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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라모먼트 May 07. 2021

산타야, 너는 아빠를 닮은 아이였으면 좋겠어

너의 매일매일이 크리스마스 같기를

결혼한 지 벌써 2년, 지금 내 뱃속엔 6개월이 된 산타가 있다. 크리스마스에 생긴 우리 아기에게 남편과 함께 지어준 태명이다. 산타가 어떤 아이로 자라나면 좋을까. 어느 날은 이목구비가 뚜렷한 예쁜 딸이었으면 좋겠다가, 다른 날은 건강하기만 하면 더 바랄 게 없을 것 같다가, 또 다른 날은 그래도 책을 좋아하는 아이로 키워야겠다고 생각한다. 아직 세상 구경도 하지 못한 아기에게 참 욕심이 많다.



현재를 소중히 여기는 사람

오늘은 아침 일찍부터 입사 동기와 함께 물류센터 현장 견학을 다녀왔다. 업무 이외에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면서 동기가 물었다.


동기: 결혼한 지 얼마 안 되셨죠?
나: 이제 2년 조금 넘었어요.
동기: 생각보다 오래됐네요. 남편분 이야기할 때 엄청 사랑하시는 게 느껴져서 최근에 결혼하신 줄 알았어요.
나: 그래요? 제가 남편한테 반해서 결혼하기 전에 열심히 따라다녔거든요. 
동기: 와, 어떤 점이 그렇게 좋으셨어요?
나: 음... 저는 좀 걱정도 많고 미래 지향적인데, 남편은 현재를 소중하게 여길 줄 알거든요. 노을 지는 거 보면서 감탄하고, 잘 자란 잔디 보면서 기뻐하고 그래요.
동기: 멋지네요. 아기가 태어나면 더 행복하겠어요.



행복한 일은 매일 있어


생각보다 힘든 하루였다. 현장 견학과 장시간 운전에 연속된 업무 미팅까지, 너무 고된 일정이었는지 배만 몸살이 걸린 것처럼 아팠다. 임신 초기에 자궁이 커질 때랑은 다른 느낌이었다. 온몸이 녹초가 되고 배까지 아파오자 산타에게 너무 미안했다. 임신 상태에서 무리하게 이직을 해서, 아기를 고생시키게 된 상황이 싫었다. 집에 오는 길에 배를 쓰다듬으며 "산타야 미안해, 엄마가 많이 사랑해"라고 몇 번이나 이야기했는지 모른다. 


집에 도착해서 쉬어야 하는데 잠이 오지 않아 태교 동화 <하루 5분 엄마 목소리>를 읽었다. 슬픔과 절망을 먹고사는 마녀에 맞서 끝까지 희망과 동지애로 얼음 성을 완성해낸 소년과 야수의 이야기, 세상을 돌아다니는 탐험가로 살다가 가장 값진 건 세상 저 편이 아니라 바로 곁의 가족이라는 걸 깨달았다는 탐험가 아버지 이야기까지. 아기를 위한 동화책인데 내가 감동을 받아 책을 보며 엉엉 울었다. 슬픔의 눈물이 아닌 감동의 눈물이니까 산타에게도 좋은 거겠지.


배도 무겁고, 아직 끝내지 못한 업무로 마음도 무겁지만, 그래도 소중한 하루다. 우리 산타도 이 세상에 태어나 언젠가 내가 그랬던 것처럼 '이렇게 힘든 세상에 왜 태어났을까'라고 생각하는 순간도 있을 거다. 좋은 일만 가득할 수는 없겠지만, 어렵고 힘든 일 가운데에서도 행복을 느끼는 순간들이 많았으면 좋겠다. 작은 일에 감사하고, 또 감탄할 수 있는 아이로 자라나기를, 아빠를 꼭 닮은 아이였으면 좋겠다.


너의 매일매일이 크리스마스 같기를 (출처: Unsplash)


p.s.

산타야, 밤 11시가 다 되어가는데 아빠는 일하느라 아직도 집에 오지 못했어.

이 글은 우리 산타랑 아빠가 얼른 보고 싶어서 쓰는 글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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