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의 카르마에 관하여
나는 게임엔 문외한이다. 주변에 게임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저렇게 시간을 낭비해도 되나 잔소리를 하는 축에 속했다. 그러다 게임의 흥행 기사가 심심찮게 보였고 유명 셀럽들의 컬래버레이션과 1조를 눈앞에 둔 매출에 호기심이 생겼다. 특별히 특정 게임에 대한 홍보성 글이나 예찬을 하기 위한 글은 아니라는 점을 밝히고 싶다.
그러니까 점심시간에 짬을 내서 게임을 하고 있다는 기사다. 트렌드에 민감한 20-30대를 넘어 중년까지 열을 올린다는 건데, 대체 혐오스러운 (내게 그래픽은 잔인하고 폭력적으로 느껴졌다) RPG게임이 뭐 그리 좋다는 걸까? 어렸을 땐 RPG게임을 하면서, 선정성과 거리가 먼. 이를테면 '메이플 스토리' 같은 것들은 계속되는 퀘스트와 버섯 찌르기가 반복된다. 사람의 심리를 교묘하게 간파했다는 걸 알면서도 밤새도록 이름 모를 누군가가 내준 과제를 하고 있는 자신을 각성했을 땐 많이 늦었다. 다시는 RPG게임에 손대지 않겠다고 다짐했더랬다.
최근엔 백종원 대표까지 "네팔렘 '밥장사' 지금 성역으로 떠납니다."라며 유튜브에 적극 홍보에 나섰다. 당최 네팔렘이 뭐고 성역이 무엇이란 말인가. 찾아보니 백종원 대표는 디아블로와 컬래버레이션 음료수(빨간 물약)를 출시했고 본인 역시 게임의 열성팬임을 강조하며 스마트한 홍보에 나섰던 것이었다. 게임이 가진 유저들의 로열티. 그 공고함이 타깃이 되는 마케팅에 뛰어든 것이다.
그렇게 자료조사에 나서 들여다본 게임의 세계관은 무척이나 깊고 방대한 스토리를 가지고 있었다. 한 문장으로 정리하기도 어렵고 잡다한 인물들의 면면을 다 소개할 수도 없지만, 플롯 자체가 선과 악의 끊임없는 싸움에서 벌어지는 것이기 때문에 근원적인 뿌리에서 뻗어나간 가지들이 한 곳으로 모이는 기분이 들었다.
한 문장으로 정리하자면 천사와 악마의 분쟁에 저항하는 인간들의 이야기를 담은 게임이다. 최근 출시된 디아블로 4의 주인공인 '릴리트'는 디아블로 시리즈 세계관의 악마로 천사 이나리우스와 맺어져 현생 인류의 조상 네팔렘을 낳고, 이들의 터전으로 성역 세계를 창조한 존재이다.
쉽게 말해 천사와 악마로 대표되는 인물들이 선과 악의 끝없는 전쟁에 지쳐 사랑에 빠지는데 그래서 잉태된 '네팔렘'(인간과 흡사)이 영토의 침략 전쟁에서 살아남는 구조다.
특히 어둠과 절망으로 가득한 세계관이 매력으로 꼽히는데, 이와 관련해 개발진은 “시리즈 중 가장 어두운 스토리와 세계관을 내포한 작품”이라고 자신감을 드러냈다.
By three, they come. By three, thy way opens. By the blood of the willing, we call thee home.
세 명이 오리라. 그들 셋으로 길이 열릴 것이며, 바라는 자의 피로, 그대를 집으로 부르리라.
Hail, the Daughter of Hatred, Creator of Sanctuary.
경배하라. 증오의 딸을. 성역의 창조자를.
Hail, Lilith.
경배하라. 릴리트를.
디아블로 4 '세 명이 오리라' 시네마틱
고대부터 선과 악은 끊임없이 싸웠더랬다. 모든 종교의 모티브가 되기도 하는 이분법적인 대립구조는 숙명처럼 우리 안에 체득되어 있다. 특히 불교에서는 '카르마'. 즉 미래에 선악의 결과를 가져오는 원인이 된다고 하는, 몸과 입과 마음으로 짓는 선악의 소행을 가르친다.
그리고 넷플릭스 오리지널 '화이트 타이거'를 떠올렸다.
인도에는 아직도 카스트제도가 사회 전반에 많은 영향을 끼친다. 인도의 정치 사회 문화 전 영역에 걸쳐 전근대적 신분제인 카스트제도, 즉 브라만, 크샤트리아, 바이샤, 수드라로 나뉘는 신분제가 깊이 뿌리 박혀 있다. 공식적으로는 1947년에 이 제도가 폐지됐다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영화 주인공 발람은 하층민 출신이다. 그의 아버지, 할머니 또한 하인으로 태어났다. 조상 대대로 하층민 신분이다. (안유화, '닭장'과 인도의 한계, 그리고 가능성)
카스트 제도 안에서 살아가는 삶을 '닭장' 속의 삶으로 표현하는데 초반엔 '자신은 노예'라는 정체성이 강하게 자리 잡은 터라 자신이 주인이라고 믿는 미국인들에 대해 감히 저항할 생각조차 않는다. 그 세계에서 빠져나오는 과정이 꽤 오래 걸린다. 그래서인지 인도판 '기생충'이라고 불리며 신분과 계급에 대한 신랄한 풍자가 돋보이는 영화라는 평이 많다. 그러나 단순히 그렇게만 보기엔 결말이 충격적이기도 하고 다소 찝찝한 기분이다.
주인공 발람은 끊임없는 선과 악의 기로에 선다. 닭들이 도살되는 장면을 바라보며 '닭들은 왜 도망칠 생각을 안 할까'라는 질문을 던지는데 이것이 첫 번째 각성이다. 부모가 강요한 숙명을 스스로 바꾸려는 용기는 꽤 많은 대가를 치르게 했는데 이를테면 주인의 살인죄 누명을 쓰기도 하고. 물론 기꺼이 자진해서가 아니라 강요에 의해서이긴 하지만 뿌리 깊은 신분의 굴레에 굴종하게 된다.
그러니까 발람의 욕구는 인간으로선 응당 당연한 것들에 대한 동경, 선에 대한 추종 등이 뒤죽박죽 희망의 빛을 만들지만 그것은 다시 어둠이 드리우는 방식으로 반전을 만든다. 실망, 좌절, 분노로 이어지며 끝내는 주인을 살인하고 돈을 탈취한다. 주인이 정부와 로비를 해서 돈을 버는 방식을 그대로 배워 경찰들과 로비를 하며 '화이트 타이거'라는 이름의 택시 회사를 창업한다.
주인공의 죄책감은 없었다. 비극을 있는 그대로 목도할 수밖에 없는 지점이 아마도 내가 느낀 찝찝함의 이유였다. 노예로 살 것인가, 악행을 저지르면서 닭장을 벗어날 것인가.
게임의 흥행과 스토리의 세계관은 큰 영향이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요즘 게임과 영화의 스토리가 더 이상 진부하지 않은 것은 '선이 맞고 악이 틀리다'는 이야기 구조에서 벗어났다는 점이다.
나는 더이상 권선징악이라는 플롯에 사람들이 공감하지 못하게 된 이유에 대해 생각한다.