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일 차, 사리아 - 포르토마린 22.2km
8월 27일 일요일
8시에 출발. 오늘 갈 길이 22km밖에 안되므로 마음이 느긋했다. 밤새 비가 왔는지 거리는 촉촉하고, 기온은 살짝 더 내려가 11도를 가리켰다. 이상 기후인지 가을이 오고 있는 건지 가늠이 되지 않았다.
사리아 거리의 아침 분위기는 그동안 보아왔던 까미노 마을의 그것과 무척이나 다르다. 수학여행 날 아침, 운동장의 분위기와 비슷하다고 하면 나름 비슷할까 싶다. 4-5일 짬을 내어 걸으러 온 가족들과, 여름 방학 중인 학생 그룹들이 한데 섞여, 경건함이나 비장함과는 사뭇 거리가 먼, 들뜬 공기를 만들어냈다.
이 다리를 건너 사리아를 벗어난다.
안개가 잔뜩 끼었다.
길을 걷는 사람들의 수가 확연히 늘어났다. 인프라가 좋은 프랑스 길 위에 있고, 산티아고에서 100km 약간 바깥에 있기에, 순례증도 받을 수 있어, 잠시 며칠간 걷기엔 최적의 출발점이다. 더위가 한풀 꺾이는 9월이 와서 더욱 그런가 싶다. 스피커로 음악을 튼 채 걷는 여학생들 그룹이 종종 보이지만 그렇다고 거슬리진 않는다. 다만 그동안 전혀 신경도 안 썼던 숙소 자리 부족이 슬슬 걱정되었다.
얼마 가지 않아 30분 전 출발한 까예따나와 테레사 모녀를 따라잡았다. 이들은 오 세브레이로에서 저녁을 먹다 처음 만났고, 그저께 트리아카스텔라 공립 알베르게에서 같은 방을 썼으며 어젯밤은 사리아에서 같은 벙커 베드를 썼다. 까르보나라 식사에도 끼어서 이미 얼굴이 많이 익은 사이다.
아리아 스타크, 메이지 윌리엄스를 닮은 까예는 연기를 공부하는 학생이다. 제일 좋아하는 배우가 누구냐고 물어봤더니 스페인 여배우 누구의 이름을 대었다. 물론 작품을 본 적은 없었다. 연기자가 되겠다고 하니 나중에 유명해질지도 모르겠다. 유명해지면 초상권이 문제가 될지 모르니 네 사진 내 글에 올려도 되냐고 물어봤는데 물론 괜찮다고 했다. 얘는 어제 San Xil 길에서 내가 뛰어가는 걸 봤기 때문에 나를 사이보그 취급을 한다. 그리고 자기 전에 팔 굽혀 펴기 200개 하는 걸 보곤 더욱 그렇게 믿는 것 같다.
시속 2km 나오는 걷린이 주제에 오늘 나와 걷겠다고 하길래, 스틱 쓰는 법을 먼저 가르쳤다. 어색해도 없는 것보단 낫다.
이 말은 쇠 파이프 씹는 게 버릇이다. 안드레아의 인스타에서 우연히 같은 말 사진을 봤는데 역시 똑같이 파이프를 씹고 있는 모습이었다.
드디어 남은 거리의 숫자가 두 자리로 변했다.
100km를 알리는 표지석엔 사람들이 특별히 더 많은 흔적들을 남겨두고 갔다.
경치는 아기자기하고 적당히 좋다. 그리고 늘어난 사람들 덕에 길이 활기차다.
드디어 포르토마린이 내려다 보이는 곳까지 왔다.
도시에 들어가기 위해 통과해야 하는 두 개의 관문이 있다. 왼쪽 길을 선택했다면 험한 돌계단을 내려가야 하니 무릎을 조심하자.
그다음은 다리 앞에 놓여 있는 자유의 종을 치는 것이다. 왜 이런 걸 굳이 만들었느냐고 논란도 있다지만, 한 번이라도 사람들이 더 웃게 만들고, 기억에
남게 된다면 충분히 의미가 있는 것이다.
포르토 마린으로 통하는 다리를 건넜다.
오늘은 까예가 하루 종일 따라다녀서 유독 그녀의 사진이 많다. 쳐지는 테레사를 뒤로한채 나를 쫓아오는 게 귀여워 죽겠다. 근성이 대단한 게 힘들단 말도 없이 계속 따라온다.
알베르게 앞에 한시가 살짝 넘어 도착했다. 체크인하려고 기다리는 인원이 꽤 되었다. 83명이나 수용 가능하다는데도 살짝 불안했다. 하지만 무사히 체크인하였고, 저녁 6시에도 아직 빈자리가 있었다. 9월엔 조금 더 붐빌 예정이다.
좋아 보이는 주방인데 집기가 없다. 코로나 때부터 공동 조리와 취식을 금지했다고 한다.
여기도 샤워장 문이 없다. 주방은 멀쩡한데 식기, 집기류가 하나도 없으니 쓸 수가 없다. 그냥 없는 주방인 셈. 간간이 코펠을 가진 순례자가 있지만 샐러드 이상의 요리는 하지 않는다.
