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이 약했던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길은 많지 않았다. 다만 예전보다 건강해진 만큼 세상에 가치 있는 인간이 되고팠다. '가치 있는' 이 문장은 굉장히 추상적이지만, 이 단어는 한 인간의 삶의 방향성을 내포한다. 내가 좋아하는 일을 찾는 것도 중요하고, 그 일이 직업으로 연결되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일임은 누구라도 안다. 또한 이상 실현 가능한 일을 추구함과 동시에 현실적인 삶을 살아내야 하는 것은 인간의 숙명이다. 하지만 나는 현실과 이상이 조화가 중심을 이루도록 살고 싶었다. 물론 중심이 잡힌 삶은 결코 쉽지 않다.
바른길은 참으로 외롭고 고단한 길이다. 내가 서 있는 자리의 가장 낮은 곳에서 어렵고 힘든 삶을 사는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고 싶었고, 남도 도우면서 성공하고 싶었다. 기부금 대신 공익을 위해 헌신할 수 있는 자리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며 살아왔다. 하기 싫고 힘든 일도 하면서, 그 시간 안에서 내 꿈을 찾으며, 이루려고 애쓰며 살았다.
현재도 그렇다. 하지만 빛을 본 못 이유는 나의 덕행이 부족해서일까. 아직 때가 아니어서 일까. 세상에는 내가 어쩌지 못하는 불가항력적인 일들이 일어난다. 절망의 시간 속에서 길을 다시 찾아 나서는 일은 힘듦의 연속이었다. 그런데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고,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었다. 다른 길을 찾았다. 예전부터 마음속에 품은 생각이 인생의 행로를 바꾸어주고 있다. 원 꿈은 그대로 유지하되, 실력을 키우고 내 말과 글에 신뢰를 더 할 수 있는 방법을 말이다. 방식과 방법만 바꾸었을 뿐이다. 나는 아직 포기하지 않았다. 안정적인 삶을 살고 싶다. 더 이상 불안감에 휩싸여 힘든 여정을 가고 싶지 않다. 그렇다고 해서 현재 내가 가고자 하는 길이 쉬운 길도 아니지만.
공부는 평생 해도 모자랄 것이다. 인간은 늘 불완전한 존재이니깐. 100세 인생. 누가 수명을 장담할 수 있겠는가. 삶과 죽음의 경계를 직간접적으로 경험해 본 사람이라면, 오늘 하루와 세세히 나누어진 23.59595 시간의 소중함을 안다. 그렇기에 난, 살아온 날보다 살아갈 날이 조금 더 길었으면 한다. 무언갈 얻고자 하는 욕심이 아니라 해야 할 일이, 써서 알리고 싶은 글들이 있기 때문이다.
17살 때부터 만일 내가 죽는 순간이 다가와 눈을 감게 되고, 내 육신과 영혼이 영영 이 별로부터 사라진다면, 오늘을 어떻게 살아야 할까란 생각을 종종 했다. 어린 나이부터 했던 생각 때문이었을까. 세상에 가치 있고 존재의 당위성을 갖춘 인격체가 되고 싶었다. 현재도 여전히 그런 사람이 되려고 노력하고 있다.
진작 석박사 공부를 했었으면 좋았을 것이란 후회가 물밀듯이 밀려오지만, 위안해 보자면 자연으로부터 배웠기에 식물의 현상을 읽어낼 수 있는 것이고, 자연과 식물을 밑바탕에 두고 공부했기에 현재의 인격이 세밀하게 형성되었고, 그 흘러온 시간 속에 내 글이 존재하는 것이며, 그 시간들 속에서 공공의 이익이 무엇인지를 깨달았기에, 지금 석박 공부와 글을 써 낼 수 있는 것이고, 세상의 흐름도 읽어낼 수 있다는 것을 말이다.
" 늘 침착하게 생각을 정리하고 행동하며, 긴장하지 않았으면 한다."
"따뜻한 마음은 간직하되, 냉철한 사람이 되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