어 있어야 한다. 내 것을 다 잃어가면서 이어갈 수는 없다. 

그래서 월급을 받고 살 때와는 완전히 다른 마인드로 접근해야 한다. 내가 내려놓아야 하는 부분이 무엇인지 확실하게 알고, 그 부분을 내려놓을 줄도 알아야 한다. 내가 월급 받고, 편집비 받고 출판사와 일할 때, 그 출판사의 규모는 지금 에디토리와는 비교도 안 되게 큰 규모다. 그런 출판사에 '핏'하게 만들어진 감각들을 계속 유지하려고 했던 게 내 실패의 큰 요인이었다. 나는 총알이 거의 없는데, 아는 것도 없는데 큰 규모 출판사에게 핏한 감각을 계속 유지하려 한다는 건 그냥 피똥을 싸겠다는 뜻밖에 더 되겠는가. 물론 내가 양보할 수 있는 게 있고, 없는 게 있지만, 양보할 수 있는 것만큼은 꽤 많이 내려놓을 줄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나도 인디자인도 배워가고 있으며, 내가 콘텐츠를 직접 만드는 것도 고려 중이다. 모든 것을 위임하여 돌릴 수 있을 만큼 사업적인 수완이나 역량이 있는 게 아니기에 내가 할 수 있는 수준이란 건 이 정도다. 우선 지난 약 2-3년 동안 얼마나 쓸데없는 비용들을 썼는지를 돌아보고, 어느 부분을 통제해야 할지를 따져보려 한다. 출판사를 운영할수록 삶을 사는 방식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든다. 인생에도 낭비하는 것들이 꼭 생기고, 쓸데없는 에너지를 쓰다가 과부하가 걸리고, 그러다 깨달음이 와서 수정하며 변화해가지 않는가. 결국 자기 인생을 잘 꾸리는 사람이 사업도 잘하는 것 같다. 아무튼, 1인출판사 사장님들 모두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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