뭘 해 먹을 수가 없어 비비, 까예와 함께 점심을 먹으러 나왔다. 비비는 이탈리아 식당으로 가자고 했다. 아무리 맛이 있다 해도 오늘까지 먹으면 거의 일주일 연속 이탈리아 음식이기 때문에 구미가 당기지 않았다. 엘라세보부터 카카벨로스, 오 세브레이로, 트리아카스텔라, 사리아 까지 6일 연속 이탈리아 음식을 먹었으니 이만하면 명예 이탈리안 가능이다.
옆에서 파스타 먹는 걸 보니 속이 울렁거렸다. 맥주만 두 잔 마시고 나와 글을 쓰고 낮잠을 잤다.
페데리카가 오길 기다렸는데 그녀가 어제 사모스를 거쳐 드디어 포르토마린에 입성했다. 그런데 내일은 갑자기 멜리데로 40km를 가겠다고 한다. 그리고 내일 모레 산티아고로 들어가고 싶다고도 한다.
이러면 새로 만든 그룹인 주제페, 로베르토, 까예, 테레사1, 테레사2, 산티아고, 마리오와 같이 갈 수 없다. 혹시 몰라서 이들에게 내일 멜리데 갈래? 물어보았으나 이제 갓 시작한 이들에겐 40이란 숫자는 무한대와 동급일 테다. 거점 도시인 팔라스 데 레이로 가는 게 이들에게 좋을 것이다.
한 달간 같이 온 페데가 같이 가달라는데 거절하기가 어렵다. 5리를 가자 하면 10리를 같이 가주는 게 여기서 내가 하는 일이다. 물론 페데리카도 갑자기 중간에 못 간다고 하는 상황이 충분히 나올 수 있다.
낮잠을 자고 일어나 페데리카 일행 쪽으로 저녁을 먹으러 갔다. Casa Cruz라는 식당으로 오라는데, 갈리시안 파이와 가리비가 맛있다고 한다.
나가보니 반가운 얼굴이 더 있었다. 온타나스 가는 길에서 만난 마테오와 안젤라이다. 이 둘을 처음 만난 모습을 기억한다. 메세타 한가운데, 유일한 그늘인 표지판 밑에 둘이 나란히 앉아 있던 모습이다.
이 둘은 맘에 드는 마을에서 묵기 위해 짧게도 멈추었다가, 어떤 때는 장거리 걸음도 마다하지 않는다. 그리고 사람 많은 대도시를 피해 다니는 편이다. 내일은 카사노바까지 간다고 했다.
마르타라는 스페인 처자는 길 어디선가 본 듯해서 “우리 전에 만난 적 없냐?”를 시전 했는데 “오늘 사리아서 출발했음” 이란 답이 돌아왔다. 졸지에 어설프게 작업 걸다 실패한 남자가 되어버렸다.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혹시 쌍둥이 언니 있냐”를 재차 시전 했지만 역시나 반응은 좋지 않았다.
그동안 계속 노래를 불러오던 뿔뽀를 시켰다. 먹으러 가려할 때마다 뭔가 사정이 생겨 다른 걸 먹게 되다 보니, 이게 순례길의 첫 문어다. 다 끝나갈 때서야 드디어 원을 풀었다. 그릴에 구운 오징어와 가리비, 갈리시안 파이, 빠따따스 브라바스, 크로케타스, 뿔뽀가 테이블을 가득 채웠다.
믈론 맥주도 빠지지 않았다. 7명 중 5명이 이탈리안이고 이들은 항상 나에게 가운데 자리를 권하며 마피아 보스라고 농을 친다.
TV라는 문명의 물건을 보니 신기했다. 65인치 티뷔로 라리가를 시청하게 되다니 이게 꿈인지 생시인지 싶다. 아마 집에 돌아가 컴퓨터 마우스를 잡으면 정말 어색한 기분이 들 것 같다. 백일 휴가 때 느낀 그 기분처럼.
페데와 내일 만나기로 하고 통금이 가까워 돌아오니 비비와 까예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왜 그러냐 하니 다리 마사지를 해달라고 했다. 비비는 어제 아프다고 해서 해줬는데 다리에 때가 하도 밀려서 적당히 하고 끝냈다. 정뚝떨 ㅋㅋ. 그래도 만져보니 종아리가 어제보단 훨씬 말랑해졌다. 딱딱했던 다리가 풀려서 좋아하는 눈치다. 오늘은 훨씬 덜 아프다고 한다.
다음은 까예따나 차례, 오늘 나를 계속 따라온 게 다리가 안 아플 리가 없다. 물론 따라오라고 천천히 걷고, 중간중간 휴식도 오래 했지만 많이 힘들었을 것이었다. 역시나 종아리가 돌덩이 같다. 만질 때마다 아프다고 읔읔 거리긴 하는데 그래도 상당히 잘 참는다. 잠시 후 귀요미 까예도 어김없이 다리에 각질이 밀려 나오기 시작했다. 때를 안미는 문화이니 어쩔 수가 없다.
내가 일찍 딸을 두었다면 이만할 텐데, 이럴 땐 딸 가진 테레사가 부럽다.
00:47 내일은 오래간만에 긴 하루가 될 것이었다. 낮잠을 잔 탓인지 눈이 말똥말똥 잠이 오지 않았다.
8:00 ~ 13:15
사리아 ~ 포르토마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