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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농호 상하이 May 03. 2023

중국 노동자와 한국 근로자의 눈물 겨운 만날 결심

3년 만에 가족을 만나게 해준 대륙의 노동절(劳动节)은 며칠일까요. 




연휴가 시작되기 전날, 그녀가 도착하던 날의 노을

  

   과분하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환상적인 날씨가 이어지는 노동절 연휴에, 또 과분한 행복과 감사가 상하이 곳곳에 내리고 있다. 이 좋은 계절에 집에만 있게 한 작년(도시봉쇄)이 너무 미안했는지 연일 쾌청한 날씨가 이어진다. 끼워 맞추기다. 그냥 좋아서 하는 행복한 아무 말 대잔치다. 아무렴 어떤가. 행복하면 그만이지. 너무 좋다. 날씨의 영향도 크다. 적당한 빛과 시원한 바람에 아무것도 하지 않고 산책만 해도 행복한 상하이의 노동절 연휴다. 넉넉한 휴일에 마음도 넉넉해진다. 중국에서 노동자(근로자)로 사는 즐거움이다. 노동의 가치를 기리는 연휴가 무려 3일이다. 주말까지 더하면 5일짜리 황금연휴다. 



4월 29일~5월 3일 행사가 이어지는 콜럼비아 서클 Columbia Circle 


  이번 노동절이 더욱 특별한 이유는 좋아하는 사람이 곁에 있기 때문이다. 좋아하는 곳에서 좋아하는 사람과 함께 할 수 있으니 어찌 특별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게다가 그녀는 한국에서 왔다. 역사상 마지막 PCR 검사자라는 훌륭한 기록을 달고 말이다. PCR 검사가 더 이상 필요 없어진 4월 29일부터 5월 1일까지 상하이 입국 외국인만 30만 명이라고 한다. 기다려온 나의 손님은 그 30만 명에 포함되지 못했는데, 입국한 날짜가 4월 28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온전히 기쁜 소식이었을 PCR 검사 폐지 소식이 나에겐 하루를 차이로 너무 안타까운 소식이 되었다. 그렇다고 비행기를 하루 늦추기엔 시간이 금인지라 그렇게 나의 손님은 역사상 마지막 코 찌르기 PCR 검사자가 되었다. 



  공항에 마중 나간 날, 나처럼 가족들을 기다리는 한국 사람들이 참 많았다. 나를 포함해 미어캣처럼 고개를 들고 오매불망 문이 열리길 기다리는 그 모습에 가족대신 바이러스와 함께 한 지난날이 주마등처럼 지나갔다. 그 헤어짐의 시간이 몇 개월부터 몇 년까지 다양할 것인데, 나는 3년 만이었다. 카톡으로 위챗으로 계속 연락을 주고받았던 터라 어제 만난 것처럼 자연스러웠지만, 각자의 시간에서 빚어온 마음의 단단함은 그 깊이가 달라서 새롭고 반가웠다. 72시간 같은 24시간이 며칠 이어졌다. 보여주고 싶은 것은 많고, 함께 가고 싶은 곳은 많고, 같이 먹고 싶은 것은 많은데 시간이 모자랐다. 허기를 느낄 틈 없이 먹고, 마시고, 잠자는 시간 빼고는 계속 움직이며 그렇게 며칠을 달렸다. 이 한국 근로자는 오랜만에 만나는 언니와의 만남을 위해, 오랜만에 갖는 상하이 방문을 위해, 수액까지 맞았단다. 조금 더 좋은 컨디션을 유지하기 위해서 말이다. 영화 <헤어질 결심>에 버금가는 '만날 결심'이다. 


장미가 흐드러지게 핀 상하이의 어느 골목

  그걸 알기라도 하는 듯 상하이 곳곳에서 다채로운 마켓, 축제, 공연, 행사가 이어졌다. 아무 계획 없이 산책만 해도 아름드리 가로수가 만들어주는 그늘과 자유 품은 바람에 정말 멋진 연휴의 순간이 되는데, 발길 닿는 대로 가다 만난 재미있는 행사들이 또 다른 즐거움을 더해주었다. 길마다 잎이 풍성한 가로수가 포근하게 갈 길을 안내해 주고, 시원한 바람이 산책하는 걸음을 감싼다. 딱 적당한 햇볕이 한순간이라도 더 사진으로 담아두려는 우리의 훌륭한 조명이 되어 주었다. 지혜로운 사람들이 상하이 곳곳에 마켓이며 축제며, 여러 행사로 연휴를 풍요롭게 만들고 이것저것 할 일을 많이 만든 덕분에 상하이 방문 N번째인 그녀에게 상하이 필수 코스인 동방명주, 예원, 신티엔디 등의 이미 다녀본 관광코스가 아닌 현지인 코스를 제공할 수 있었다. 현지인답게 우리는 공유 자전거를 타고 광활한 가로수길을 누볐고, 관광객 없는 동네에서 상하이 바이브를 제대로 느꼈다. 그래도 와이탄 야경은 봐야지 싶었는데, 관광객으로 인산인해를 이루는 와이탄 말고, 동방명주와 와이탄을 한눈에 조망하며 산책할 수 있는 베이와이탄으로 갔다. 그동안 열심히 놀고 돌아다닌 시간들이 빛나는 순간이었다. 




상하이에 왔으면 꼭 해야 하는 공유 자전거 타고 가로수길 누비기


강변공원을 산책하다 먹는 라바짜 아이스크림


  대륙의 연휴에 비해 짧은 연휴를 가진 한반도의 근로자는 벌써 한국으로 돌아갔다. 보내는 길이 덜 아쉬웠던 것은 이제 왕래가 언제든 가능하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며칠 간의 꿈을 꾼 것 같았다. 그리고 이 연휴가 아직 하루 더 남았다는 사실에 마음이 참 행복하다. 중국 노동자로 사는 즐거움을 느낀 이번 노동절 연휴는 오래오래 기억하려고 한다. 덧붙여 관광지마다 사람이 바글바글한 사진과 영상을 보니 비로소 상하이가 예전 모습으로 돌아왔음을 느낀다. 欢迎光临(환영합니다) ❤️









*중국에서 일하기 때문에 중국 노동자라고 표현하였으며 중국에서는 노동(劳动)이라는 단어를 한국의 근로(勤勞)와 같게 씁니다. 이 표현이 불편하신 분 없길 바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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