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장민희 Dec 16. 2023

약점

1

     

  이파리의 핏줄이 붉게 타들어 간다. 낙엽이 발에 닿는다. 가을이 내게로 오고 있다. 가을이 오면 어김없이 먹고 싶은 게 있다. 해마다 반복한다. 바로 김밥이다. 먹는 일은 삶의 본능이다. 왜 하필 가을이 되면 김밥이 떠오르는 것일까. 

   김밥 한 줄에는 자연의 사색이 들어있다. 달구어진 김에는 햇빛과 바람이 남아있고, 밥 한 공기에는 사계의 고뇌와 기다림이 있다. 시금치는 제철이 닿아야 달콤함을 맛볼 수 있고, 달걀은 사랑이 있어야 만날 수 있다. 오이는 기댈 수 있는 의지처가 있어야 하고, 당근은 대지의 품 안에서 뽑혀야 한다.

  내가 가을이 되면 김밥을 찾는 이유는 간단하다. 사계절이 담겨 있어서다. 내 몸이 원하는 것. 그것이 바로 몸에 좋은 보약이다. 그 이상을 바라면 욕심이다. 

  나는 몸이 약하다. 약하다는 건 물체 반응에 예민하다는 뜻이기도 하다. 연약하기에 쌀 한 톨도 까다롭게 고른다. 누군가와 처음 만나 인사를 나눌 때 어디서 사는지를 묻는 것처럼, 음식을 대할 땐 나도 모르게 원산지를 확인하게 된다. 외식하더라도 최대한 화학조미료가 든 음식은 피하고, 먹을 상황이 생기면 한계 시간을 정한다. 저녁 7시 이후로 먹게 되면 붉은 반점이 올라 고생한 적이 있기 때문이다. 

  잡곡, 채소, 풀이 아니면 입에 잘 대지 않는 버릇도 생겼다. 내 몸이 나쁜 물질을 배출하기 위한 작동을 즉각 준비하는 일은 예전엔 상상도 못 했다. 이전보다 몸이 건강해진 반증이겠지. 화학 물질에 대한 방어 능력이 생긴 것이다. 큰 병이 오기 전에 내 몸이 미병未病* 경고장을 날려 주는 것이다. 

  연약하다는 건 약점이다. 

자연에서도 온실에서 보낸 여린 식물이 바깥세상에 나오면 달팽이의 공격을 받는다. 작은 공격에 생명을 잃기도 한다. 잎과 줄기가 약하기 때문이다. 애초에 바깥세상에서 컸다면 상황은 반전된다. 잎은 햇볕에 그을려야 단단해지고, 비바람의 시련을 거쳐야 줄기가 강해진다. 달팽이의 공격 따위에 꿈쩍도 하지 않았을 것이다. 

 연약함을 극복하면 여린 이파리가 단호한 풀잎이 되듯 나의 약함도 견고해졌으면 한다.                              

*미병未病 뚜렷하게 병이 없음에도 불편한 증상을 호소하는 상태.         


           



매거진의 이전글 앞날을 미리 알 수 있다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